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살 때 최초로 문학상이라는 것을 수상하면서 나는 그동안 호구지책으로써의 책과의 씨름을 그만두기로 하였다. 이제 나는 시인으로서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삶과의 지루하고 쓰디쓴 생존의 싸움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모든 고통의 기억들을 잠시 잊을 수가 있었다.
이때까지 나에게 실망하고 있었던 가족과 친지들도 다시 미소를 지어 주었다. 비로소 나는 위안과 승리를 누리게 되었다. 이제는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나 자신이 너그러운 심정이 되었고, 세상 사람들도 그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무서운 고독과 금욕과 위험 속에서 살아온 것인가를 나는 절감하고 있었다.
--- pp.16~17 「내 삶의 소소한 이야기」중에서
로마의 역사는 영광의 화관을 쓴 승리자랑, 정복당한 대륙이랑, 옛이야기 같은 개선 행렬 모습 등과 함께 이야기되었는데, 그러한 호화와 고귀에 비하면 독일의 가장 오랜 시대의 수렵과 피비린내 나는 방랑은 오랫동안 나에게 별로 기쁨을 주지 못했다.
질문, 대답, 그리고 이야기 형식으로 친절하게 주어진 아버지의 교육은 나의 마음속에 좋은 기초를 이루었다. 교실에서 교사의 입을 통해 들으면 지루하고 역겹게 느껴지던 것도 아버지에게만 가면 매력적인 형식을 갖추고, 열심히 공부할 가치가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 pp.60~61 「나의 소년 시절」중에서
나는 배를 저어 갔다. 그것은 보오크스 호수에서 파도 빛깔의 톤을 관찰하기 위해서이고, 몇 가지 색의 배합과 갖가지 빛의 굴절과 약간의 은빛 색조로 이루어진 그림을 보면서 나의 추억을 풍부히 하기 위해서였다. 서늘하고, 즐겁고, 경쾌한 기분으로 귀로는 운율을 듣고, 입술로는 시를 읊으면서 노를 저어 갔다. 그것은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몇 가지 아름다움의 표현 방법과 새로운 몇 가지 동태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탐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결국 이 가을의 목장, 올해 들어 처음 보는 이 목장, 즉 거역할 수 없는 부드럽고도 슬픈 사자使者를 발견하는 것으로 끝났다.
--- p.86 「1900년의 일기」중에서
당신의 영혼에 물어보라! 미래를 의미하고, 사랑이라고 불리는 영혼에 물어보라! 그러나 당신의 이성에 묻지는 말라! 세계사를 과거로 되돌아가 캐지 말라! 당신의 영혼은 당신이 정치에 너무 무관심했고, 일에 힘쓰지 않았고, 적을 증오함이 너무 적었고, 국경을 별로 견고히 하지 않았다고 당신을 탄핵하지는 않으리라. 그와는 반대로 아마 영혼은 당신이 영혼의 요구에 대해 너무나 자주 두려움을 품고 도피했다고 한탄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가장 어리고 예쁜 자식인 영혼을 상대하고, 함께 놀고, 그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일 시간을 갖지 않았다.
--- p.123 「영혼에 대하여」중에서
여자가 태아와 한 몸이며, 그 아이를 사랑하고, 이 세상에서 그 아이 이상 가는 것을 모르듯이 그대들도 그대들의 운명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하며, 이 세상에 운명 이상 가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운명은 그대들의 신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대들 자신이 그대들의 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운명을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사람은 운명에 쓰러진다. 마치 들짐승이 화살에 쓰러지듯이. 운명이 내부로부터, 자기의 본질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람은 운명에 의해서 강해지고 신이 된다. 운명이 자라투스트라를 자라투스트라로 만들었다. 그대도 운명에 의해서 그대를 만들어야 한다.
--- pp.202~203 「운명에 대하여」중에서
내가 언제든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나의 벗들이여, 우리는 다른 것에 대해서, 더 아름답고 더 즐거운 것에 관해서 이야기하자. 그때 우리는 함께 앉고 함께 거닐자. 각기 자기 자신 이외의 아무것도 신뢰하지 말고, 강한 자와 대담한 자에게 호의를 갖는 행복 이외에 아무것도 신뢰하지 말고, 혼자 있어도 강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어도 자기 자신을 신뢰하기를 나는 기대한다.
이제는 가라. 그리고 많은 연설가가 있는 거리를 다시 찾아가라. 산에서 왔던 늙은 이방인이 그대들에게 한 말을 잊어버리라.
--- pp.245~246 「작별」중에서
지금 견딜 수 없는 고뇌의 순간에 그는 이들 친구 쪽을, 그가 가지고 있는 유일의 것들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는 완전히 마음을 열고, 완전히 인간이 되고, 고뇌하는 자가 되어 있었으므로 그는 이제까지의 어느 때보다도 그들과 친근할 수 있었고, 제자들의 어떤 어리석은 말에서도, 어떤 미적지근한 태도에서도 위안과 격려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으리라. 그런데 그 제자들은 지금 깨어 있지 않다. 그들은 잠들어 코를 골고 있다.
이 무서운 순간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 모르나 극히 어린 시절부터 이미 내 마음속 깊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 pp.280~281 「도스토옙스키의 〈백치〉 수상」중에서
이 아침 한때는 시간을 초월하고 있었으며, 아무것도 부르고 있지도 않았고, 다가올 그 무엇을 표시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 충족되어 있었다. 그것은 완전히 나를 그 안에 감싸버리고 있었으므로 나에게 있어서도 ‘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도, 학교도, 반쯤 하다 만 숙제도, 어슴푸레 외워둔 단어도, 상쾌하게 환기가 된 식당에서 서둘러 아침 식사를 할 일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한 행복의 지속은 이때 아름다운 것의 증대, 기쁨의 증가와 과잉에 의해서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 pp.325~326 「나의 행복론」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