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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의 공모

홀로코스트의 공모

: 나치 독일의 교회들과 대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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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7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152*224*30mm
ISBN13 9791193786031
ISBN10 1193786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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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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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적이며 개인적으로 괜찮은 대학 졸업자들이 도대체 어떻게 집단적으로 오스트리아 상병(히틀러의 별명-옮긴이)에게 홀딱 반할 수 있었는가? … 그뿐 아니라 이런 열광적 찬양은 단지 몇몇 목사들과 교수들의 메시지였던 것이 아니라, 교회와 대학 전체의 지배적 메시지였다. …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내가 교회와 대학의 공모complicity라고 부르는 것이다. … 교회 신자들과 대학 졸업자들을 포함해서 평범한 독일인들에게 나치 국가가 끔찍한 짓을 하도록 요구했을 때, 그들은 자신의 목사들과 교수들에 의해 그런 짓을 하도록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히틀러를 독일에 대한 하느님의 선물로 찬양했다.
---「서문」중에서

교회는 영적이며 윤리적 통찰을 고무시킨다. 대학은 지적인 예리함을 계발한다. 두 경우 모두에서 우리는 이런 기관들의 지도자들이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의 행동강령에서 도덕적이며 지적인 결함을 발견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반대했다는 증거는 별로 없고, 지지했다는 증거는 많다. 나치 시대의 목사들과 교수들은 자신들의 입장이 경멸받을 수 있다는 점을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의 사상과 행동을 돌아보면서 단죄하게 될 것을 결코 생각하지 못했을 수 있다. 많은 사람, 또는 대부분은 자신들의 행동이 도덕적이며 명예로운 것이라고 믿었으며, 심지어 아돌프 히틀러를 지지하면서도 자신들은 이상주의에 근거해서 행동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1장. “학살의 세기에서 왜 홀로코스트가 문제가 되는가?”」중에서

이것은 홀로코스트를 가능하게 만든 젊은이들이 고학력자들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나는 우리가 홀로코스트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우리가 대학과 교회의 역할을 인식하는 길이며, 또한 이 가해자들이 우리와 매우 비슷한 사람들임을 인식할 때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도대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급진적 조치들을 취하게 만들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으며, 또한 아마도 어떤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유도할 수 있는지도 깨닫게 만들 것이다.
---「1장. “학살의 세기에서 왜 홀로코스트가 문제가 되는가?”」중에서

역자주: 엄청난 상이군인과 전몰자 유가족 지원비뿐 아니라 전쟁을 위해 발행했던 국채(415억 달러)와 베르사유 조약에 의한 전쟁 배상금(125억 달러) 등 독일 정부가 갚아야 하는 부채상환액은 1918년부터 1931년까지 13년 동안 연간 국가 전체 수입의 38%에 달했다. Peter Hayes, Why?: Explaining the Holocaust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2017), 57-58.

역자주: 히틀러는 마르크스의 계급투쟁 대신에 종족투쟁을 역사의 지배 원리로 믿었다. 나치즘은 “독일의 교만과 미래에 관한 불안을 결합하여 무제한적 공격성으로 실천했다.” 독일의 행복과 부강을 위해 히틀러가 유대인들의 권리 박탈과 추방에서부터 대량학살로 정책 목표를 바꾸게 된 과정은 세 단계를 거쳤다. (1) 1933년 히틀러의 총통 임명과 1938년 오스트리아 합병까지는 제3 제국이 독일 유대인들을 박해해도 다른 국민들과 외국으로부터 심각한 반대가 없었다. (2) 1938년부터 1941년 6월 소련을 침공하기까지, 그 영토로부터 유대인들을 완전히 추방/제거할 수 있었다. (3) 소련 침공에서부터 그해 가을까지 다섯 달 동안, 히틀러와 하인리히 힘러는 유럽의 모든 유대인을 살해할 동기와 수단과 기회를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전쟁 막바지에 병력 수송 열차가 부족해도 유대인들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낼 열차를 계속 운영한 것이 바로 “다른 종류의 전쟁을 시작한” 때문이다. Peter Hayes, Why? Explaining the Holocaust, 62, 75.

역자주: 반유대주의는 18세기까지 기독교와 라이벌 종교(미개한 신앙) 문제였고 해결책은 개종과 분리였다. 18세기 이후에는 문화와 전통(퇴보적 문화)의 문제였고 해결책은 해방과 흡수였다. 19세기 이후에는 인종과 혈통(박테리아) 문제였고, 해결책은 격리와 말살이었다. Peter Hayes, Why? Explaining the Holocaust, 8.

