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한 생 끝날까지 내 서방에게 매여 산다. 일평생 행복감 한순간도 느껴보지 못하면서도 한 공간에서 지금까지 붙어산다. 지금까지 내 서방에게 내 살림 돈 도둑맞은 숫자가 수백 번인데, 천만다행으로 내 서방 이름 붙여놓은 집문서는 흔들어대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 자리 지켜왔다. 나의 인내심이 꼭 일곱 살 망둥이 같은 서방을 이겼다. 내 서방과의 팔자 전쟁에서 이제야 승패가 났다. 내가 내 옆 서방이나 내 자식들과 싸운 것이 아니고, 내 팔자와 싸우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냥, 나 자신의 질량대로 내 육신이 신의 기운과 싸우며 산 세월이었구나. 난 내 팔자 풀어내는 시간이 인생 끝자락까지 계속되었다. 전생 빚 갚는 시간이 최고로 긴 인생이었다. 내게 인연으 맺어진 내 서방은 전생 빚 하나도 없이 깨끗하게 태어난 행운아다. 그래서 하늘이 나 같은 전생 빚 많은 인생을 인연으로 맺어준 것 같다. 이 사람은 처복 타고난 복덩어리고, 난 머슴 팔자 타고 나서 이 처복 많은 행운아에게 이렇게 채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갚아야 할 빚이 너무 많아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되니 장시간의 세월 동안 지쳐서 나가떨어지지 말라고, 한 공간에서 이 행운아에게 네 빚 다 갚으라고 신들의 머리로 짜놓은 내 팔자라고 인정하게 된다. 난 틀림없는 바보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내 인생을 바보로 살았기 때문에 내 전생 빚 다 깨끗이 갚았다.
---「권오자_전생 빚 많은 내 인생」 중에서
책상 위에는 아직도 이 아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수학 문제 풀었던 이면지, 삐뚤빼뚤 쓴 한자 이름, 한자 공부했던 테스트지, 일어 가나 오십음도……. 마시던 물병까지 남아 있다. 1월 상순, 아이를 이곳 시골에 넘겨주고 딸은 인도로 떠났다. “요즘 게임에 빠져 있는 이 아이를 엄마가 인간 좀 만들어 줘” 하면서. 서울에 시댁이 있건만 가까이 있는 시어머니께 맡기지 못하고, 말도 못 하고, 멀리 있는 친정엄마가 마음 편한 게다. 일흔 넘은 할배 할매가 열한 살짜리 이 아이에게 뭘 해 줄 수 있을까……. 멍했다. 맛있는 거나 해먹이고 재미있게 놀면 되겠지 생각했다. 결국 할배 할매는 이 아이와 즐거운 2주일의 시간을 보냈다. 함께 시골길 산책도 하고, 함께 닭과 개에게 먹이도 주며 갓 낳은 달걀을 꺼내 날로 먹고, 함께 어항 속을 관찰하며 물고기 먹이도 주고, 함께 당근 케이크도 만들고, 함께 넷플릭스로 『반지의 제왕』도 보고. 아직 함께한 그 시간의 잔상이 남아 이 녀석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생각한다. 그때 다 읽지 못한 『반지의 제왕』 3권을 읽고 있을까. (……) 솔직히 친손보다 외손인 이 아이를 훨씬 자주 본다. 친손은 그 외할머니가 나의 처지가 되어 있겠다. 지금도 책꽂이 한 켠엔 빛바랜 녹색의 아주 작은 운동화 한 짝이 놓여 있다. 이 아이가 처음 걸으면서 이 첫 운동화를 신고 외가에 올 때 한 짝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장아장 걷던 아이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일까, 왠지 버릴 수가 없다.
