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백조의 노래”(Swan Song, “마지막 작품”)에 해당하는 몇몇 “마지막 유언, 마지막 권면”이 나오는데, 야곱이 열두 아들에게 했던 마지막 유언(창 49장),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한 마지막 고별사(신 32,33장),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선포한 마지막 연설(수 24장), 다윗이 세상을 향해 기록한 마지막 시(삼하 22,23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나누신 마지막 담화(요 13-17장), 스테판이 산헤드린 공회를 향해 전파한 마지막 설교(행 7장), 바울이 에베소의 장로들(목사들)에게 이야기한 마지막 감동적인 고별사(행 20장) 등이 언급되는 것이다. 바울이 로마의 “네로” 황제 통치하에서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어 참수형당해 죽기 바로 얼마 전인 A.D. 68년경에,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그의 참으로 사랑하는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두 번째로 보내는 디모데후서 역시 매우 감동적인 “백조의 노래”(마지막 유언)이다. 그래서 이 서신에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의 경주를 인내로 달려가고 있는 젊은 사역자 디모데에게 주는 마지막 충고와 경고, 권면과 권고, 위안과 격려 등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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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굳게 붙잡고 맡겨진 것을 지키라(13,14절)
건전한 말씀들은 성령으로 감동을 받은 거룩한 사람들로부터 나온 말씀인 성경이다. 이처럼 성경에서는 “굳게 붙잡으라”고 권면하는 말씀이 많다. 우선 그리스도인은 선한 것을 붙잡으라(살전 5:21)는 명령을 받고, 확신과 소망의 기쁨을 굳게 붙잡아야 하며(히 3:6), 우리 믿음의 고백을 흔들림 없이 굳게 붙들어야(히 10:23) 한다. 신실한 말씀을 굳게 붙잡아야(딛 1:9)하고 훈계를 굳게 붙잡아 놓치지 말며(잠 4:13) 건전한 말씀의 본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
2. 바울을 떠난 사람들(15절)
아시아에 있던 동역자들은 데마처럼 바울을 떠났고 바울을 아주 곤란한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별히 두 명을 더 언급하는데, 그들이 푸겔로와 헤모게네이다. 이들은 바울을 떠난 많은 사람들 중 이름이 언급되는 사람들이다.
3. 바울을 열심히 찾은 사람(16절)
바울을 떠난 동역자들이 있었던 반면 바울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매우 열심히 찾아서 만났던 사람도 있었는데 그는 오네시포로이다. 오네시포로는 디모데후서 2:8의 바울의 권고를 정확히 실행한 인물이 된다. 바울은 죄수 된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을 위하여 고난의 동참자가 되라고 권고했는데, 오네시포로는 16절과 17절의 이 권고에 매우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응답한 것이다. 오히려 그는 바울을 매우 열심히 찾아 바울에게 생기를 돋워주었다. 바울이 지쳐 보이면 찬물과 마실 음료를 가져갔고 의사 누가의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달려가 약을 사오기도 하였다. 교도소에서 죄수들과 함께하는 것은 오네시포로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오네시포로는 하나님께서 누구를 “죄수”로 보시는지 알았던 것이다. 오네시포로는 바울이 체포되기 전에만 섬겼던 것이 아니라(딤후 1:18) 바울이 이송되고 난 후에도 섬겼다. 오네시포로는 바울을 따라가 로마까지 갔으며 결국 바울이 갇혀 있는 감옥까지 알아냈다. 즉 오네시포로는 그 넓은 도시에서 바울을 찾아내기 위해 열심히(17절) 찾아야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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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따른 훌륭한 군사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
1. 열을 흩뜨리지 않야 한다. 다른 부대와 섞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2. 한 가지 이상의 무기에 대해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적군의 무기에 대해서조차 발사, 분해, 결합할 수 있어야 한다.
3. 상황과 지형의 변화에 따른 전술을 구사하는 데 있어서 지혜로워야 한다.
4. 공포에 쌓였을 때 용감히 돌진해야 한다. 싸울 기분이 아닐 때 싸울 수 있어야 한다.
5. 자연 장애물을 넘을 수 있어야 한다. 달리는 것, 기는 방법, 수영, 위장, 행진, 점프하는 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6. 한쪽 눈과 한쪽 팔을 잃게 될 경우를 대비하여 반대편 손으로 무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7. 적군의 비행기, 탱크, 군대, 배, 군대의 움직임을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31페이지에서)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과 종교 재판, 위그노 대학살, 뮌스터 사건, 30년 전쟁 등의 수많은 비극의 궁극적인 배경은 성경을 올바로 나누지 못한 것이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교회를 나누지 못한 사람들은 교회를 통해 이 땅에서 구약적인 신정통치를 실행하려고 들었다. 물리적인 왕국인 천국(마 5:3-12; 11:12)과 영적인 왕국인 하나님의 나라(눅 17:20,21, 롬 14:17)를 나누지 못한 사람들은 “물리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려 들었다. 성경을 올바로 나누지 못한 사람들은 밀라노 칙령(A.D. 313)을 기점으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종식되자 “영적으로” 왕국(천국)이 임했다고 믿었으며, 이제 칼과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을 들고 행진해서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자들을 쓸어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다. 이런 자들에 의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수천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이 희생되었다(요 16:2 참조). 성경을 올바로 나누지 못한 대가는 이처럼 무서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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