오늘날 대다수 역사가는 니묄러와 본회퍼의 영웅적 행위를 인정하지만, 그것은 교회 이야기를 왜곡시킨다고 주장한다. 그 두 사람은 나치 국가에서 많은 것을 좋아한 큰 교회의 작고 급진적인 진영을 대표했을 뿐이다. 교회의 투쟁 양편에는, 히틀러를 옹호하고 나치 국가를 지지했을 뿐 아니라 니묄러와 본회퍼 같은 급진주의자를 비판한 사람들이 있었다. 따라서 “교회의 투쟁”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그것을 교회 내부의 갈등, 주로 신학적이며 교회와 관련된 질문을 놓고 싸웠던 라이벌을 이룬 분파 사이의 갈등으로 보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나치 국가에 직접 반대한 싸움이 아니었다.
---「2장. “교회들과 히틀러의 등장”」중에서

역자주: 마르틴 루터는 죽기 직전까지도, 개종하지 않는 유대인들을 강제노동에 처하고 유대교 회당을 불태울 것을 촉구했다. 반면에 칼뱅은 유대인들을 신앙의 조상들로 존중했다. 조너선 색스, 김준우 역, 『하나님 이름으로 혐오하지 말라』, 120ff; Peter Hayes, Why? Explaining the Holocaust, 12-13.

키텔은 … 이 강연에서뿐 아니라 나치 기간을 통한 그의 거의 모든 글에서, 유대인들을 냉혹하고 잔인하게 대하는 것이 유대인들의 “위험성”에 대한 필요한 대응이라고 정당화했다. 그는 자기가 독일과 기독교 문명을 수호하기 위해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933년 6월의 이 강연에서 이미 키텔은 독일 유대인들의 시민권을 박탈할 것을 주장했으며, 그들을 의학, 법, 교육, 저널리즘, 곧 독일인의 삶의 모든 중요한 영역에서 추방하고, 비유대인들과의 결혼이나 성적인 관계를 금지하는 특별법을 만들 것을 주장했다. 여기서 그는 정부보다 2년 앞섰다. 정부가 뉘른베르크 인종법을 도입하여 유대인들의 독일 시민권을 박탈한 것은 1935년이었다. 키텔이 독일 개신교회의 중요 인물이며 유명한 신학자로서, 많은 글을 쓰고 자주 설교했으며, 다음 세대 개신교 목사들의 상당수를 훈련시킨 인물임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2장. “교회들과 히틀러의 등장”」중에서

역자주: 나치당의 득표율이 1928년 2.6%에서, 1930년 18.3%, 1932년 37.4%로 단 4년 만에 급성장한 원인은 1929년에 시작된 세계 대공황이 독일에서 1932년에 극에 달해 대형은행들이 파산하고 실업률이 36%에 이르러, 반유대주의가 훨씬 심해진 탓이었다. Peter Hayes, Why? Explaining the Holocaust, 55.

이 학자들은 바이마르 기간에 주로 젊은 학자들로서 아직 대학에서 지위를 확보하지 못했고, 일차적으로 우파 민족주의 기관들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히틀러가 등장하자, “민족사Volksgeschichte”라는 그들의 상표, 즉 인종 공동체의 역사이지만 항상 독일 민족을 앞세운 상표는 국가의 막대한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 학자들은 독일이 동부에서 공격적 정책을 펼칠 경우를 연구하고 추천했으며, 그중에는 슬라브족과 유대인들에 대한 “인종청소ethnic cleansing”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야만 독일인들이 그들의 땅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장. “대학들과 히틀러의 등장”」중에서

그러나 새로운 공무원법 때문에 해임된 교수 중에 가장 많은 사람은 유대인이었다. 거의 모든 경우에, 해임된 교수의 동료들은 그들을 변호하지 않았다. 개별 학과와 대학 전체에서 많은 교수가 쫓겨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수들도 참화를 피할 수 없었으며, 이런 정책에 내재된 학문 자유 침해와 기본 시민권 침해에도 불구하고, 독일 학계는 동료들에 대한 이런 대규모 숙청에 항의하지 않았다.
---「3장. “대학들과 히틀러의 등장”」중에서

