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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4월의 눈처럼

인생은 4월의 눈처럼

청소년 걸작선-37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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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5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252쪽 | 302g | 140*215*20mm
ISBN13 9788983947666
ISBN10 8983947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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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빠와 다니는 게 좋다. 우리는 환상의 콤비다. 개 이름이었던 이름값을 하는지, 나는 위치감각과 상황파악력이 출중하다. 나는 백일몽 따위에 빠지지 않으며, 테리어 특유의 뚝심이 있다. 알아채야 할 것이 있으면 내가 누구보다 먼저 알아챈다.
한마디로 나는 퍼즐에 능하다.
짐을 거의 다 꾸렸을 때, 마리에카가 와서 길과 상의한 결과 나도 그냥 뉴욕에 가기로 했다고 말한다. 나는 이미 머릿속으로 단서들을 정리하고, 가능성들을 타진하고, 가설을 세우고 있다. 나도 오래전에 아빠 친구 매튜를 만난 적 있다. 하지만 하도 어렸을 때라 기억은 안 난다. 매튜는 우리 가족에게 전설적인 존재다. 옛날에 길의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매튜 아니었으면 나도 이 세상에 없었을 거다. 그 점에 대해 매튜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 싶다. 그런데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는다.
우리가 런던을 떠났던 때가 언제였던가, 먼먼 옛날 같다. 그때 나는 어린애였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도 어린애지만.
--- p. 9

내가 이미 아는 것은 이렇다. 매튜와 수잔은 시내에 있는 대학의 교수다. 매튜는 닷새 전에 실종됐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8개월, 가브리엘이 태어난 지 14개월째에. 매튜는 맨몸으로 나갔다. 갈아입을 옷도, 여권도, 돈도 없이. 아침에 평소처럼 대학으로 출근하듯 나가서 강의에 나타나지 않았다.
내 생각에, 불쑥 나간 것 자체는 특별히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개 일종의 원심력에 의해 한 자리에 잡혀 있다. 그러다 모종의 이유로 그 힘이 멈추면 뿔뿔이 날아가버린다. 그런데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다? 일부러 떨어져 있는 것은 무섭고 고통스럽다. 거기다 갓난아기까지 남겨놓고? 그건 내가 생각해도 극단적이다. 그건 인정머리 없는 일이다.
나는 골똘히 생각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면 그게 뭘까?
--- p.20

뭔가 안 좋은 일에 얽힌 게 아닐까 싶어, 길이 말한다.
어떤 일?
나쁜 조직에 휩쓸렸다거나.
어떤 나쁜 조직? 나는 순간 무슨 회사 같은 걸 상상한다. 악당으로 가득한 회사.
길이 또 어깨를 으쓱한다. 마약? 도박? 그러고는 한쪽 눈썹을 으쓱한다.
밀매, 매춘, 밀수, 무기 거래, 돈세탁.
길이 내 어휘력에 웃는다.
음, 물어봤으니 말인데, 매튜가 매춘조직을 운영할 것 같지는 않아. 매튜 스타일이 아냐. 적어도 내가 아는 매튜의 스타일은 아냐. 하긴 사람은 변해. 살다가 어떤 계기로 딴사람처럼 변하기도 해. 가끔 있는 일이지.
문득 불안감이 몰려와 내 숨을 막는다. 캣이 생각난다. 없는 일이 아니다. 내가 안다. 잘 알던 사람이 한순간에 변할 수 있다. 가능성 있다. 그 가능성이 나를 메스껍게 한다. 나는 길에게 내 기분을 들키기 싫어서 가브리엘을 꼭 끌어안고 녀석한테 뽀뽀한다.
하지만 대개는 그 반대야, 길이 말을 잇는다. 누군가를 한 30년 안 보고 살다가 어느 날 다시 만났는데, 그 사람이 옛날과 하나도 다르지 않을 때가 더 많아.
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혼잣말처럼 말한다. 매튜는 힘든 일을 겪었어. 이번에도 오언 때문일지 몰라. 하지만 내가 뭘 알겠어? 혹시 전혀 다른 이유일지? 혹시 매튜가 게이고, 거짓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매튜랑 오래 알고 지냈다 해도, 그렇다고 남의 머릿속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는 거니까. 세상엔 별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
--- p.66-67

아이는 어느 시점에서 어른이 되는 걸까, 궁금하다. 갑자기 될까, 아니면 천천히, 단계적으로 될까? 우주의 온갖 비밀이 드러나고, 어른스러움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와서 뇌세포를 영원히 바꿔버리는 나이가, 또는 그런 순간이 정해져 있을까? 아이였던 내가 어느 날 슬그머니 빠져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걸까?
진짜 삶을 사는 것이, 내가 어른이 되는 것이, 전혀 상상되지 않는다. 전혀 있음 직하지 않은 변신이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반려자나 누군가의 엄마나 누군가의 법의학자가 될지 몰라. 언젠가 나도 술고래가 되거나 아무에게도 얘기할 수 없는 아이를 낳을지 몰라. 언젠가 나도 모든 것으로부터, 나만 아는 이유로, 도망칠지 몰라.
하지만 그런 내가 지금의 나로서는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내가 어른이 되는 것이 그려지지 않는다. 지금의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나를 상상할 수 없다. 늙었거나 결혼했거나 죽은 내가 그려지지 않는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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