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제사장 전승을 역사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설명하기보다는 미국의 기독교 문화가 보여준 관심사를 토론하는 데 기여할 생각으로 집필했다. 성서가 말하듯이 세상이 7일 동안 창조되었다는 것이 대중의 생각이다. 이에 관하여 더 많이 알기를 원하는 사람은 창조 사상을 반박하는 과학 서적들을 읽어볼 수 있다. 그런 책들은 창세기 1장이 말한 대로 세상이 창조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들어가기’의 더 읽을 글 참조). 그래서 창세기 1장을 설명하는 책이 필요하다. 만일 창세기 1장이 세계 창조를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 책은 바로 그런 질문에 대한 완벽하고도 비평적인 답변을 드리려는 것이다. 만일 제사장 역사의 특정한 시점에서 무엇인가를 논의하기를 원하면 그 답변은 곧장 창세기 1장에서 찾을 수 있다. 제사장 저자들은 어쩌면 그렇게 해주기를 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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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경(五經)의 제사장 전승(P)을 설명합니다. 제사장 전승(P)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를 구성하고 있는 세 가지 전승(J, E, P) 중 가장 마지막에 작성된 것입니다. 저자는 이것을 주전 6세기에 권력과 지위를 박탈당하고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들이 작성한 글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정치사회적 현실에 비추어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로 시작해서 제사장 직제, 안식일, 식사법, 언약, 할례, 장막, 제사, 사회질서라는 주제들을 차례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 제사장 전승의 초점인 성전의 운명이 신약성서에서 어떻게 반영 또는 변형되고 있는지 집요하고 일관성 있게 풀이합니다. 저자의 모든 논의가 방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전개하고 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 책의 페이지마다 그런 인상을 줍니다. 특히 구약성서가 1주일을 7일로 계산하는 방식의 기원을 고대 근동의 풍부한 자료를 활용하여 다룰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 p.13
창세기 1장은 세상 창조의 과정을 정확하게 기록한 것일까? 이 질문은 성경을 믿고 싶지만 창조 기사가 현대과학의 발견과 모순된다는 정보를 접하는 수많은 사람을 혼란스럽고 당황하게 만든다.
--- p.17
우리는 본문에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가 정확하다고 믿느냐 그렇지 않냐 대신에, 그 기사가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 p.17
성서에서 가장 먼저 창조를 언급한 곳은 출애굽기 15장 1~18절이다. 그것은 전쟁 승리를 축하하는 노래이다. 현재 형태는 기원전 10세기 다윗이 다스리던 시기 이전이나 그가 통치하던 중에 작성되었을 것이다. 이 노래는 세 가지 중요한 방식으로 전형적인 성서의 창조 기사에 속한다. 첫째, 창조는 명백히 특정 공동체나 사회의 세계 창조를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둘째, 창조는 특히 하나님이 바다의 물을 물리치거나 하나님이 그 물들을 통제하는 식으로 표현된다. 셋째, 창조 기사는 특정 공동체가 제의에 초점을 두는 일과 창조를 연결시킨다. --- p.40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는 누가 창조했는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다윗의 나라가 세워지기 전에 작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의 최초의 형태는 우리에게 익숙한 다섯 권으로 배열되지 않았다. 하나의 줄거리를 지닌 이야기로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시기에 기록된 네 개의 이야기가 얽혀있다. 우리는 성서의 처음 다섯 권의 토대가 되는 네 개의 문학 작품을 쓴 사람들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보통 J, E, D, P라는 글자로 쓴다.
--- p.55
창세기 1장은 일반적이고 우주 보편적인 창조 기사가 아니다. 그것은 6세기 후반 페르시아가 통치하던 때 바빌론과 예루살렘에 살던 아론계 제사장들의 제의와 연관되어 있고 바로 그 제의에서 유래한 기사이다. 그것은 이미 알려진 고대 근동의 창조 기사처럼 희생 제사를 바치는 국가 제의를 가장 중시하던 전통의 일부였다. 그런 전통은 종종 제의를 재건하고 제사장들의 이론을 다시 개념화하고 재확인할 필요가 있을 때 기록되었다.
--- p.78
고기를 먹는 엘리트 계층으로서 제사장의 위상은 제사장이 피우는 불을 안식일에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피우는 불로 만드는 규칙으로 인하여 강화된다. 제사장의 제단 외에는 어떤 고기도 요리할 수 없다. 이 이야기의 나중에는 안식일에 불을 피우지 말라는 지시를 가혹할 정도로 강조할 것이다.
--- p.126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는 율법과 질서, 잘못된 행동과 배상을 엘리트의 고기 소비를 강조하는 제의를 통해 처리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다. 제사는 제의는 물론이고 하나님에게 공물을 바친다는 의미와 페르시아 시대 유다 사회의 법과 질서를 지키는 장소로서 제의에 투자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제사장들은 지속적으로 곡식과 고기를 공급받았고 사회의 토지 주인들은 그들의 위상 때문에 식량을 풍부히 공급해주었다.
--- p.155
채무 면제법은 창세기 1장과 그에 따른 율법을 생각했던 제사장들의 시대에 이미 오랫동안 시행해 오던 관습이었다. 하지만 6세기의 제사장들은 이 법을 재해석하였다. 노동이나 토지의 채무면제와 담보물의 반환은 49년째에 시행하도록 규정했다.
--- p.168
예수는 자신을 성전 제사장의 관점보다는 구약에 나타난 예언자적 관점을 가진 존재로 여긴 것 같다. 그는 사람들을 치유했고 음식을 공급했으며 백성들의 힘든 삶을 통해 느낄 수 있는 현실과 달리 하나님은 그들이 행복하기를 원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성전에 근거를 두고 세워진 사회질서를 의도적으로 어긴 적도 있다. 그래서 정결, 온전함, 용서 그리고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복귀를 위해서 불가피하게 성전과 성전의 제의 집례자와 연결되어 있는 제의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했다.
--- p.189
요한복음은 독특한 복음이지만 여기서도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일차적으로 성전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유다 사람들’과 구별된다. 요한은 창세기 1장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창조의 말씀을 활용한 유명한 서언으로 시작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예수 안에서 그리고 그가 일으킨 심판 안에서 구현된 이 말씀은 성전에 초점을 맞춘 창조의 부당함을 드러내고 의롭게 판결하는 세상을 재창조한다. 창조는 타당하고 그 타당성은 반복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성전에 있는 자기 백성 가운데 머물지 않고 그들과 함께 ‘거한다(tabernacles).
--- p.203
제사장 저자들은 낯설면서도 매력적인 세계 안에 살았다. 우리는 제사장들을 이스라엘 나라의 종교 지도자로 생각한다. 그래도 그들이 하는 일은 대체로 값비싼 시설물을 관리하면서 짐승을 도살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사실상 비밀스러운 본문이 되어버린 글을 쓰는 일을 감독했다. 그들은 성전을 천막으로 생각했다. 그것은 세상을 현실과 다르게 상상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백성의 고된 노동의 수혜자였던 것과 동시에 백성의 고통을 경감시켜줄 목적의 율법을 재가했다.
--- p.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