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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코 여자
톰캣 202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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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소문
제2부 상처
제3부 불꽃

해설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2

고노 다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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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野 多?子

1926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1950년 〈문학자文?者〉 동인을 통해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며 1962년 《유아 사냥幼?狩り》으로 신초샤 동인잡지상을, 1963년 《게蟹》로 일본 문학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이라 평가되는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소설 《뜻밖의 목소리不意の?》와 평론 〈타니자키 문학과 긍정의 욕망谷崎文?と肯定の欲望〉으로 요미우리 문학상, 《미라 채집 엽기담みいら採り?奇譚》으로 노마 문예상, 《하얀 코 여자》로는 마이니치 예술상과 이토세이 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일본 전후시대에 활동한 여성 소설가로서 자신만의 입지를 다지며 1986년 여성으
1926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1950년 〈문학자文?者〉 동인을 통해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며 1962년 《유아 사냥幼?狩り》으로 신초샤 동인잡지상을, 1963년 《게蟹》로 일본 문학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이라 평가되는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소설 《뜻밖의 목소리不意の?》와 평론 〈타니자키 문학과 긍정의 욕망谷崎文?と肯定の欲望〉으로 요미우리 문학상, 《미라 채집 엽기담みいら採り?奇譚》으로 노마 문예상, 《하얀 코 여자》로는 마이니치 예술상과 이토세이 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일본 전후시대에 활동한 여성 소설가로서 자신만의 입지를 다지며 1986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아쿠타가와상 심사위원이 되어 20년간 활동했고, 2014년 일본 문화 훈장을 수여받았다.
어렸을 적부터 다른 사람의 책장을 구경하기를 좋아했다. 대학에서 경제학과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였다. 다른 나라의 책을 먼저 구경하고 소개하는 번역가의 일에 매력을 느껴 일본어 번역가가 되었다. 다양한 언어를 공부하면서 언어에 담긴 문화의 깊이를 이해하고 책을 통해 문화와 문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번역가가 되고자 힘쓰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코지마 히데오의 창작하는 유전자』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 『당신의 분노는 무기가 된다』 등 다수가 있다. 현재 출판번역에이전시 글로하나에서 다양한 분야의 일서를 번역,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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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8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08쪽 | 402g | 128*188*20mm
ISBN13
9791198575449

책 속으로

엘레나의 키가 자라자 양초 가게 엘레나라고 말하며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부류도 변해갔다. 엘레나가 어렸을 적에 가장 말이 많았던 아주머니들은 엘레나에 대해 별로 언급하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젊은 남자들 사이에서 양초 가게 엘레나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바로 그 엘레나의 암묵적인 의미도 변했다. 그들은 혼자 있을 때나 여럿이 있을 때나, 부모와 함께 있는 엘레나는 모른 척했다. 그러면서도 눈길이 맞으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거나 휘파람을 부는 정도의 일은 때때로 있었다. 엘레나는 슬쩍 웃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모에게는 아무래도 그 모습이 아직 어린아이처럼 보일지도 몰랐지만, 엘레나는 전부 꿰뚫어 보고 있는 듯했다.
--- p.17

“……전부 알고 있어. 네가 스스로 한 말을 분명하게 떠올리라고 네 입으로 직접 말하라는 거야. 빨리 말해봐.”
엘레나는 어쩔 수 없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러브레터 따위 하나같이 장황하고 허풍스럽고 자신에게 취해 있어서, 지극히 시시한 사람이라고 해도 러브레터랑 비교하면 훨씬 나아. 멋진 러브레터는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했어. 커다란 글씨로 ‘이쪽으로 와요’라고만 적혀 있었는데 그 사람은 얄궂게도 러브레터 쪽이 훨씬 나았어.”
“아아, 아아, 아아.” 프란체스카는 소리를 내어 한숨을 쉬었다. “우쭐해져서는 잘도 그런 경솔한 말을 했구나. ……러브레터를 받는 건 상관없어. 괜찮은 일이야.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 러브레터에 잔뜩 빠져있는 여자처럼, 그렇고 그런 여자처럼 여겨질 거야.”
--- p.29

