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깊은 밤에 일어난다. 경비 장치를 가동해 놓고 잠자는 오밤중에 난데없이 요란하다. “침입자가 있습니다. 주위를 살피십시오”라는 섬뜩한 경고와 함께 비상벨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이쯤 되면 웬만한 강심장도 섬뜩해진다. 겁에 질린 아내와 딸을 안심시키며 아들과 함께 야구방망이를 들고 바깥을 살피러 나간다. 추운 겨울에는 정말 고통스럽다. 긴장감 속에 집 주위를 살펴보지만 별일 없다. 이때쯤 되면 보안업체 직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도착한다. CCTV를 판독해 보면 늘 같은 결론이다. 동네 고양이가 적외선을 건드려 그렇다는 것이다. 맥이 탁 풀린다. 비상 출동한 직원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이게 무슨 개고생인가. 한껏 놀란 가슴, 다시 잠자기는 글렀다.
--- pp.13~14
강북 단독에 살면서 새로 생긴 취미는 한밤중 구도심 구석구석 걷기다. 자정 넘어 두세 시간 도심을 걷는다. 한밤에 나서는 나를 아내와 아이들은 이상한 사람이라고 놀린다. 그러나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밤길이 안전한 도시가 서울이다. 나는 안다. 깊은 밤 산책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자정을 넘긴 야심한 시간, 취객들의 푸념조차도 연민을 느끼게 한다. 버스 전광판에는 ‘운행 종료’ 빨간 글자가 반짝인다. 운행 종료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 p.27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수많았던 이야기, 부르던 노랫소리, 우리 형제들이 다투던 울음소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온 가족이 웃고 고함지르고 이야기를 나누던 옛집에는 인적도 없이 정적만 가득하다. 한참을 혼자서 컴컴한 방 안에 앉아 있다가, 이윽고 집을 나섰다. 문을 닫고 이제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옛집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잘 있거라 정든 옛집, 나는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코끝이 찡해지더니 눈시울이 젖어 온다.
--- pp.48~49
바지랑대는 혼자 서질 못한다. 빨랫줄 사이에 끼우고 세워야 독립이 가능하다. 비록 혼자 설 수 없는 긴 장대일 뿐이지만 빨랫줄 사이에 세워 두면 바람이 불어도 흔들흔들 균형을 잘 잡는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도 바지랑대 역할을 하는 사람 또는 그런 상황이 필요할 때가 있다. 끝과 끝에 서서 힘 있게 잡아 주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중간 어디쯤에서 받쳐 주는 바지랑대 역할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것이다.
--- pp.98~100
이 글의 정점은 낙엽을 태우는 냄새가 잘 볶은 커피 향과 같다는 데 있다. 이 구절이 몹시 궁금했다. 가난했던 개발 연대, 그때는 대부분 인스턴트커피 시대였다. 지금처럼 원두를 갈아서 향을 음미하는 호사는 상당한 상류층이 아니면 상상조차 힘들었다. ‘커피 볶는 냄새 = 낙엽 태우는 냄새’라니, 도통 모를 소리였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거리에는 스타벅스가 널려 있고 예가체프, 코나, 블루마운틴, 루왁 등 세계 최고의 명품 커피를 마시고 향을 음미할 수 있는 나라다. 그래도 그때 궁금했던 ‘낙엽 태우는 냄새 = 커피 향’을 실험해 보는 기회가 생겼다. 흐, 즐겁다. 단독 사는 즐거움 아닌가.
--- p.113
많은 한국의 기성세대와 마찬가지로 단독살이는 나의 버킷 리스트 중 최상층에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엔도르핀이 솟는 느낌이다. 처음 몇 년을 힘들어하던 아내와 아이들도 요즈음 상당히 만족해하는 눈치다. 사실 단독은 겨울만 빼면 천국이다. 즐겁고 황홀하기까지 하다. 이른 봄날의 수선화부터 5월의 장미, 모란, 작약, 황매화, 텃밭의 채소, 샛노란 은행잎 등등을 지켜보면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갓 스무 살 서울로 유학 와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살다가 이렇게 마당 깊은 집에 산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대견하기까지 하다. 그러면서 살고 있는 단독과 평생을 함께해야겠다고 새삼 결심을 다진다.
--- p.123
역사 이래 불은 인간의 마음과 정을 나누는 매개체로 자리매김해 왔다. 사람들은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소리와 깜박깜박하는 붉은빛의 리듬을 보며 위안을 찾는다. 그래서 개고생해 가며 캠핑이라는 불편함을 즐겁게 구매한다. 모기에 뜯기고, 땀에 절고, 심지어 북풍한설에 오들오들 떨면서도 불을 피우고 모여 앉아 히죽거리며 시간을 죽이는 데에 돈과 정성을 들이는 것이다. 최근 들어 전기 레인지까지 속속 등장하면서 많은 도시인은 점점 불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게 되었다. 진짜 불이 주었던 유대감과 정서적 토대, 재미는 과연 어디서 채워질 수 있을까?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애써 불멍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 pp.150~151
동네 전체에 악취가 진동한다. 대형 사고다. 숙성된 소변의 악취는 가히 상상 이상이다. 지린내가 골목길에 넘쳤다. 영하 9도의 날씨, 마당 수도는 얼지 말라고 꽁꽁 싸뒀다. 또 물로 씻으면 골목길이 빙판으로 변한다. 방법은 없었다. 하늘이 다 노래졌다. 너무 당황스러워 정신 줄을 놓을 뻔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창피하다며 나를 구박한다. 속수무책, 119를 부를 수도 없고…. 급히 편의점에 가서 락스를 서너 통 구입해 골목 곳곳에 뿌렸다. 독한 락스 냄새가 지린내를 어느 정도 가라앉혔다. 추운 겨울 새벽, 다행히 집집마다 문을 꼭꼭 닫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대낮에 터졌다면 쫓겨날 뻔했다고 아내가 맹공격했다. 평소 내 편이던 딸아이까지 동네 창피해 못 나가겠다며 나를 왕따시킨다. 신발 안까지 소변에 흠뻑 젖은 채 우왕좌왕하는 내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시라. 나는 창피하기도 하고 ‘유기농은 개뿔’ 스스로를 자책하며 우울한 하루를 보냈다.
--- p.168
그러나 잠시, 눈 오는 풍경은 나의 우울했던 이십 대를 소환한다. 유학을 떠나기 전 이십 대 몇 년간, 나는 광화문 인근 정동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그래서일까? 눈 오는 날,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들으면 신산했던 젊음이 스쳐 간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했고 언젠가 우리 모두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이 아직 남아 있다. 향긋한 5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다시 찾아온다’는 노래다. 오늘 눈 오는 풍경을 보며 이 노래를 들으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단발머리에 얼굴이 뽀얗던 그 여학생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아, 모두가 단독주택 때문이다. 눈 쌓인 마당 깊은 집 때문에 쓸데없는 감상으로 눈시울을 적시게 되는 것이다.
--- pp.177~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