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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보내려는 마음

에세이&이동
박연준 | 창비 | 2024년 08월 16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10.0 리뷰 14건 | 판매지수 5,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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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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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년 08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216g | 115*188*14mm
ISBN13 9788936439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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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MD 한마디

[박연준이 전하는 마음의 안녕] 박연준 시인의 신작 에세이. 일상의 명사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흔한 단어에 얽힌 추억과, 그것을 시인만의 언어로 풀어 내린 정의를 담아낸다. 이제는 잊힌 공간 ‘다락‘처럼, 사라지려 하는 것들을 들여다보는 것. 지루함에서 특별함을 찾아내는 그만의 우아한 사색은 우리의 마음에도 안녕을 전한다. - 에세이PD 이주은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매 순간 성실히 사라지는 것을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잃어버린 줄도 모른 채 잃어버리는 것은 얼마나 많은가. 물건만이 아니다. 물건을 둘러싼 생각, 기억, 추억을 잃어버렸다. 시, 사람, 기분을 잃어버렸다. 기쁨, 슬픔, 사과해야 할 타이밍, 포옹과 눈빛을 나누어야 마땅했을 인사를 잃어버렸다. 휘파람, 라일락, 고백을 잃어버렸다. 어려움 없이 누리던 모든 ‘첫’, 순수한 호의, 갈망, 몸에 내려앉은 떨림을 잃어버렸다.
--- p.18

소풍은 여행보다 가볍고, 마실보다 무겁습니다. 외출은 외출이지만 목적이 있는 외출은 아니지요. 여행이 휴가를 얻어 일정을 짜고 먼 곳으로 다녀오는 ‘사건’이라면, 소풍은 ‘느슨한 일상’입니다. 풍선 같은 걸음으로 나가서 휘파람을 불며 돌아오는 게 소풍입니다. 여행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라면 소풍은 한자리에 머무는 일입니다. 여행이 후유증과 추억, 피로나 여흥을 남긴다면 소풍은 별다른 것을 남기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바람 냄새 정도를 머리카락에 묻혀올까요? 소풍은 쉬었다는 기억을 남깁니다.
--- p.41

가장 좋은 선물은 바란 적 없는데 ‘톡’ 주어지는 선물이다. 아무 날도 아니고 아무 일도 없는데 당신이 내미는 선물이 좋다. 머리 위로 도토리 한개 떨어진 듯 ‘어맛’ 하고 놀라며 받을 수 있는, 가볍게 건너오는 선물이 좋다. 꽃, 쿠키, 피겨, 핸드크림, 책 등이 가벼운 선물로 알맞겠다. 신나는 기분과 즐거운 기분이 합쳐져 ‘작은 환희’를 만들어내는 순간이다. 환희-고요한 마음에 환타를 콜콜콜 부어주는 것 같은 기분! 누군가에게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적이 있다면, 당신은 그를 좋아하는 것이다.
--- p.79

편지는 무거운 사랑을 담을 수 있는 가장 가벼운 그릇이다. 편지를 기다리는 사람은 멀리서 걸어오는 누군가의 마음을 마중하는 사람이다. 누가 그 정갈한 기대를 탓할 수 있을까?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자주 볼 수 없지만 그와 마음으로 연결되는 친밀감을 간직하고 싶다면 편지를 써야 한다. 구체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면 그 관계는 깊고 두터워질 게다.
--- p.89

이 글을 쓰는 도중에 깨달은 한가지! 자신에게 관대한 사람은 잠을 양껏 잘 자는 사람, 자신에게 혹독한 기준을 들이대는 사람(자신과 삶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사람)은 잠을 못 자는 사람, 자신에게 관대하지도 혹독하지도 않은 사람은 잠을 적당히 자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잘 자는 사람은 자신에게, 그리고 자기에게 일어난 크고 작은 일에 관대한 사람이 분명하다.
--- p.141

잠을 잘 자기 위해서라도 자신에게, 자신의 생활에 관대해야 한다. 싫은 사람은 안 보고 살면 그만이지만 스스로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미워하면 사는 게 고역이다. 눈떠서 잠들 때까지 좋아하지 않는 주인공을 데리고 영화를 찍어야 하는 감독처럼 지겨울 게 아닌가. 아, 도대체 누가 그런 영화를 보고 싶어한단 말인가?

좋은 잠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잠이다. 잠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어 ‘나’를 잊어버리는 잠이다. 장자가 말한 좌망(坐忘) 같은 잠! 앉아서 나를 잊어버리는 일이 매일 밤 나에게 와주길 바란다. ‘나’를 지나치게 붙들고 살지 말자. 들들 볶지 말자. 잠시라도 나를 좀, 잊자!
--- p.142

모든 좋은 시는 첫 줄에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이때의 떨어짐은 밀리거나 고꾸라져 떨어지는 상태가 아니다. 두 발이 땅 위에 붙은 채로 어떤 웅덩이나 절벽 없이, 한자리에서 아래로 사라지듯, 떨어지는 일이다. 어느 날 심장이 무릎 아래로 툭, 떨어져버리듯이.
--- p.168

소설을 읽는 일은 쉽지 않다. 누군가 맛있는 음식을 숟가락으로 떠먹여주는 일과는 다르다. 그보다는 자갈이 섞인 모래사장을 오랫동안 혼자 걷는 일, 걷다가 ‘새로운 돌’을 찾는 일이다. 새로 찾은 돌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발견하는 일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들여다보다 감정이 치밀어올라 침잠하는 일이다. 살아온 삶을 멈추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는 일이다.
--- p.176

세상엔 두 종류의 작가가 있다. 자신의 헝클어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가와 없는 작가. 메리 루플은 전자다. 자신의 말이 진실에 가깝다면, 산발한 채 퀭한 얼굴로 침 흘리며 울부짖는 모습을 얼마든지 보일 수 있는 작가다. 독자들은 영리해서, 그리고 영리하므로 이런 작가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나는 메리 루플의 글을 ‘사랑하므로’ 읽는다. 사랑하여 읽을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눈물 닦고 눈곱 떼고 머리 빗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생을 이야기하는 작가는 근사할 순 있지만 사랑하고 싶어지진 않는다. 이상한 일이지. 우리는 때로 누군가의 흠결에 매혹된다. 흠결이야말로 그 사람 고유의 것이기 때문이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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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라는 반복이 바람〔風〕으로 기능할 때가 있다. 그러면 풍화가 시작되고 나의 일상 하나하나가 조금씩 낡고 닳고 푸석해진다. 나는 그럴 때 박연준 시인의 글이 꼭 절실해진다. 그의 글은 언제나 정비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렇다. 그가 고양이를 이야기할 때, 나의 고양이가 정비된다. 그가 운동을 이야기할 때, 나의 운동이 정비된다. 그가 ‘나’는 틀렸다고 이야기할 때, 나의 틀림이 정비된다. 그에게 있고 나에게도 있는 지극히 평범한 것들에 대해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고 나면, 나에게 있던 흔한 것들이 어느새 ‘유일한 것’으로 달라져 있다.

독자로서 책을 읽는다는 건 작가와 만날 약속 장소가 불쑥 생겨나는 일 같다. 다만 작가와는 만나기도 하고 못 만나기도 한다. 나는 대체로 못 만나는 독서를 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나는 약속 장소가 아닌 나도 모르는 어딘가에 홀로 당도하곤 한다. 그러나 박연준 시인의 책을 펼치면 그와 나는 반드시 만난다.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분명하게 느껴지는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이 ‘둘의 감각’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 요조 (가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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