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은 흔히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논증을 전개하는 것이라고 이해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광범위하고 풍부한 작업이다. 변증은 기독교 신앙의 진리와 신뢰성을 확증하며, 아름다움과 선함, 진리에 대한 기독교적 비전을 충실하고 생생하게 소통함으로써 실재에 대한 기독교적 비전의 풍부함과 깊이를 파악하여 매료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진리는 설득하지만 아름다움은 매료시킨다. 설명과 추천(commendation)의 과정은 서구 문화가 기독교 내러티브와 점차 접촉을 잃으면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제는 전통적 기독교 어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영적, 도덕적, 실존적 비전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1. 변증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초기 기독교는 삶으로 살아낼 수 있는 지혜의 한 형태로 간주되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인간의 정체성과 목적, 의미, 진리 그리고 아름다움을 위한 추구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본성의 많은 부족함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는 개념적 또는 상상적 틀이었다. 기독교는 추종자들이 세상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통합된 삶을 살도록 도움을 주었고, 기독교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신의 은총이 필요함을 항상 인식하게 했다. 초기 기독교가 후기 고전 고대 시기에 호소력을 지녔던 부분적 이유는, 기독교가 삶을 변화시키고 인격을 갖춘 사람을 창조할 수 있다는 인식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기독교는 고통의 존재를 지적으로 설명하기보다, 고통에 대처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 「3. 믿음의 합리성」 중에서
변증가는 때로 기독교 신앙이 청중의 삶과 상황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창의적 사고를 해야 한다. 훌륭한 설교자의 특징 가운데, 기독교 신앙과 청중을 연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강력한 내러티브나 예화를 설교에서 창안하거나, 빌려 오거나, 고쳐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때때로 그러한 접촉점은 이미 자연 세계 안에, 혹은 인간 영혼의 심층 구조에 내장되어 있고, 동시에 그 수준 너머를 가리키면서 그들의 궁극적 기원인 하나님을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의 창조 교리는 변증적으로 풍부한 잠재력을 내재하고 있으면서도 너무 쉽게 간과된다.
--- 「5. 신앙의 접촉점 탐색」 중에서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이루어진 가장 괄목할 만한 발전 중 하나는, 내러티브, 즉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인류의 전반적인 문화와 특히 종교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인식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우리는 “우리가 듣고 말하는 더 큰 내러티브들과 메타내러티브들 안에 우리 자신을 놓음으로써, 실재가 무엇인지,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해하게 되며, 그것이 우리에게 실재적이고 중요한 것을 구성한다.” 우리는 단순히 “이야기를 만드는 동물”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동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 속에 살고 있다.
--- 「6. 내러티브 변증: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중요한 이유」 중에서
프랜시스 쉐퍼와 C. S. 루이스를 존경했던 켈러는 세속적 구도자들과 연결되려면 이 둘의 접근법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알았다. 그러나 그 접근법들은 리디머 교회의 상황에 맞게 조정될 필요가 있었다. 켈러는 쉐퍼와 루이스의 논리가 자신이 알고 만나고 있는 청중들에게는 너무 포괄적이고 복잡하다고 느꼈으며, 더 짧고 단순하며 이해하기 쉬운 접근법이 이들에게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켈러는 과거에 쓰여진 변증 저술들을 높이 평가했지만, 상황이 변했음을 인식했다. 루이스의 고전 『순전한 기독교』가 출판되었던 1950년대에는 사람들이 차근차근 펼치는 긴 논증을 따라올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켈러는 맨해튼 청중들과의 경험을 통해, 그들이 길고 장황한 접근법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마음도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켈러는 자신을 설교자로 간주했지만, 루이스는 명백히 저술가였다. 그리고 설교자들은 사람들의 주의를 붙들어야 하며, 신속히 요점에 도달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 「7. 청중의 중요성」 중에서
과학과 종교적 신앙이 서로 전쟁 중이 아니라면, 둘의 관계는 무엇인가? ‘과학과 신앙 사이의 영원한, 또는 본질적인 전쟁’ 신화가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며, 그 사회적 기원은 문화적 권위와 영향력에 대한 경쟁이라고 설명할 수 있음을 변증가에게 지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두 번째 변증적 요점도 제시되어야 한다. 즉 과학과 종교가 다르다는 말은 확실히 옳지만,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이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차이’와 ‘양립 불가능성’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과학, 윤리, 정치 그리고 종교적 신앙은 인간 지식의 스펙트럼 위에서 각각 다른 자리를 차지한다. 아마도 20세기의 가장 존경받는 과학자라 말할 수 있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인간이 과학, 종교, 정치, 윤리를 어떻게든 함께 붙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아인슈타인은 이 분야들이 지적으로 구별됨을 인식했지만, 그것이 공존 불가능함을 의미하지는 않음을 분명히 했다.
--- 「8. 질문에 답변하기: 몇 가지 변증적 논쟁」 중에서
이 책은 다양한 변증가들을 다루었고, 독자들이 그들의 다양한 접근법을 맛보고 생각해 보도록 돕고자 했다. 대부분의 변증가들은 그들 시대의 문화적 전제들에 대해 깨어 있었고, 그들의 역사적 상황과 청중에 맞추어 기독교를 제시하고 변호한다. 변증을 공부하는 어떤 학생들은 과거의 변증가들을 자신의 모델로 삼고자 하지만, 그럴 경우 과거의 문화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힐 위험이 있다. 우리는 과거의 변증가들에게서 배울 수 있지만, 빠르게 사라져 버리는 과거의 포로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 당신은 그들의 책을 읽으면서 현재의 당신 자신의 접근법에 대한 지식과 자극 얻기를 배워야만 한다. 예를 들어 프랜시스 쉐퍼로부터 배우면서도 1960년대의 복음주의적 합리주의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 팀 켈러가 포스트모던 시대의 맨해튼에서 쉐퍼의 접근법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생각해 보라. 당신은 그런 저술가들과 대화하면서도, 그들의 역사적, 지역적 특수성에 제한되지 않는 자신만의 변증 접근법과 목소리를 만들 수 있다.
--- 「9. 현인에게 배우기: 변증 사례 연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