역자주: 유대인들에 대한 나치의 정책은 (1) 협박과 이주, (2) 해외 추방, (3) 전멸 단계로 발전했다. (1) 1933년부터 유대인들을 공직에서 추방하고, 시민권을 박탈하고, 유대인 상점을 보이콧하고,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게 만들어, 유대인들이 해외로 이주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2) 1938년부터는 유대인들에 대한 폭력, 재산몰수, 강제노동, 추방이 본격화되었다. 유대인들의 해외 이민이 어렵게 된 이유는 이미 재산을 빼앗긴 상태였고, 대공황 때문에 국가마다 실업률이 높아서 이민 반대 여론이 높았기 때문이다. (3) 유럽의 다른 국가들이 유대인들의 추방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유럽의 모든 유대인을 완전히 몰살시키겠다”고 히틀러가 공언한 것은 1939년 1월이었다.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기 직전까지 독일 내 유대인의 약 60%는 해외로 나갔고, 독일에 남은 유대인은 35만 명, 폴란드 내 유대인은 330만 명이었다. 이 마지막 단계에서는 600만 명 중 450만 명을 단 20개월 내에 학살했다. 즉 1941년 6월부터 1943년 2월까지 매달 평균 225,000명을 살해했다. 홀로코스트 발광의 최고 시기였던 1942-43년에는 매달 평균 325,000명(매일 1만 명 이상)을 학살했다. Peter Hayes, Why? Explaining the Holocaust, 76-77, 81-86, 115.

바르멘 선언이 나치 국가와 싸우기를 원하지 않았음은, 그 선언이 어떻게 유대인 학대 문제를 다루었는지를 보면 명확해진다. 그 선언은 그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바르멘 선언에는 유대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나치 국가가 유대인들이나 다른 소수자들을 잔인하게 다루는 것에 대한 불평도 전혀 없다. 유대인 혐오와 학대가 나치 범죄의 터무니없이 많은 목록 가운데 가장 심각한 범죄일 것이라는 점에 대한 분명한 도덕적 불안도 없고,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는 것과 같은) 인식도 없다.
---「4장. “동의와 협조: 1945년까지의 교회들”」중에서

독일 군인들이 교회로부터 받은 메시지에 관해 우리가 질문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수행하도록 부름받은 행동이란 바로 교회 지도자들이 승인한 의무라고 느꼈을 것임에 틀림없다. … 이처럼 열광적인 참여를 요청했고 결코 그런 열광적인 참여를 취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학살에 공모했음을 보여준다.
---「4장. “동의와 협조: 1945년까지의 교회들”」중에서

교황 비오 12세가 나치 국가의 광범위한 학살 사례들을 전혀 비난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을 때, 잠재적인 저항 지도자들, 즉 가톨릭 사제들을 포함해서 폴란드 “지식인”을 대대적으로 학살했다. 폴란드의 가톨릭교회는 비오 12세에게 항의하도록 간청했지만, 그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치가 가톨릭 사제들을 학살할 때 침묵을 선택했던 교황으로서는 나치가 유대인들을 학살할 때 다른 선택을 할 리 만무했다.
---「4장. “동의와 협조: 1945년까지의 교회들”」중에서

홀로코스트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인 그 현대적이며 기술공학적으로 정교한 성격은 직접적으로 독일 대학들에 그 뿌리가 있다. 대학에서 훈련받은 기술자, 엔지니어, 건축가, 의사, 법률가가 그 과정의 여러 단계에서,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그처럼 효율적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게 가능하도록 도왔다. … 첫째로, 대학들은 필요한 전문가들이 그 작업을 하도록 훈련시켰다. 법률가들은 법, 규정, 정책을 만들어 희생자들을 구별하고 그들의 시민권을 박탈했다. … 이런 활동 가운데 일부는 대학교수직에 있는 전문가들이 수행했다. 이 모든 일은 대학들이 만든 것들이 수행했다. 간단히 말해서, 홀로코스트의 구체적인 끔찍한 일들은 독일 대학들이 마련해준 훈련과 전문가들이 없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5장. “지적인 수단: 1945년까지의 대학들”」중에서

에른스트 클레는 그의 역설적인 책 제목 『좋았던 옛날』에서 한 장 전체를 할애하여, 독일인 가운데 유대인 학살을 하지 않기로 선택하면, 면제되도록 허락받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 장의 제목은 “명령에 복종하도록 강요받았다는 신화”인데, 그는 열다섯 사람의 증언과 진술을 인용한다. 거부할 기회는 항상 주어졌고, 항상 심각한 처벌도 없었다는 증언들이었다. 전후 독일에서 변호인들은 유대인들이나 기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걸 거부한 독일 군인들에게 가혹한 처벌이 주어진 모든 사례를 찾으려 했다. 그래야 기소된 개인들을 위해 극한적 위협이 있었다는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변호를 뒷받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사례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변호사들은 빈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6장. “과거에 대한 수정: 탈나치화와 그 유산”」중에서