“길에서 두 사람을 만났어요. 자코모가 성당에 감사 기도를 드리러 가서 양초를 100개나 켰다고 하더군요. 엘레나도 함께 있었습니다. 자코모는 상당히 감격한 것처럼 보였고, 내 손을 잡고는 ‘형님, 엘레나는 순결했습니다’라더군요…….” 곁에서 프란체스카가 “그래”라며 표정을 풀었다. “자코모는 엘레나가 설마…….” 프란체스카도 걱정했던 부분이기는 했지만 루도비코가 무슨 말을 하려 하자 프란체스카가 바로 끊었다. “무슨 말이니? 엘레나는 경솔한 부분은 있지만, 누가 뭐래도 바로 내 딸이야.” 프란체스카가 가슴을 두드렸다. 루도비코는 쓴웃음을 지으며 한쪽 뺨을 긁었다. “음, 감격을 잘하는 사람 중에 나쁜 남자는 없는 법이지.” 나르디 씨는 이렇게 말하고는 덧붙였다. “엘레나에게는 모든 것이 아주 잘된 일 아닌가.”
--- p.58

“저랑 산드로가 대체 무슨 관계라는 거예요!”
“산드로, 산드로, 그 이름 그만 불러!” 자코모는 분노에 찬 소리를 질렀다.
“……잘 들어. 네가 그놈에게 주문한 물건 같은 걸 우리 집 아이에게 줄 것 같아? 그런 걸 물릴 바에는 차라리 숯덩이를 물리겠어.” (…) 엘레나는 너무 억울했다. 게다가 갓난아기 입에 숯이 박혀 괴롭게 우는 모습이 떠올라 그 잔혹함이 마음을 건드려 눈물이 터졌다.
“뭐가 슬퍼서 울어. 울고 싶은 사람은 나라고. 아아아, 시끄러워! 울고 싶으면 그놈에게 가서 울어. 그놈이 기뻐하겠지.” 자코모는 종잡을 수 없는 말을 외치고는 나가버렸다. 엘레나가 부부 싸움을 하며 눈물을 흘린 건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그 한 번뿐이었다.
--- pp.74~75

자코모는 사람들에게 붙잡혀 꽁꽁 묶여 조사실로 끌려갔다. 동기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내는 보는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사람의 눈길을 끌어들입니다. 제가 떠나고 나면 분명 접근하는 놈들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아내가 영원히 나를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남겨두고 떠나야만 하는 이상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럴 생각으로 마지막 만남을 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허락된 자리라고 깨닫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막상 엘레나를 만나고 보니 도저히 그대로 돌려보낼 수 없었습니다.” ―11시, 사형 시각은 변경되지 않았다.
--- pp.116~117

사람들의 화제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겨우 그 정도의 보복을 받았다고 사람을 찔러 죽일 정도로 화를 낼까? 테오라는 농촌 마을의 그 불량배는 이쪽 거리에도 종종 어슬렁거리러 왔다고 했다. 엘레나에게 이상한 수작이라도 건 일이 있어서 자코모도 그 일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테오의 존재는 희미해져 갔다. 누가 뭐라든 이미 죽은 남자였다. 아무튼 죽음을 앞둔 남편에게 코를 물어뜯긴 전대미문의 일을 당한 것은 자코모의 질투만 작용한 것이 아니라 그 엘레나이기 때문이라고, 그녀에게도 그럴만한 일이 있었을 거라며 사람들은 다양하게 쑥덕거렸다. 자코모도 이미 코를 물어뜯은 남편이 아닌 그저 죽은 남자였다. 결국 주역은 코를 물어뜯긴 아내가 되었다.
--- p.123

“……어떤 일을 하면 어음 범죄가 되는 거야?”
“가장 많은 사례는 발행인이 다른 사람의 서명을 사용한 위조 서명이지.”
“그게 발각되면 처형돼?”
“아니야, 그렇게 쉽게 결정 나는 일은 아니야. 부모나 집안에서 전 재산을 내서라도 돈을 갚고 어음을 회수하거든. 무엇보다 목숨이 달린 문제니까. 돈이 마련될 때까지 어떻게든 기다려 달라고 매달리면 의리로 응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겠지. 이 범죄는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아. 처형까지 가는 일은 실제 있었던 범죄의 몇십분의 일 정도로 아주 예외적인 경우일 거야.” ‘그러면 안 되겠네’라고 엘레나는 생각했다. ―그럼 방화뿐이네.
--- p.271

