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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의 연인
옮긴이의 말 |
Haruki Murakami,むらかみ はるき,村上春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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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가 머리카락을 건드린 순간, 거의 반사적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빠르게 스미레는 사랑에 빠져버렸다. 넓은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을 때 갑자기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그것은 어쩌면 예술적 계시에 가까운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우연히도 여성이라는 사실 따윈 그 시점의 스미레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 p.16 다음 날이 되어 출력한 내용을 다시 읽어보면 모든 문장이 한 줄도 빠져서는 안 될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모든 문장이 없어도 괜찮을 것처럼 보였다. 어떤 때는 절망감에 휩싸여 눈앞에 있는 모든 원고를 찢어버린 적도 있었다. 만약 겨울밤이고 방 안에 난로가 있었다면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처럼 꽤 따뜻해졌을 테지만 그녀의 단칸방에 물론 난로 같은 건 없었다. 난로는커녕 전화기조차 없었다. 아니, 자기 몸을 비춰 볼 수 있는 거울도 없었다. --- pp.23-24 “뮤에 대해 네가 느끼는 감정이 성욕인 게 틀림없어?” “백 퍼센트 틀림없다고 생각해. 그녀 앞에 서면 귓속의 그 뼈가 달그락거리면서 소리를 내. 얇은 조개껍데기로 만든 풍경처럼. 그리고 난 그녀한테 강하게 안기길 바라. 모든 걸 맡겨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만약 그게 성욕이 아니라면 내 혈관에 흐르고 있는 건 토마토주스야.” --- p.85 그때 난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멋진 여행을 함께하고 있지만 결국 각자의 궤도를 그리는 고독한 금속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멀리서 보면 유성처럼 아름답게 보이지만 실제 우리는 각자 그 틀 안에 갇힌 채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죄수 같은 존재에 불과해요. 두 개의 위성이 그리는 궤도가 우연히 겹칠 때 우리는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볼 수 있고 어쩌면 마음을 풀어 합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건 잠깐의 일이고 다음 순간에는 다시 절대적인 고독 속에 있게 되는 거예요. 언젠가 완전히 타버려 제로가 될 때까지 말이에요. --- pp.188-189 그러나 나는 스미레를 누구보다 사랑했고 원했다.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다고 해서 그 마음을 간단히 내버릴 수는 없었다. 그것과 바꿔야 할 것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 p.285 사람에겐 각각 어떤 특별한 연령대에서밖에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사건이 존재한다. 그것은 아주 작은 불꽃 같은 것이다. 주의 깊고 운 좋은 사람은 그것을 소중히 보관하고 커다란 횃불로 키워내 생을 밝히며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잃어버리면 그 불꽃은 영원히 되찾을 수가 없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스미레만이 아니었다. 그녀와 함께 나는 귀중한 불꽃마저도 잃어버린 것이다. --- p.286 |
“안이한 언어화를 거부할 정도의 체험이 아니면 실제 체험이라 할 수 없다.”
하루키 작품 세계의 전기를 이룬 문체 실험과 설정 전환 『스푸트니크의 연인』은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환상성, 깊이 있는 감정 묘사가 돋보이는 가운데, 초기 작품 세계에서 진전된 결정적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1995년 일본에서 옴진리교가 불특정 다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지하철 사린 테러를 일으킨 후, 일본 사회는 공포에 빠졌다. 역시 큰 충격을 받은 하루키는 사건의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인터뷰, 취재를 통해 르포르타주와 대담집을 펴냈다. 이때의 경험으로 그는 “안이한 언어화를 거부할 정도의 체험이 아니면 실제 체험이라고 할 수 없다”는 각성을 하고 그동안 무기로 써왔던 수사적 비유 중심의 서술을 보다 간결하고, 보다 중립적이고, 보다 반복해 사용할 수 있고, 보다 보편적인 문장으로 전환하기를 시도했다. 무심함(detachment)을 중요시했던 과거에서 책임감(commitment)을 생각하는 단계로 나아감으로써 소설의 역동성을 발전시킨 것이다. 이런 사유의 과정을 거쳐 하루키의 작품은 이전보다 더욱 깊고 성숙해졌다. “내가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쓰면서 한 가지 확고하게 결심한 것은 내가 종전까지 써온(무기로서 사용해온) 어떤 종류의 문체에 결별을 고하려 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가 결별하려고 한 것은 결국 이 작품의 서두에서 시도한 것과 같은 ‘비유의 범람’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통해 그러한 나의 문장이 갖는 몇 가지 수사적인 특징을 되도록 보이지 말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 나의 문체 속에 ‘돌출한’ 부분을 우선 제거하고 버릴 필요가 있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나의 문장을 보다 심플하고, 보다 중립적이고, 보다 많이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고, 보다 보편적인 것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바꿔 말하면 소설의 역동성을 문체의 레벨에서 스토리의 레벨로 점차 이행시키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또한 그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 비교적 자유로운 직업을 가진 주인공을 그리던 관성에서 벗어나 이 소설에서 처음으로 젊은 세대의 초등학교 교사라는 평범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작품의 1인칭 화자인 K는 24세로, 당시 하루키는 50세였다.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 이르기까지 1인칭 시점을 서술할 때면 작가와 비슷한 나이의 인물이나 과거의 스스로를 돌아보는 형식이 주였으나, 이 작품을 계기로 주인공의 나이가 점점 어려져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15세에 이른다. 