교회 역사가들은 눈길을 돌려 디트리히 본회퍼와 마르틴 니묄러 목사와 같은 영웅들을 다룸으로써, 이처럼 이미 실제로 나치 국가에서 박해를 받은 급진적인 인물들이 개신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려고 했다. 역사가들은 교회가 나치의 박해 아래 고난을 겪고, 용기가 허락하는 정도까지 나치 범죄에 반대한 이야기를 말했다. 그 이야기에는 그토록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아돌프 히틀러를 환영했고 또한 찬양했던 사실은 사라지고 없다.
---「6장. “과거에 대한 수정: 탈나치화와 그 유산”」중에서

그것들은 분명히 의식적이며 집요한 거짓말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거짓말이 뜻했던 것은 교수직에 복귀한 모든 독일 교수들이 자신이 나치였던 적이 결코 없다거나, 아니면 적어도 나치 체제의 죄를 초기에 파악했다는 거짓말이 그들의 복귀에 관건이었다는 뜻이다.
---「7장. “괴팅겐대학교의 탈나치화”」중에서

나는 우리와 닮은 그 학살자들이 바로 그들의 교회들과 대학들로부터 학살 면허증a license to kill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목사들과 교수들이 공모했다고 내가 주장하는 근거다. … 만일 그들이 교회에서 가르친 것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만일 종교교육 수업 시간 동안 귀를 기울였다면, 또는 그들이 교회 신문을 읽었다면, 무엇을 배웠을 것인가? 만일 그들이 대학에서의 교육에 주의를 기울였고, 강의를 열심히 들었거나, 교과서를 읽었다면, 무엇을 배웠을 것인가? … 나치 사상에 대한 이런 찬양을 공개적으로 철회하지도 않았으며, 나치의 정책이 특히 유대인들에 대한 학대에서 그 잔인성을 높여갈 때, 심각하게 도전하지도 않았다.
---「8장. “함축적 의미들”」중에서

1933년의 애국적인 독일인들은 문제들이 국가적 치욕, 경제 위기, 비효율적인 정치 등으로 이루어진 극단적인 위기 상태라고 파악했다. … 1939년에 전쟁이 시작되자, 착한 독일인들은 독일의 공격과 전쟁으로 인한 비인도적 행동을 합리화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교회 지도자들과 대학교수들은 이런 가치와 행동의 변화 물결에 휩쓸렸다. 만일 보통의 일반적인 독일인들이 자신들의 목사들이나 교수들에게서 도덕적 조언을 찾았다면, 그들은 방아쇠를 당기지 않을 이유, 명령에 따라 학살을 자행하지 않을 이유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8장. “함축적 의미들”」중에서

역자주: 전쟁이 끝난 후 나치의 전쟁 범죄자들 대다수는 처벌을 받았다. 유럽의 법정들에서 약 10만 명, 연합국 법정에서 8,812명, 미국 법정에서 1,030명, 소련 법정에서 나치 26,000명과 지역의 부역자 11,000명, 서독 법정에서 6,479명, 동독 법정에서 12,861명이 재판을 받고 형을 선고받았다. 마트하우센 수용소의 독일 요원들 48명이 1947년 5월 말에 이틀 동안 다카우에서 처형되기도 했다. 그러나 악명높은 전쟁 범죄자들 가운데 멩겔레, 아이히만 등 남미로 탈출한 180여 명을 비롯해 상당수 전범들이 탈출 루트를 통해 스페인,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해외로 탈출하도록 가장 크게 도운 것은 가톨릭교회였다. (연합국의 첩보부대도 나치 과학자들의 탈출을 도왔다.) 나중에 교황 바오로 6세가 된 몬시뇨르 지오반니 몬티니는 그 학살자들에게 새로운 신분증과 여행 문서를 제공했고, 오스트리아인으로서 신학교 학장이었던 알로이스 후달 주교는 요제프 멩겔레(아우슈비츠에서 가스실에 보낼 사람들을 결정하고 가스실을 운영하고, 생체실험을 한 “죽음의 천사”), 아돌프 아이히만(친위대 수장으로 유대인 학살 총책임자), 에두아르드 로슈만(악명높은 리가 게토 사령관), 에리히 프리프케(이탈리아인 335명을 학살한 전범), 프란츠 슈탕글(유대인 20만 명 이상을 살해한 소비보르 수용소와 87만 명 이상을 학살한 트레블링카 수용소 소장), 구스타프 바그너(소비보르 수용소 부소장), 발터 라우프(가스 트럭 발명가) 등의 탈출을 도왔다. 로마의 크로아티아 출신 사제 크루노슬라브 드라가노비치 역시 “리옹의 도살자” 클라우스 바르비(리옹의 친위대를 위한 고문, 프랑스 저항운동을 진압), 안테 파벨리치(나치 독일의 괴뢰 정권인 크로아티아 국가 원수로서 유고슬라비아에서 75만 명 이상을 학살한 주범) 등의 탈출을 도왔다. 나치 시대에 극악무도한 학살에 대해 침묵을 지켜 “히틀러의 교황”이라고 비난받았던 교황 비오 12세가 전쟁 후에는 “사목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전범들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계속 간청했으며, 대다수 독일 주교들은 전범 재판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점령지 독일의 교황청 대표로 복무한 니더작센 출신의 미국인 주교 알로이시우스 뮨치가 사목 서신에서 표현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은 “눈에는 눈이라는 모세의 법”과 대조된다는 주장이었다. Peter Hayes, Why? Explaining the Holocaust, 306-15.