엘레나가 방화의 이유를 깊이 고민하는 것은 방화 그 자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 죽고 싶기 때문도 아니고, 어떤 방식이라도 괜찮으니 누군가가 자신을 죽여줬으면 해서도 아니었다. 엘레나 는 벽돌에 고개를 올리고 도끼로 내려쳐진 자코모와 그저 같은 몸이 되고 싶었다. 엘레나는 양손으로 뒷머리를 완전히 빗어 올려봤다. 무척 시원했다. 이렇게나 기분 좋은 일인가. 그 부분을 도끼로 내려친다. 잘 갈아서 상당히 날카롭고 거기에 더해 무거운 도끼이겠지. 덩치 큰 남자가 양 손으로 그것을 머리 위로 치켜올려 있는 힘껏 내려칠 때 도끼는 공기를 가르며 휙 소리를 낼까. 그리고 그때 자신은 자코모와 처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 묶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자코모에게 연결되는 것일 뿐이다. 자코모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 pp.280~281

출판사 리뷰

“나는 아내가 영원히 나를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17세기 토스카나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
뒤틀린 욕망과 사랑이 바꿔놓은 하얀 코 여자의 삶

전구가 발명되기도 전인 17세기 이탈리아, 그곳에는 대를 이어 품질 좋은 양초를 판매하는 나르디 상회가 있었다. 100킬로미터 떨어진 피렌체 지역까지 양초를 납품할 정도로 규모가 있는 상회를 운영하는 나르디 씨의 고민거리는 딱 하나, 스무 살을 모두 넘긴 네 자녀의 혼사였다. 어린 시절에는 그 나이 애들 같지 않게 무뚝뚝한 표정과 적은 말수로 ‘양초 가게 엘레나’라고 불리며 시장 상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나르디 상회의 막내딸 엘레나는 어느덧 숙녀티를 내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자라, 이제는 마을 청년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양초 가게 엘레나’라는 별명의 의미를 바꿔나갔다.

그녀의 어머니 프란체스카는 그 시절의 여느 여인들(예를 들어 엘라나의 언니 아디나 같은)이 그러하듯 엘레나가 정숙한 여인이길 바랐지만, 엘레나는 사교 모임에 가 “러브레터 따위 하나같이 장황하고 허풍스럽고 자신에게 취해 있다”는 말을 하며 어머니의 화를 돋우기도 했다. 그랬던 그녀가 나르디 상회의 네 자녀 중 가장 먼저 결혼 소식을 알려온 건 뜻밖의 일이기도, 혹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그녀가 불행에 휩싸인 미망인이 되어 친정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리라는 사실을. 어쩌면 결혼 첫날밤, 자신의 아내가 순결한 여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귀한 양초를 백 개나 챙겨 성당에 달려가 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남편 자코모의 행동에서, 엘레나의 평탄치 못한 삶은 이미 예견되었을지 모른다.

처형대를 뒤로한 채 아내에게 달려든 사형수와
평생 ‘하얀 코 여자’로 살아가게 된 비운의 여인

결혼식을 올린 지 겨우 2년을 조금 넘겼을 무렵, 엘레나의 남편 자코모는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현장에서 체포된다. 짧은 결혼 기간 동안에도 엘레나를 향한 짙은 의심과 집착을 보인 자코모였기에,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신을 모욕한 이를 향해 칼을 휘두른 행동은 갑작스럽지만 어쩌면 언젠가 찾아올(혹은 언젠가 엘레나에게 닿았을지도 모를) 필연적인 위험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형대를 뒤로한 채 아내와의 마지막 접견에서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내에게로 달려든다. 자신의 죽음 이후 아름답고 젊은 미망인이 될 ‘양초 가게 엘레나’를 향해 다가올 남자들을 미리 처단하기 위해, 그들 대신 그녀의 얼굴을 훼손시키기로 결심하곤 그녀의 코를 물어뜯는다. 결국 엘레나는 또다시 자신을 세간의 입방아 위에 평생 올려둘 깊은 상처를 얻게 되었다. 그녀의 나이 고작 22살의 일이었다.

질투심과 욕망에 눈이 멀어 사형대를 뒤로한 채 아내를 공격하기 위해 달려든 사형수와 그로 인해 칩거 생활을 하며 자신의 코를 하얗게 칠하는 여자. 이 끔찍한 사건이 무색하게도 《하얀 코 여자》는 17세기 이탈리아 항구 도시의 이국적인 전경과 함께 너무나 평온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흘러간다. 토스카나 지역에서 생산된 품질 좋은 밀로 엮은 밀짚모자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거리 공연을 하는 악단, 교역이 활발한 수출항 시장의 상인들이 파는 조그마한 수제 바구니나 싱싱한 소라고둥, 드넓은 해안가를 가로질러 다니며 여유롭게 산책하는 수많은 마차들…. 저자 고노 다에코가 아쿠타가와상 심사위원이던 시절에 상을 수상한 소설가 가와카미 히로미는 그녀의 소설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마치 명필이 붓을 움직이는 것처럼 고노 다에코는 소설을 만들어내는 듯하다. 그리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것은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매우 침착한 형태에 의거한 수법, 그것만으로 고노 다에코의 작품은 완료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어쩐지 그 이상의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미스터리를 도무지 풀 수 없다.”

