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비유가 있다. ‘교회를 개척해서 오랫동안 사역한 뒤, 자신의 생애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목회자의 마지막 메시지.’ 이제 목회자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마지막 교훈을 남기고자 한다. 성도들과 함께해 온 오랜 세월을 돌아보면서, 그는 하나님이 그 공동체를 신실하게 돌보아 오신 일들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들의 성공과 실패가 남긴 교훈을 일깨워 준다. 그는 성경과 교회 헌법을 언급하지만, 목적은 그 문서들의 어구 자체를 반복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조항들의 내용을 해설하여 참뜻을 밝히고, 자신이 없을 때에도 성도들이 그 교훈에 순종하게끔 격려하고자 함이다. 마침내 설교를 마쳤을 때, 목회자는 설교문 사본을 교회 장로들에게 전달하여,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에 관한 자신의 마지막 권면이 담긴 사본을 장로들이 잘 보존해 주기를 바란다. (…) 모세의 설교는 그저 일회적인 사건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설교 내용을 글로 기록해서 보관하라고 지시했다. 그 메시지가 이스라엘 백성의 삶에서 지속적인 역할을 감당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신명기 31장 10-11절과 24-26절에서는 그 역할의 단면을 볼 수 있다. 본문에서, 모세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향해 언약궤 옆에 설교문의 사본을 두고 정기적으로 낭독하라고 명령한다. 십계명이 든 언약궤 옆에 사본을 두게 한 일은 신명기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준다. 곧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성격을 드러내며, 그들로 하여금 다음의 구절에 담긴 언약의 핵심을 지키도록 촉구하고자 함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4-5). 이스라엘 백성은 세대마다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당부하는 모세의 음성을 늘 ‘들어야’ 했다.
---「2장: 신명기 개론」중에서
우상 숭배란 그릇된 대상을 바라보고 경탄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일의 진짜 위험 요소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미묘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서구권 그리스도인들이 씨름하는 문제가 어떤 석상이나 조각상들 앞에서 절하는 데 있지 않음을 안다. 오히려 그 문제는 섹스나 돈, 권력 혹은 명성 같은 것들을 추구하려는 마음에 있다. 그리고 신앙 안에서 자라 가면서,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삼가는 법을 조금씩 터득하게 된다. 하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인들까지도 걸려 넘어지는 문제경계하고 가 있으니, ‘우상 숭배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바깥에 머문다’고 생각하는 착각이다. 그러나 실제로, 가장 위험한 우상 숭배는 바로 그 예배의 행위 안에 자리 잡고 있다.
---「4장: 5-11장 하나님을 아는 방편 - 예배」중에서
집안일들을 통해, 우리 가정은 바깥세상의 삶을 위한 하나의 훈련장이 되었다. 부모님은 우리가 어른이 된 뒤에도 설거지나 잔디 깎는 일을 잘하게 되기만을 바라셨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이 일들을 통해 익힌 미덕과 가치관, 태도들을 삶의 다른 영역들에서도 드러내기를 원하셨다. 우리가 좋은 가족 구성원으로 자라나서, 나중에는 나라와 전 세계에서 선량한 시민이 되기를 기대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은 그저 이론적인 학습을 통해 쉽게 습득되지 않는다. 꾸준하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배워 가야만 한다. 사람들이 공동체를 위한 섬김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것은 한 차례의 어떤 강연을 들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자기 누이의 저녁 식사 그릇을 설거지함으로써 터득하게 된다. 다른 이들이 일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다고 해서 노동의 가치를 헤아릴 수 있게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여름 한낮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 잔디 깎는 기계를 돌림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게 된다.
---「5장: 12-26장 하나님을 아는 방편 - 율법」중에서
그런데 갑자기 내 머릿속에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두 분이 이렇게 서로를 알아 갈 환경이 되어 준 것은 처음에 두 분이 평생 헌신할 것을 다짐했던 그 혼인 서약이었구나!’ 서약에 토대를 둔 안전한 환경이 없었다면, 두 분이 서로의 참모습을 깊이 알아 가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이러한 통찰은 오늘날 젊은이들의 일상적인 관행과는 상반되는 성격을 띤다. 점점 더 많은 이가 먼저 동거를 하면서 과연 혼인 관계로 나아가도 될지를 알아보려 한다. 하지만 위에서 살폈듯이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서약과 헌신이라면, 그 조건 없이는 서로를 진정으로 알아 갈 수 없다.
하나님과 그분께 속한 백성 사이의 언약에 관해서도 이와 똑같이 언급할 수 있다. 언약의 약속들은 내가 하나님을 알아 가며 또 그분 앞에 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일종의 안정된 환경을 제공한다.
---「6장: 27-34장 하나님을 아는 방편 - 언약」중에서
은혜에 관한 어떤 설명을 들을 때, 여러분은 ‘그러면 굳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구할 필요가 없겠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진실에서 너무나 먼 생각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그분의 도우심을 절실히 바라는 상황에 있음을 전제로 삼는다. 모든 시간과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애쓰다가 철저히 실패하기 전까지는, 은혜가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헤아릴 수 없다. 예를 들어, 작은 물놀이터에 앉아 있는 사람은 해변에 있는 안전 요원들의 존재를 감사히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거센 물살에 휘말려 깊은 바다로 떠내려갔을 때, 안간힘을 다 써서 헤엄쳐 돌아오려고 하지만 이내 힘에 부쳐 물속에 고개를 처박은 채 죽음을 기다린다고 생각해 보자. 그때 안전 요원이 나타나서 목숨을 구해 준다면, 그는 요원의 존재에 깊이 감사하게 될 것이다. 은혜도 마찬가지다. 내 필요를 절실히 깨달을 때, 비로소 은혜의 소중함을 헤아릴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 근거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받고 누리는 법을 배워 가야 한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필요를 인정하지 않기에 그 은혜를 멀리할 때가 많다.
---「7장: 예수님과 신명기_ 하나님을 아는 방편 - 은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