---「서현숙_책상 위에는 아직도」 중에서
‘할매당?’ 정말 이런 당이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또 다른 세대들로부터, 나아가 할배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주목을 받을까? 그리고 이참에 할배당도 만들어진다면? 상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사실 할매와 할배는 같은 배를 탔음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라이벌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할배당은 할매당의 발뒤꿈치도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할매가 수적으로 유리할뿐더러 사회적, 가정적, 나아가 생물학적으로도 우위에 있음은 자명하다. (……) 나는 이제 공식적인 노인 축에 겨우 들어 ‘노령연금’이라는 것을 처음 받았는데, 내 큰 손녀는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고, 운전 면허를 땄고, 대학 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이 정도면 ‘할매당’의 당대표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만약 만들어진다면 말이다. 사실 ‘할매가 된다는 것’은 나이가 든다는 것이고, 뒷방으로 슬슬 밀려난다는 다소 쓸쓸한 현상이라고 생각했는데, 할매당의 출현은 나에게 나이듦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갖게 해주었다. 아니, 이런 상상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래서 이왕 상상하는 김에 할매당 당대표 후보로서 몇 가지 공약을 발표해보려고 한다. 내가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겪었던 불평등, 엄마로서 감당해야 했던 어려움, 아내로 그리고 며느리로서 당했던 불이익, 항상 그림자로 살아야 했던 섭섭함을 바탕으로 이제 할매가 되어 당당히 주장하는 것이니 가볍게만 보아주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손지영_‘할매당’ 창당을 쌍수 들어 반기며」 중에서
미숙 부부가 고도섬으로 들어올 때 주민은 불과 십여 가구에 불과했다. 섬에 온 후, 조용하고 단순한 삶에 만족했다. 돌투성이던 조그만 밭을 새로 일구며 철마다 나는 푸성귀를 먹을 때마다 몸과 마음이 푸르렀다. (……)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섬이 방송에 소개되고 다리가 생기면서 육지와 연결되는 바람에 육십여 가구로 늘더니 어느새 펜션과 민박 간판이 섬을 점령했다. 섬에서 나오는 생활 오폐수는 여과 없이 바다로 빠져나갔다. 바다가 아무리 넓고 깊다지만 쏟아져 나오는 폐수 거품은 한동안 섬 주변을 맴돌다 사라지곤 했다. (……) 미숙은 지방 신문에 그간 섬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소상히 써서 알렸다. 그동안 틈틈이 들어서 알고 있던 다자산에서만 산다는 희귀종 새들과 나무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몇 차례에 걸쳐 기고했다. 도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도 했다. 피켓에는 “모든 동물과 식물에도 가족이 있다. 다자산과 고도섬 앞바다가 죽으면 우리도 다 죽는다”라고 적었다. (……)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삶의 목표였고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미숙에게 이제는 섬을 지키는 일이 자기 목숨처럼 중요해졌다. 작은 섬이었기에 나무 하나 꽃 하나 새 하나 물고기 하나 모두 모르는 것 없이 다 안다고 느꼈고 그것들 모두 한 가족처럼 여겨졌다. 섬을 지키기 위해 미숙은 매일 바빴다. 눈은 침침해지는데 읽어야 할 책과 서류가 늘어갔다. 고도섬을 지키는 일은 곧 가족과 생명을 지키는 일과 같았다.
---「홍마리_52년생 김미숙」 중에서
삶의 질곡은 누군가의 숨통을 죄며 잔인하게도 짓밟는다. 그럼에도 한 줄기 숨통이 트이는 곳, 그곳이 바로 ‘온기를 품은 사람’이 있는 곳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그 ‘온기’, 관심과 친절함과 배려와 함께 나눔으로 이어지는 ‘온기’가 사람을 살게 한다. 그것도 사람답게.(……)특히, 「나의 올드 오크」에서 나오는 명대사 “우린 함께 먹을수록 더욱 단단해진다”와 그들의 구호가 된 “용기, 연대, 저항”은 더 이상의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 삶은 그런 거다. 그렇게 사는 거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냥 그거면 됐다. 그래서 제안한다. 50대 이상 아들들에게. 제발 손을 내밀라고, 그리고 그 손들을 서로 맞잡으라고. 연대하라고. 그대들에게 힘을 주려는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니.(……)현재 독거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대상이 바로 이 50대 이후의 남성들이다. 스스로를 제대로 돌볼 준비가 안 된, 경험한 적이 없어서 서툰 그들의 삶에 사회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겠는가. 못난 놈, 비겁한 놈이라 손가락질하기 전에 가까운 곳에 있는 이들을 들여다보고, 다독여주고, 손을 잡아주어 외롭게 떠나가려는 이들을 붙잡아주기를 소망한다. 그러므로 마을에 있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이끌어내고 싶다. 그들이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먹고 나누고 즐길 수 있는 공간, 종국에는 누구라도 함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홍영미_50대 이후의 아들들에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