『스푸트니크의 연인』은 하루키의 작품 세계를 한층 성장하게 한 변화와 전환의 축이라고 볼 수 있다.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한국인 여성 ‘뮤’가 여주인공 ‘스미레’보다 열일곱 살이나 나이가 많은 제2의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하루키의 장편소설에는 외국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예가 거의 없는데, 굳이 17세 연상의 한국인 여성으로 설정한 것은 아주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혹시 한국의 애독자들을 위한 팬 서비스인 것일까? 끝없는 우주 한가운데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를 맴도는 평행의 궤적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까지 고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이 행성은 사람들의 적막감을 자양분 삼아 회전을 계속하는 것일까?” ‘스푸트니크’는 1957년 10월, 러시아에서 세계 최초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의 이름이다. 미국보다 한발 앞서 우주 항해의 시대를 연 러시아는 한 달 뒤, 스푸트니크 2호에 개 라이카를 태워 최초로 생명체를 우주에 보내는 데도 성공했다. 러시아어로 ‘여행의 동반자’를 뜻하는 이름과 달리 그 안에 탄 라이카는 영문도 모른 채 우주의 어둠 속에서 혼자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지금까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에 자주 쓰였던 고독과 상실, 단절의 모티프가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는 우주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우연히 만나 마음을 나누고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도 끝내 이어지지 못하는 인물들의 사랑은 위성의 궤도와도 같다. 하루키는 고독이 사람을 성숙하게 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며, 닫힌 회로 속을 맴도는 과정 자체가 삶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여름 방학을 보내던 K에게 스미레가 보낸 편지가 도착한다. 뮤의 출장에 동행해 유럽을 여행 중이라는 내용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업무를 끝낸 둘은 우연히 만난 영국인이 소유한 별장이 있는 그리스의 작은 섬으로 향한다. 사랑에 빠진 스미레의 편지를 읽으며 숨이 막힐 듯 괴로워하던 K는 어느 날 새벽 한시라도 빨리 섬으로 와달라는 뮤의 전화를 받는다. 그리스에 도착하자 코발트색 바다 위에서 흔들리는 배들의 불규칙한 곡선, 선명한 여름 햇살이 비치는 건물들의 하얀 벽이 가득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러나 한적한 섬에서 그를 맞이한 건 스미레가 사라졌다는 소식이다. K는 고요한 해변에서 어떤 종류의 죽음을 느낀다. 영사관에 가기 위해 뮤가 섬을 떠나고, 혼자 별장에 남은 그는 스미레가 쓴 글에서 공통적인 이미지를 발견한다. 꿈과 분열, 비현실적이지만 선명한 사건들이 스미레와 뮤를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14년 전에 기묘한 사건으로 ‘진정한 나’의 절반을 잃어버린 뮤와 지금-여기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스미레. 뮤의 절반은, 그리고 스미레의 존재 일체는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 인간은 “지구의 인력을 단 하나의 끈으로 삼아 하늘을 계속 돌고 있는 스푸트니크의 후예”들이다. 그러나 작가는 지구와 위성이 인력의 끈으로 이어지듯이 서로에 대한 사랑을 통해 고독과 단절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고독과 단절, 소외와 절망이 오랜 인고의 시간을 거친 끝에 사랑과 회복이라는 큰 구원의 안식에 도달한다는 순례적이고 구도적인 주제가 여러 에피소드와 함께 씨줄과 날줄로 교묘히 엮여서 다양하게 변주되며 큰 감동을 자아낸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진정한 업적은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도 유머와 환상을 불어넣는 데 있다.” - 뉴요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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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심리적 은유를 섬뜩한 서사로 바꾸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 다니엘 젤레프스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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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부터 독자를 사로잡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보다 더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품을 쓴 적이 없다.” - 로스앤젤레스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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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힘과 고통에 대한 괴로우면서도 달콤한 이야기…. 독자의 마음이나 눈으로 채워야 할 부분을 완벽한 작은 이미지로 남김으로써 더욱 깊어졌다.” - 볼티모어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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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내가 오랫동안 읽은 어떤 것보다 깊은 감동을 주며 나를 확장시켰다. (…) 하루키는 장면 장면보다 훨씬 크고 짜릿한 작품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 줄리 마이어슨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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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자기소외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환상과 철학으로 끌어올린다.” - 프랜시 린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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