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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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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6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116쪽 | 120*160*20mm
ISBN13 9791194108047
ISBN10 1194108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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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몸이 조롱받지 않으려면 ‘나아져야’ 한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재활 치료를 다니는 심정으로 여름 내내 묵묵히 요가 학원에 다녔다. 예쁘고 날씬한 몸에 한정되었던 관심은 그들이 입고 있는 옷으로 확장되었다. 그들처럼 입으면 내 몸을 감출 수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짐작했다.
--- p.16 「잘못된 몸!?」중에서

그 무렵 나는 8kg을 감량했다. 살을 꼭 빼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자꾸 살이 빠졌다. 빠지니까 더 빠지라고 다리에 주삿바늘을 갖다 대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생일 선물로 부탁한 시술이었다. 엄마도 “그래, 이제 넌 다리만 좀 해결되면 될 것 같아.”라고 말하며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지방 분해 주사와 보톡스가 내 몸에 처음으로 들어왔을 때의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 p.25 「8kg의 무게」중에서

나는 목적지가 불분명한 욕망에 휩싸인 채, 결핍과 강박만 남은 삶을 살고 있었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패션도, 나의 몸도, 나의 삶도 나에게 온전히 사랑받지 못했다.
--- p.32 「8kg의 무게」중에서

내가 내일 무슨 옷을 입고, 어떤 가방을 들지 고민하는 동안, 지구는 멸망해 가고 있었다. 심지어 나의 패션에 대한 고민과 소비가 지구를 멸망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었다. 거울속 내 모습만 중요하게 여겼던 내가 너무도 근시안적으로 느껴졌다.
--- p.37 「무해한 패션 사랑법」중에서

나는 키가 작지만 긴 기장감의 옷을 좋아했고, 스스로 뚱뚱하다고 여겼지만 신체 실루엣이 드러나도록 꼭 맞게 테일러링되거나 옷의 일부가 잘려 컷오프된 디자인, 심지어는 몸이 비치는 시스루 소재를 좋아했다. 몸을 드러내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몸이 드러나는 옷을 탐했다니, 그 간극에서 나의 모순이나 결핍이 엿보이는 것 같아 괜히 웃음이 새어 나왔다.
--- p.53 「20년 옷장」중에서

이 구조 안에서 기업들은 빠르게 수요를 창출해 시장을 키우고 더 많은 이윤을 내려는 목표만을 고민하느라 자신이 만들어 낸 치명적인 그림자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옷더미라는 대형 쓰레기를 마냥 땅에 묻거나 태우거나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넘겨서 없는 체할 수만은 없다. 이런 괴물 같은 구조에 나 또한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 껄끄럽고 거북하다.
--- p.65 「누구를 위한 쇼핑일까?」중에서

업사이클링이라는 ‘혁신’을 비웃듯, 가죽으로 잘 만들어진 내 물건들은 10년이 넘도록 튼튼하다. 옷뿐만이 아니라 가방, 허리띠, 지갑, 장갑 심지어 신발까지 그렇다. 옷과 패션 아이템을 좋아하는 마음만큼 나는 그것을 관리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그 결과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었다.
--- p.74 「업사이클링을 선택하는 그대에게」중에서

수선한 치마를 입으니, 마치 새 치마를 산 것 같은 기분이 들었 다. 이 변화가 나와 내 친구들 몇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작은 변화라는 사실도 좋았다. 이제 우스꽝스럽게 치마를 접어올리지 않아도 되어서 기뻤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체육복에서 교복으로 갈아입을 때, 실수로라도 누군가의 치마와 바뀌고 싶지 않았다. 왜냐면 이 치마는 이제 어디에도 없는 ‘내 치마’기 때문이다. 수선한 옷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 p.96 「바늘의 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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