한국 사회는 진영 사이의 적대감이 매우 위험한 상태에 도달했다. 그러나 대다수 교회는 성소수자,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앞장서고 있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혐오는 히틀러의 유대인 혐오와 닮았다. (1) 그들은 우리와 다르다(different). (2) 그들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discomfort). (3) 그들은 가정과 교회, 사회를 파괴하는 위험한(dangerous) 자들이다. (4) 그들을 보이지 않게 만들 조치를 취해야 한다(doing something). (5) 그런 극단적 조치를 취하는 것은 신앙심과 애국심을 가진 사람들의 거룩한 의무(duty)다(Peter Hayes, 2017). 한국에서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교회는 개신교회의 90%가 넘을 것이다. 문자주의 성서해석, 여성과 물질과 몸과 자연을 멸시하는 탈육신 신학, 초자연주의 신론, 승리주의 기독론, 4영리와 번영의 신학에 매몰된 채 질문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으면, 식량폭동, 파시즘, 전쟁 같은 역사적 재앙 앞에 독일 기독교(DC)와 서북청년단처럼 광기의 칼춤을 추기 십상일 것이다.
---「옮긴이의 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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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에릭슨은 어떻게 독일의 중요한 교회 지도자들과 대학교수들이 열광적으로 나치 체제를 받아들였으며 또한 합리화와 도덕적 규범들을 조정하도록 만들어 평범한 독일인들로 하여금 나치 체제의 잔인하고 살인적인 정책들을 수용하고 수행하도록 만들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 Christopher R. Browning (<아주 평범한 사람들> 저자)
“로버트 에릭슨은 나치 독일의 교회들과 대학들에 대한 탁월한 비교연구를 제공한다. 그 두 기관은 독일 국민의 집단적 양심과 지성을 키울 임무를 맡았지만, 홀로코스트에 협조함으로써 자신들의 성실성을 양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 Susannah Heschel (The Aryan Jesus 저자)
“나치 독일과 홀로코스트에 관한 중요한 권위자로서 로버트 에릭슨의 명성은 그의 치밀하고 독창적 학문뿐 아니라 도덕적 명료성에 대한 그의 주장에도 근거한다. 그는 나치즘의 범죄에 대한 개인적 책임과 집단적 책임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 책은 필독서이며 많은 독자 사이에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이 틀림없다.”
- Alan E. Steinweis (University of Vermont)
“나치 시대 독일인들에게 교회와 대학이 얼마나 중요했는지에 대해 어느 홀로코스트 학자보다 강력하며 분명하게 주장한다. 미국의 점령 정책과 홀로코스트에서 성직자와 대학들의 역할에 대한 전후 담론에 대한 에릭슨의 평가는 그의 가장 중요한 공헌 가운데 하나다.”
- Paul Bookbinder (European History Quarterly)
“에릭슨의 책이 도움을 주는 이유는 그 공모 이야기를 1933년 히틀러가 총리가 된 때부터 시작하지 않고, 1923년부터 시작함으로써 바이마르 공화국을 특징지었던 오래된 종교적 및 이념적 분란을 분석하기 때문이다.”
- Charles Gallagher (German Studies Review)
“매우 읽기 쉽고, 자주 생각을 불러일으키며, 깊은 통찰력을 제공하는 탁월한 학술서적이다.”
- Derek Hastings (The Catholic Historical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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