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내면에는 죄성이 있고, 바깥에는 ‘죄를 권하는 사람들’의 유혹과 압박이 있으며, 위에는 악한 영의 은밀한 속임수가 있습니다. 이 힘에서 벗어나 생명의 길로 가려면 전심으로, 전인격적으로 지혜를 찾고 따라야 합니다. 내 힘으로는 죄로 이끄는 세 가지 힘과 싸워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것 자체로 생명력이 있어, 우리의 죄성을 무력화시키고 악한 영의 교란을 간파하여 물리칩니다. 지혜를 알기 전에는 죄악에서 기쁨과 만족을 누렸는데, 지혜를 깨달으면 그것이 나를 괴롭게 하고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을 직시합니다. 죄 된 본성은 지혜를 따르는 삶을 불편하고 거북하게 느끼지만, 결국 그 길에 참된 만족과 기쁨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 p.41~42
성적 윤리의 가르침을 꽉 막힌 꼰대들의 생각으로 여기는 우리 시대는 성서의 지혜에도 같은 평가를 내립니다. 그것은 3천 년 전에나 통하던 말이지, 지금은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지혜를 신실하게 실천한 사람은 압니다. 결혼 관계 안에서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사랑을 키워 온 사람들은 3천 년 전의 진리가 지금도 여전히 진리임을 압니다. 사실 이 책을 집필한 3천 년 전에도 지혜를 조롱하고 성적 정절을 어리석음으로 간주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두 가지 사실, 즉 주님은 내 마음 깊은 곳까지 감찰하시며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보신다는 사실과 죄의 길은 겉으로는 쾌락을 주는 것 같지만 결국 불행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 p.60
믿는 이들은 드러내 놓고 죄짓기를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죄된 욕망은 부정한 만족을 은밀하게 탐합니다. 유혹이 있는 곳으로 슬금슬금 다가가 자신을 흔들어 주기 바랍니다. 유혹을 빌미로 은밀한 욕망을 만족시키고 싶어 합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후 아담이 하와에게, 하와가 뱀에게 핑계를 댄 것처럼 말입니다. 아담이 하와에게 책임을 돌리는 듯했지만 실은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이처럼 죄는 인간을 가장 비겁하고 비열하게 만듭니다.
--- p.76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행위만큼이나 번 돈을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사용하는 일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릅니다. 돈을 많이 벌었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믿고 그 돈을 맡겨 주셨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믿으면 넉넉하게 베풀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이웃은 그로 인해 복을 누립니다. 10절 말씀이 마음을 울립니다. “내 이웃은 내가 잘되는 것을 보고 기뻐할까?” 이 질문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합니다. 더욱 정신을 차리고 바르고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겠습니다.
--- p.104
잠언의 말씀을 천천히 소리 내어 읽다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옳은 말씀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옳다, 옳다, 다 옳다! "는 감탄으로 끝나면 소용이 없습니다. 읽고 묵상한 말씀을 생각과 말과 행실로 실천해야 합니다. 묵상한 진리가 삶 속에서 육화되어야 합니다. 말에서 육화되고, 일하는 방법에서도 육화되어야 합니다. 진실한 말, 유익한 말, 친절한 말이 지혜의 육화이고, 주어진 일에 성실하고 근면하게 임할 때 진리가 육화합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지혜를 육화하고, 돈을 사용하는 방법에서도 그래야 합니다.
--- p.109~110
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악한 사람들의 번영을 보며 빠지는 또 다른 함정은 분노입니다. 자신만 손해 보고 사는 것 같아 분이 쌓입니다. 그런 감정에 빠지면 악한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쾌재를 부릅니다. 그것이 ‘자기 의’(self-righteousness)의 함정입니다. 하나님은 내 주님이시지만 그 사람의 주님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이라 해도 아픔을 당하면 같이 아파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그런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 p.186
진실에 마음을 걸어 잠그고 욕망대로 살기로 한 사람들을 돌이키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어떤 논리로도 설복되지 않고, 증거를 제시해도 돌이키기를 거부합니다. 자기들이 가장 지혜롭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진실에로의 방향 전환은 오직 스스로 깨우쳐 돌아서기를 선택할 때 가능합니다.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자기의 선택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돌아서는 것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의 돌이킴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사랑으로 품어 주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매력을 보여 주며,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 사도가 말한 ‘해산의 수고’입니다.
--- p.199
진리는 언제나 우리보다 앞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의 말씀 앞에 자주 나 자신을 세웁니다. 진리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고발당합니다. 그 고발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무릎 꿇을 때, 조금씩 진리의 사람으로 변해 갑니다. 진리는 마르지 않는 샘과 같고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구멍과 같습니다. 아무리 퍼내도 물은 고갈되지 않고, 아무리 깊이 파고들어도 바닥에 닿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혜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 p.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