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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후기를 대신하여 작가의 말 옮긴이의 말 |
저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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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윤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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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 p.11 살아생전 할머니는 언제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두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두운 꿈만 꾸지. 더욱 어두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꿈조차 꾸지 않는단다.” --- p.16 “하지만 결국은 모두 죽어.” 나는 시험 삼아 그렇게 말해봤다. “그야 물론이지. 모두들 언젠가는 죽지. 하지만 말이야, 그때까지 오십 년은 더 살아야 하고,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면서 오십 년을 사는 건 분명히 말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천 년을 사는 것보다 훨씬 피곤한 일이야, 안 그래?” --- p.24 “그럼 살아 있는 작가의 책은 읽지 않는단 말이야?” “살아 있는 작가는 아무 가치도 없으니까.” “어째서?”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걸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 p.30 쥐의 소설에는 뛰어난 점이 두 가지 있다. 우선 섹스 장면이 없다는 것과 한 사람도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 p.34 나는 좀 더 심플하게 쓰자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쓰지 않았을 정도로 심플하게. 심플한 언어를 쌓아, 심플한 문장을 만들고, 심플한 문장을 쌓아, 결과적으로 심플하지 않은 현실을 그리는 것이다. --- p.185「작가의 말」중에서 |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가’로서의 존재 증명
“연애하듯 읽는 책이 있다. 하루키의 소설이 바로 그런 경우다.” ―남진우(문학평론가) 소설 제목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트루먼 카포티의 단편소설 「마지막 문을 닫아라」의 마지막 문장 ‘Think nothing things, think of wind’에서 따왔다. 군조신인문학상에 응모할 당시의 제목은 ‘생일 축하하고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는데, 하루키는 만약 이 작품으로 상을 받지 못했더라면 그후로 소설을 쓰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고백한 바 있다. 또한 만약 『군조』가 아니라 다른 문예지의 신인상이었다면 당선이 안 됐을 거라는 소리를 관계자들로부터 들었고, 지금의 제목으로 바뀌어 책이 출판된 후에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게 소설이라면 나도 그 정도는 쓸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실로 간단하다. 갑자기 무언가가 쓰고 싶어졌다. 그뿐이다. 정말 불현듯 쓰고 싶어졌다. … 나는 좀 더 심플하게 쓰자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쓰지 않았을 정도로 심플하게. 심플한 언어를 쌓아, 심플한 문장을 만들고, 심플한 문장을 쌓아, 결과적으로 심플하지 않은 현실을 그리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말’에서 그런 하루키가 이후 『상실의 시대』, 『태엽 감는 새』 등 히트작을 연거푸 내놓으며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하리라고 예상한 이가 몇이나 되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가로서의 존재 증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하루키 초기 4부작(『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 『댄스 댄스 댄스』)의 제1탄으로서 리드미컬하게 다음 작품으로 연결시켜주는 고리 역할을 한다. 실제로 소설 속 ‘나’와 친구 ‘쥐’가 『1973년의 핀볼』과 『양을 쫓는 모험』에도 이어서 등장한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순차적 진행에 구애받지 않는 비선형적 서술법과 함께 옛날 음악이 흐르는 바, 왼손 새끼손가락이 없는 여자, 나지막한 섬 같은 신비로운 옛 고분, 데릭 하트필드라는 가상의 인물 등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하루키 특유의 서사 요소들이 이미 이 소설에 원형적으로 심어져 있다. 지리멸렬한 현재와 불투명한 미래 사이에서 방황하는 메마른 청춘의 상실감에 관한 이야기 이 소설은 1970년 8월 8일에 시작하여 8월 26일에 끝나는 18일 간의 이야기다. 1970년 여름, 대학생인 스물한 살의 ‘나’는 방학을 맞아 고향에 돌아와 따분한 나날을 보낸다. 대학을 중퇴하고 고향에서 지내는 별명이 ‘쥐’인 친구와 함께 ‘J’가 경영하는 바에서 하릴없이 맥주나 마시며 시간을 때운다. ‘쥐’는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장사를 시작해서 성공한 아버지를 가진 부잣집 아들로, 섹스 장면이 없고 한 사람도 죽지 않는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소설가 지망생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낯선 여자를 집에 데려다주면서 그녀와 가까워지고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두 사람이 각각 사랑의 거북스러움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받아들이는 동안, ‘나’의 여름은 석연치 않게 씁쓸하게 지나간다. 그리고 8월이 끝나갈 무렵, ‘나’는 고향을 뒤로한다. 겨울이 되어 ‘나’가 다시 돌아왔을 때, 왼손에 새끼손가락이 없는 여자는 레코드 가게를 그만두고 아파트에서도 이사 가고 없다. 그녀는 사랑의 홍수와 시간의 흐름 속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한 ‘무엇’을 그리고 있으나,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단지 바닷바람이나 여자의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헤어 린스 냄새, 떠나버린 가족, 죽은 여자 친구, 돌아갈 곳이 없어진 자리와 같은 여러 가지 소품과 에피소드를 통해 상실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각인시키고 있을 뿐이다. 메마른 청춘의 편린들을 부서지고 파편화된 그대로 담담하게 스케치하듯 그려내는 특유의 서사 기법을 통해 젊은 날의 시간은 서글픔과 안타까움에 젖어 흘러가며 누구도 붙잡을 수 없는 것임을 말해준다. |
연애하듯 읽는 책이 있다. 하루키의 소설이 바로 그런 경우다. 내게 있어 그의 작품은 독서나 분석의 대상이라기보다 차라리 매혹의 대상이다. 그의 소설은 강한 흡입력과 감미로운 도취감으로 읽는 사람을 사로잡는다. - 남진우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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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공허감과 결핍감에 젖은 고도자본주의 사회의 독자들에게 정신적인 영양소를 채워주며, 인간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도회적인 센스와 경쾌한 문장으로 세련되게 묘사한다. - 김석자 (단국대 일어일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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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작품 세계를 좀 더 확실하게 이해하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더욱 친근한 작가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윤성원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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