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는 매일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외로운 곳이다.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서로의 기운이 잘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다. 매해 정규직으로 방송사 교양국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이는 사람은 넉넉히 세면 서른 명 정도로, 방송사 단위로 쪼개 보면 많아야 네댓 명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체셔 캣’처럼 미소만 남기고 각자의 일터로 사라진다. 특히 노동 시간이 길고 일이 험하기로 유명한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 들어간 사람들은, 안개 속으로 사라진 사람처럼 한동안 잊힌다. 우리는 매일같이 출근하고, 매일같이 실종된다
--- 「”0. 저널리스트는 아닙니다만”」 중에서
가까이에서 다큐멘터리의 시작과 끝을 바라본 경험은 값졌다.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떻게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일 것인지 태도를 배웠다. 오래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들었던 소중한 말들에도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사실도, 우리가 진실을 온전히 대변할 수 있다는 허세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도 배웠다. 한마디로, 겸손할 것을 배웠다.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시작했으나, 그 말이 얼마나 좁고 편협한지를 깨닫는 시간이 부지기수였으므로.
다큐멘터리는 하고 싶은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그 질문의 구체적 형상은 우리가 들은 사람들의 얼굴과 말에 있었다. 잘 듣는 것에서부터 다큐멘터리는 시작한다. 우리의 질문이 당신의 반문과 만나 다큐멘터리를 이룬다. 더 잘 말하고, 더 잘 듣고 싶어졌다.
--- 「2. 흔해 빠진 다큐멘터리 이야기”」 중에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끝없이 사건을 필요로 한다. 연못에 풀어놓은 ‘메기’처럼 타인을 향해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가 필요하다. 면접 과정에서 기질을 파악하고, 메기가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한다. 프로그램의 다이내믹스를 꾸준히 유지하기 위한 메기의 적절한 출연 비중은 일종의 영업 비밀이다. 프로그램의 제작자들은 그 황금 비중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사람들을 고른다.
설치한 카메라가 많을수록 다양한 장면들을 확보할 수 있다. 장면이 다양할수록 편집은 한결 수월해진다. 이야기의 흐름과 방향을 어느 쪽으로 틀어 버려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찍는다. 출연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아내 자연스럽게 이어 붙여 편집의 ‘흔적’을 없앤다. 우리는 그 매끄러운 화면에 울고 웃는다.
--- 「3. ‘리얼’의 그늘”」 중에서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갑작스레 마주한 비극의 흔적 앞에서 나는 당황했다. 이렇게 마주칠 줄 몰랐고, 어떻게 그 슬픔에 대응해야 할지도 몰랐다. 바다에 배가 가라앉을 때 남긴 상처는 넓고 깊었다. 사고로부터 몇 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날에 매여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할머니는 그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던 말과 표정을 카메라에 남겼다. 나는 이 말들을 실어 올려야 할지 고민했다. 영상을 아름답게 편집해서 보여 주는 것도 아픔을 나누는 방법일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 포맷 안에서 어떻게 온전히 아픔을 담아낼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서울에 올라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송엔 아무런 이야기도 나가지 않았다.
--- 「6. ‘팝니다: 타인의 고통, 공감한 적 없음.’」 중에서
파일럿 프로그램에 함께하자고 말을 꺼내면서 망설이지 않는 PD가 몇이나 될까? 성공이 보장되지도 않고, 자칫했다간 함께할 모든 사람들의 밥벌이가 휘청거린다. 압박감을 견디다 보면 누군가는 괴팍해지고, 공황에 시달리고, 우울증을 겪는다. 살아남은 연출들이 어딘가 마음에 딱딱한 흉터가 내려앉은 듯 보이는 게 그 때문일지도. 하지만 상처가 두려워 기회를 포기하기보다, 비난에 지쳐 중간에 그만두기보다 어쨌든 끝을 내려는 사람의 책임감이 프로그램을 만든다. 그게 내가 원하는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더라도 말이다. 선배는 해마다 첫 방송일이 되면, 여전히 연락이 닿는 모든 사람들에게 안부 인사를 보낸다. 우리는 어쨌든 끝냈다, 비록 엉망진창이었을지라도. 방송을 하며 무너질 때마다, 선배가 보낸 문자로 버텼다. 그게 꼭 선배가 의도한 건 아니었을지라도.
--- 「7.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