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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8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290쪽 | 128*195*20mm
ISBN13 9791193024799
ISBN10 119302479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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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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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꿈이야. 꿈.’
수오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다른 설명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꿈에서 깨어날 방법을 알지 못했다. 좌절의 순간 한 줄기 빛처럼 등장한 사람은 형이었다. 숲에 서 달려오는 형을 보았을 때 수오는 기뻤다. 이것이 악몽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제 깼구나?”
형이 수오를 바라보았다. 새빨간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형은 밤마다 울타리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드디어 성공한 모양이었다. 부모님을 따돌렸다고 생각했을 테니 즐거울 만도 하다고 수오는 생각했다.
“이리 와. 같이 숲으로 가자. 도깨비 찾으러.”
형이 수오를 일으켜 세웠다. 단지 잠에 취했다고 하기에는 극심한 어지럼증이 동반했다.
--- pp.6~7

열두 살인 형이 상주를 맡았다. 수오와 형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손님이 오면 절을 하고 인사를 했다. 사람들은 상복을 입은 아이들을 보며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들은 축축한 손바닥으로 수오의 손과 얼굴을 마구 쓰다듬었다. 수오는 내내 악몽에서 깨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중략)
수오는 틈이 날 때마다 형의 손을 꽉 잡았다. 그 손을 놓치면 어디론가 떨어져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세게. 그리고 조문객들을 노려보았다. 그들은 울 줄만 알지 아무 것도 몰랐다. 어른들은 고작 열두 살짜리 형이 얼마나 어른스러운지, 얼마나 든든한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은 형을 보고 이렇게 속삭였다.
“저 아이가 제 부모를 죽였다.”
--- pp.11~12

녀석을 본 호두의 첫마디는 이랬다.
“죽기라도 하면 어떡하냐.”
호두는 성가신 것을 데리고 왔다고 툴툴거렸다. 그래도 쓰러져 있는 녀석을 바깥에 함부로 내칠 수는 없었다. 환자여서가 아니라 무거운 포대 자루처럼 커다랗고 남들 눈에 잘 띄는 것이어서 그랬다. 다행히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는데도 녀석은 천천히 기력을 찾아 갔다. 소년은 사흘 간 내리 잠만 자다 눈을 떴다. 녀석의 이름은 이태오. 스물한 살이었다.
--- pp.21~22

조아랑이 수오 쪽으로 고개를 돌린 것은 그때였다. 10미터쯤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수오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조아랑의 시선이 수오를 향하고 있었다. 어둠에 기대 수오가 긴장을 늦춘 탓이었다. 대충 숨어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자만했었다. 틀렸다. 어둠은 동물을 더욱 예민하게 만든다. 이럴 때일수록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한다고 되뇌며 수오는 우선 검은 모자를 깊이 눌러썼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조아랑의 눈길을 피해 휴대폰을 확인하는 척 고개를 숙였다.
--- p.34

수오는 형이 그리웠다. 형이라면 어느 때든 수오 편을 들어줬을 것 이다. 수오가 무슨 행동을 하든 그랬다. 형은 중학생이던 수오가 친구의 게임기를 훔쳤다고 싸움이 붙었을 때도 교실로 내려와 상대 녀석에게 대신 화를 내주었다. 수오가 한 짓이 뻔한데도 내 동생은 도둑질을 하는 아이가 아니라고 우악스럽게 우겨 댔다. 결국에 형은 친구의 사과까지 받아 내는 데 성공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오늘처럼 형 불러.”
형이 수오에게 게임기를 안겨 주며 말했다. 수오는 그 날 새벽 몰래 나와 울면서 게임기를 내다 버렸다.
‘방관이 아니라 방조야.’
우 선배의 그 말이 수오의 정곡을 찔렀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 p.42

“바로 오늘 아침 뉴스에 나왔어. h의 사망 추정 시기는 세 달 전. 공교롭게도 h가 너와 형을 찾아 나선 시점이지. 그 이후 h는 실종됐고, 사망했어. 너는 이 사실을 진작부터 알기라도 했던 것처럼 지속적으로 h에 대해 검색했지. 그리고 결국 도주를 감행했어. 시신이 발견되어서일 거야. 뻔하고 전형적인 용의자의 행동이야. 그런데 아직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어. 사라진 사람이 h뿐만이 아니라는 거야. 우리 형도 사라졌지. 네 주변의 두 사람이 사라졌어. 너한테는 거짓말을 할 이유가 충분해. 벌을 받겠다니 지금 원한다면 경찰서에 신고해 주지. 그 맹인도 너의 실체를 알 권리가 있으니까.”
아랑은 순간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h의 죽음. h가 죽었다. h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 pp.81~82

태오는 TV에서 h의 부모가 오열하는 장면을 보았다. h가 씹쌔라고 부르던 아버지가 흰 도복을 입고 웃고 있는 녀석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었다. 두 형이 나란히 침통한 표정으로 그 뒤를 따랐다. 태오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었다. 슬프지 않았다. 죄책감도 없었다. 후회는 약간 들었다. 일이 복잡하게 꼬여 버렸기 때문이었다.

경찰은 h의 마지막 행적을 쫓고 있었다. 꽤 오래전부터 철저히 신분을 감추고 살았던 h의 흔적을 찾는 것은 시작부터 난관인 것 같았다. h는 어디서도 본명을 쓰지 않았고 남의 신상 정보를 도용했다. 가출 이후 전입신고는커녕 병원 기록조차 없었다. 그를 알고 있다는 사람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조건 만남을 사칭하고, 온라인에 허위 매물을 팔고, 퍽치기나 일삼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녀석이 그런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이 여러모로 태오를 안심시켰다.
--- pp.110~111

“형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수오가 입을 열었다. 긴 눈썹이 축 처져 있었다.
“일하고 있었지.”
“형 우리 돌아가자.”
“지금은 안 돼.”
태오는 수오의 손을 떼어 내고 고개를 저었다.
“형. 이 얼굴…….”
수오가 태오의 볼을 만졌다. 멍든 곳이 아려 왔다.
“지금까지 다 너희 짓이었던 거야? 집 앞을 서성거리고 주변을 어슬렁거린 것 모두?”
태오의 말에 아랑이 손가락으로 O 사인을 그려 보였다. 태오는 헛웃음이 날 것 같았다. 태오와 병철 그리고 호두를 초비상으로 몰고 간 것이 고작해야 아랑과 수오였다니. 다행히 경찰이 이쪽까지 찾아오지는 못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호두와 병철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 p.126

방 안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리병에 바람이 스치는 소리 혹은 누군가의 웃음 또는 울음소리. 병철의 등 뒤에 소름이 돋았다. 병철이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자 베개에 얼굴을 묻은 호두가 보였다. 그는 소리 죽여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호두가 이토록 화가 난 모습은 처음이었다. 계획이 어긋나서였을까. 누군가 자신의 얼굴을 봤기 때문일까. 태오가 밀쳐서였을까. 아니면 그 모든 이유 때문일까. 분이 풀리지 않는지 주먹으로 바닥을 꽝꽝 내리치던 호두가 비죽 고개를 들어 병철을 바라보았다.
“그 녀석을 죽여 버리자.”
호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작은 반점 같은 핏방울이 얼굴 곳곳에 맺혔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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