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예언과 문자예언
환상과 상징행위 예언(에스겔)
나라가 망하고 포로가 되어 바빌로니아로 끌려온 에스겔의 심판과 구원의 예언에는 유독 ‘환상’이 자주 언급된다. 스토리텔링성경 에스겔에는 ‘환상’이란 말이 125회나 나온다. 환상 가운데서 본 ‘하나님의 보좌’(겔 1:1-28), ‘예루살렘 성전’(겔 8:1-11:25), ‘골짜기에서 살아나는 마른 뼈들’(겔 37:1-14), ‘새 성전’(겔 40:1-42:20), ‘새 성전으로 돌아오시는 하나님’(겔 43:1-12), ‘새 성전에서 발원하는 강’(겔 47:1-12), ‘새 땅’(겔 47:13-48:35) 등, 환상에 관한 극적인 스토리텔링은 묵시문학에서 환상이 지닌 의미를 다시 발견하게 한다.
예언은 일반적으로 ‘말(씀)’이 중심이다. 그러나 에스겔에게서는 ‘말(씀)’을 입으로 선포하는 예언 선포와 함께, 무언극 같은 여러 가지 상징행위 예언이 결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에스겔이 납작한
흙벽돌을 가져다가 그 위에 예루살렘 지도를 그려 놓고, 그 성읍에 포위망을 설치하는 행위(겔 4:1-3); 예언자가 요 위에서 오른쪽 왼쪽으로 번갈아 누워가며 어떤 메시지를 무언으로 전달하는 행위(겔 4:4-6); 결박된 몸으로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예언을 선포하는 행위(겔 4:7-8); 밀, 보리, 콩, 팥, 조, 귀리를 섞어 빵을 만들고, 그것을 쇠똥에 구워 물과 함께, 사람들 보는 데서 시간을 정해 놓고 먹는 행위(겔 4:9-15); 이 밖에도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고 처리하는 행위(겔 5:1-4);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 것을 연상하게 하는 여러 가지 행위(겔 12:3-6,7); 떨면서 먹고 마시는 행위(겔 12:18); 두 막대기를 연결하여 하나로 만드는 행위(겔 37:15-28) 등이 모두 무엇인가를 상징하는 연출이다. 이러한 상징행위들이 스토리텔링성경 에스겔에 기존의 어떤 번역들보다 상세하게 잘 설명되어 있다.
문자 예언 (다니엘)
히브리어 성경에서 다니엘서는 예언서 혹은 선지서에 속하지 않고, 시편, 욥, 잠언, 룻, 아가, 전도서, 애가, 에스더, 다니엘, 에스라, 느헤미야, 역대상, 역대하와 함께 성문서(聖文書)로 분류되어 있다. 구약에서는 다니엘이 한 번도 ‘선지자’나 ‘예언자’로 불린 적이 없다. 다만 신약의 마태복음에서만 단 한 번 ‘선지자 다니엘’이라는 표현이 나온다(마 24:15). 그러나 그리스어 칠십인역에서는 다니엘서가 에스겔서와 호세아서 사이에 예언서/선지서로 구분되어 들어 있다. 개신교는 칠십인역의 이 전통을 따라 다니엘을 예언서/선지서로 구분한다.
벽에 기록된 문자는 어느 언어의 무슨 문자였을까?
지금 우리에게 전해진 다니엘서는 본문이 부분적으로 서로 다른 두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일부는 히브리어로(1:1-2:4a; 8-12장), 일부는 아람어로(2:4b-7장) 기록되어 있다. 둘 다 셈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다니엘서가 왜 부분적으로 같은 문자 다른 언어로 기록되었는가 하는 것은, 주석마다 여러 견해를 밝히고 있고, 우리의 스토리텔러도 자신의 의견을 진술하고 있지만(407-408쪽), 우선 우리의 관심을 바빌로니아 왕 벨사살의 질문과 유대인 포로 다니엘의 대답에 집중해 보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그게 대체 무슨 뜻이오?”(단 5:25). 벨사살 왕이 묻는다. 다니엘이 글자를 해독하고 그 뜻을 밝힌다.
“그 글자의 뜻을 해석하면 이러합니다. ‘메네’는 ‘수를 센다’라는 말인데, 곧 하나님께서 왕의 나라의 햇수를 계산하셔서, 이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데겔’은 ‘저울에 단다’라는 말인데, 곧 하나님께서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그 무게가 모자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바르신’은 ‘나눈다’라는 말인데, 곧 하나님께서 왕의 나라를 나누어서 메대와 페르시아 사람들에게 넘겨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444쪽, 다니엘 5:26-28).
바빌로니아 제국의 종말이 다가왔고, 현 집권 군주는 ‘깜냥’이 안 되고, 바빌로니아는 메대와 페르시아로 분리될 것이라는 뜻이다. 문무백관이 둘러선 바빌로니아 왕 어전에서 포로로 잡혀 온 한 유대인이 이런 말을 하다니, 그는 이미 목숨을 부지할 생각은 안 했을 것 같다. 이런 메시지를 감당할 왕이나 대신들이 또 어디 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바로 그날 밤에 벨사살 왕은 살해되고(단 5:30), 메대 사람 다리우스가 왕위를 잇는다.
글자는 해독하기 어려웠어도 아람어는 바빌로니아 궁중에서 갈대아어(바빌로니아어-수메르어와 아카드어)와 함께 통용되던 말이었다(단 2:4). 바빌로니아어는 쐐기문자로 기록되고, 셈어에 속하는 아람어는 일찍부터 고대 히브리어 글씨체(Ancient Hebrew Scripts), 혹은 원시-히브리어 글씨체(Paleo-Hebrew Scripts)로 기록되었다. 벽에 쓰인 글자가 바빌로니아의 쐐기문자였다면 바빌로니아 사람 중에 해독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대 히브리어 글자였을까? 바빌로니아 왕궁에서 아람어가 사용된 예를 보이고 있지만, 벽에 나타난 글씨의 자체(字體)가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를 묻게 되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우리에게는 벽에 쓰인 글씨의 자체 모양이 전해져오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여러 종류의 만화 성경이나 그림 성경이나 스토리텔링 성경 등이, 벽에 쓰인 글을, 네모꼴 히브리어 글씨체(Hebrew Square Alphabets)로, 혹은 고대 히브리어 글씨체로, 더러는 원시-히브리어 글씨체로, 혹은 페니키아 알파벳(Phoenician alphabet) 글씨체 등 여러 가지 글자체로 서로 달리 그려낸다.
우리의 스토리텔링성경 다니엘은 집게손가락 하나가 벽에 나타나 히브리어 알파벳 필기체 자음문자 여섯 개를 적은 그림을 그려 넣었다. 영어 굿뉴스바이블은 손 하나가 나타나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으로 철필을 쥐고 벽에 무엇인가를 끼적이는 그림을 보여준다. 모두 다 상상이다. 중요한 것은 다니엘이 읽고 해석한 내용일 것이다. 스토리텔링성경 다니엘에서 우리의 독자들이 스토리텔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언어와 문자와 메시지의 연관성을 줄곧 상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 민영진 (대한성서공회 번역실장, 총무 역임, 세계성서공회연합회 번역컨설턴트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