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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사람은 사랑에 이르다

: 춤, 명상, 섹스를 통한 몸의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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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7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22쪽 | 148*210*20mm
ISBN13 9791198219534
ISBN10 119821953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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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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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만을 생각하며 산 지 1년이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고장 난 뇌의 회로 때문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 만을 고민하며 살아왔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나는 겁이 많았다. 뛰어내릴 수도, 손목을 그을 수도 없었다. 죽기만을 바라며 사는 삶. 아무런 존재가치도 남아있지 않은 삶을 종결할 용기조차 없는 자신에 지친 나는 누워만 있었다. 그렇게 누워만 지내던 어느 날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죽어지지 않으니 살아야겠어.' 누워만 있어도 배는 고파왔고 나는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엄마가 차려주는 세끼의 밥을 꼬박꼬박 먹었다. 나는 절대로 죽지 못할 테고 이대로라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지옥 같은 삶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었다. 그건 끔찍한 일이었다. 죽든가 아니면 제대로 다시 살아보든가. 나에게 남은 옵션은 두 가지뿐이었다.

나는 갑선이 오름에 있는 나무들을 사랑했다. 이리저리 휘고 뒤엉켜있는 거친 나무들은 원초적이고 야성적이었다. 특히 비 온 뒤의 검은 나무들은 거칠게 땅 냄새를 뿜어내며 생명력을 과시했다. 그들은 나무라기보다는 원시시대에 살았던 거대한 동물들처럼 보였다. 나는 나무들을 보며 경외감을 느꼈다. 그들은 신일지도 몰랐다. 여전히 어둠에 빠져있던 시절의 기억이 나를 덮쳐왔고, 가슴에 있는 텅 빈 구멍 같은 것이 느껴져 가슴이 쓰려왔다. 그와 동시에 살아있는 나의 몸은 격렬하게 사랑을 원했다. 나는 사랑을 나눌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럴 때마다 나무는 나의 애인이 되어주었다. 나는 오름 정상쯤에 있는 나무 중 가장 남성적인 나무를 꼭 끌어안았다. 그를 안고 눈물을 흘리며 내 모든 걸 털어놓았다. 그러면 나무가 나를 쓰다듬으며 대답을 해주는 것만 같았다. '괜찮아. 다 괜찮아.' 오름에서 내려갈 때 아무도 없는 음기 가득한 숲이 두려워질 때쯤이면 사라졌던 개들이 어디선가 나타났다. 나는 이곳에서 모든 생명으로부터 보호받으며 새롭게 얻은 여린 생명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이 섬에 깃든 모든 신들이 나를 보호하고 돌보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열어주었다.

진정으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알게 되었다. 그때 내가 겪은 일은 슬프고 화나는 일이라는 것을. 내가 했던 아니 당했던 섹스는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었음을. 내가 들어야 했을 말은 “고마워.”가 아니라 “미안해.”였다는 것을. 나는 나를 사랑하고 소중히 하는 게 뭔지 전혀 몰랐다. 나의 몸과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소울메이트를 만났을 때, 내 몸은 드디어 느끼기 시작했다. 느껴주지 않았던 아픔과 슬픔이 봇물 터지듯 터져 흘러나왔다. 나는 참아냈던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사랑과 기쁨을 느꼈다.

사람들은 말했다. 사랑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 몸이 멀어지면 맘도 멀어진다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면 똑같은 이유로 다시 헤어진다고. 혼자서도 외롭지 않을 때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고.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이 나타난다고.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사랑에 대해서 들었던 모든 말은 다 거짓이었다.

기억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그를 그리워했다. 내 가슴엔 언제나 커다란 구멍 같은 것이 뚫려있었다. 나는 언제나 외로웠다. 누구와 함께해도 무엇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외로움이었다. 외로움은 그리움이었다. 나는 내가 이생에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로 가는 길이 가시밭길이라도, 피투성이가 될지라도 온 몸을 던져 그를 찾아내야만 했다. 사춘기가 지날 무렵 잠들기 전엔 늘 붉은 화면이 떠올랐다. 벌거벗은 두 사람이 몸을 포개고 있는 장면이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밤은 검고 차가웠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두려움에 벌벌 떨며 낡고 헤진 인형을 오른쪽 겨드랑이에 꼭 끼어야만 잠들 수 있던 나는 그 장면을 떠올리며 평온함을 찾았다.

억누를 때마다 나는 죽었다. 차가워질 때마다 나는 작아졌고 결국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뱉어내지 못한 말과 전해지지 않은 마음이 내 안에서 썩어갔고 독이 되어 나를 죽였다. 다시 태어나 새롭게 얻은 삶에서 나는 충동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면 그 마음을 전했다. 처음 만난 날이라 할지라도, 그를 잘 모른다고 할지라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내 안에서 생긴 뜨거운 마음을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 찾은 남자 손님의 객실 문틈에 ‘아쿠아리움에 같이 갈래요?’라며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끼워놓았다. 이 미친 행동의 결과가 어떨 것인가 심장이 너무 뛰어서 터져버릴 것 같았다. 우리는 함께 아쿠아리움에 갔다. 그에게서는 은은하고 부드러운 향수 냄새가 났다. 조말론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는 게이였고 우리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고 헤어졌다. 가슴이 아팠지만 그 이후로도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계속해서 마음을 전했다.

누군가는 고맙다며 친절한 거절을 했고 누군가는 낯선 접근방식에 놀라 달아났다. 어떤 방식이든 거절은 언제나 씁쓸하고 아린 마음을 남겼다. 하지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무미건조한 삶보다는 이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이 마음은 전해졌고, ‘어떤 이상한 애가 고백을 하더라.’며 그의 삶에 소소한 이벤트가 되었을 것이다. 때로는 내가 누군가가 사랑에 빠질 만한 멋진 사람이라는 사실이 위로가 되기도 하지 않나. 어쨌든, 나에게서 생겨난 이 마음을 세상에 낳고, 그 마음이 날개를 펼치고 가야 할 길을 가게 하는 게 나의 몫이었다. 행동하기 시작하니 나의 삶이 다채로워졌다. 내가 점점 더 확장되어 갔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무한한 감사를 느끼며 나의 손길에 사랑을 담아 그를 만졌다. 곧 숨길의 온도가 달라지고 우리는 한 몸이 되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강렬하게 내 안에서 움직였고, 의도하지 않은 체위가 저절로 나타났다. 그는 내 몸 안에 존재하지 않는 통로를 찾아내는 것만 같았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부위에서 극치의 쾌감이 전해졌다. 더 이상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소파 위에 쓰러졌을 때 그는 다시 한 번 내 안에 들어왔다.

쇠망치로 두들기듯 강한 자극 속에서 온몸이 부서지는 게 아닐까 두려우면서도 의식은 고요하고 깊은 어둠을 느끼며 평온함을 느꼈다. 격렬한 춤이 끝나고 둘의 몸이 떨어졌지만 강렬한 에너지는 연결이 되어있었다. 넘쳐흐르는 에너지 속에서 나는 격렬하게 몸부림을 쳤고 그도 나를 껴안고 계속 움직였다. 움직임이 멈추고 그를 꼭 껴안고 같은 길이로 숨을 쉬었다. 내 몸 깊숙한 곳에서 울음이 새어 나와 한참을 울었다. 그는 미동도 없이 나를 꼭 껴안고 울음이 멈추기를 기다려줄 뿐이었다. '이 순간 이후로 모든 것이 변할 거야. 절대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을 거야.'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언어가 있었다. 조금 두려워져서 그의 등을 꼭 감싸 안았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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