《하얀 코 여자》를 집어 든 독자들에게 고노 다에코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그저 파격적이고 섬뜩한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수백 년도 전에 이탈리아의 어느 도시국가에 살다 간 어느 한 여인의 삼십여 년의 생애 그 자체이다.

일본 아쿠타가와상 최초의 여성 심사위원이자
일본 예술가 최고의 영예인 일본 문화훈장을 수여받은 시대의 거장
고노 다에코의 문학적 정수를 담다

엘레나에게 발생한 일련의 사건은 그녀의 삶에서 일어나는 가장 충격적인 사건일지 모르나 이 소설이 보여주는 가장 기이하고 미스터리한 면모는 아니다. 남편이 아내를 때리지 않고, 아내가 원하는 사소한 일들에 싫은 티 없이 기꺼이 응해주는 것. 이것만으로도 17세기의 토스카나에서 자코모는 좋은 남편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했다. 그 사실을 알기에 엘레나는 종종 광기에 가까운 집착과 질투를 보이는 남편의 모습을 어머니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세간의 사람들이 엘레나에 대한 소문을 통해 그녀의 행실이나 사건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함부로 상상하듯, ‘남편’이란 존재에 대해 엘레나도 세간의 평판을 거울삼아 자신의 코를 물어뜯은 살인자라는 사실보다 세간이 말하는 ‘좋은 남편’으로 그를 평가했기 때문일까. 그녀는 사건 이후에도 그를 그리워하며 그와 다시 한 몸이 되길 원하고, 자코모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 또한 사형대에 오르기 위한 방안을 고민한다.

“엘레나가 방화의 이유를 깊이 고민하는 것은 방화 그 자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 죽고 싶기 때문도 아니고, 어떤 방식이라도 괜찮으니 누군가가 자신을 죽여줬으면 해서도 아니었다. 엘레나는 벽돌에 고개를 올리고 도끼로 내려쳐진 자코모와 그저 같은 몸이 되고 싶었다.” _본문 중에서

대체 누가 양초 가게 엘레나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녀가 방화를 계획하고 죽음을 통해 자코모와의 합일을 원하게 된 데는 복수심이나 자기 파괴적인 마음이 작용한 게 아니다. 이 소설은 단순히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남편으로 인해 삶이 무너진 여인의 삶을 통해 무엇이 올바른 삶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노 다에코는 소설 작법에 대한 저서인 《소설의 비밀을 벗긴 12장》에서 ‘소설은 인생의 지침이 아니다’라며 소설의 역할을 정확하게 명시한다.

“교양을 위해 소설을 읽는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다. 재미있기 때문에 읽었고, 지금도 그렇다. 재미있는 작품은 읽고 있는 동안의 기쁨에 더해, 다 읽고 났을 때의 묘미 또한 각별하다. 그 작품의 내용이, 설령 내용면에서는 거칠더라도, 혹은 주인공의 자살로 끝맺고 있더라도, 인간이라고 하는 것, 자연을 포함한 이 세상이라는 것이 이처럼 깊은 맛이 있는 것이었던가 라고, 인간과 이 세상이라는 것이 그 작품을 읽기 전보다도 신선하게 느껴진다.”

고노 다에코의 이러한 생각에 대해 일본의 소설가 다케다 다이준은 이런 말을 남겼다. “작가가 그럴 작정으로 쓴 작품이더라도, 독자는 역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찾아내려 한다”라고. ‘양초 가게 엘레나’라고 불리며 평생을 세간의 수군거림 속에 살아간 위태로운 여인. 우리는 그녀의 삶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와 같이 타인 시선과 평가, 뒷말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현실 속의 수많은 ‘양초 가게 엘레나’를 떠올리고, 그들이 그저 ‘하얀 코 여자’라 불리며 살아가지 않기를, 그들의 삶은 조금 더 행복할 수 있기를 염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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