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필은 특히 복음의 핵심으로 겸손과 순결사상을 강조하였다. 그는 제자들에게 자주독립정신과 청빈과 검소의 삶을 강조하였다. 그 자신 스스로 짚신과 고무신을 신었고, 산중 길을 걸을 때에는 추운 겨울에도 맨발로 다녔으며 단벌옷에 불을 때지 않은 차가운 방에서 지내며 하루에 한 끼도 먹지 않는 청빈하고 가난한 삶을 살았다. 그것이 그가 보았던 예수의 삶이었고 스스로 예수의 거룩한 삶을 본받고자 노력하며 본을 보였다.
--- p.22
무학인 이세종과 초등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이현필, 이에 반하여 당대의 석학이요 오산학교 교장으로 함석헌의 스승이었던 유영모, 이들의 만남은 동광원의 영성 형성에 중요한 것이었다. 온몸으로 말씀을 실천했던 이현필과 온몸으로 말씀을 묵상했던 유영모의 만남은 동광원 영성, 한국적 기독교 영성의 새로운 길을 돌파하는 계기가 되었다.
--- p.24
“참다운 구제란 자기가 쓸 몫에서 떼어내어 하는 것이다. 자기가 먹을 것 안 먹고 해야지, 먹고, 입고, 쓸 것을 다 쓰고 남은 것으로 구제하는 것은 가치 없는 일이다! 헐벗은 사람에게 옷 한 벌 주더라도 자기가 입은 옷이 다 해어져 누더기가 되기까지 입으면서 주어야 참 동정이 된다.”
--- p.29
“사람은 괴롭게 살다가 즐겁게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일생을 마치셨습니다.” 이 말은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이 제자들에게 한 설교의 핵심 내용이다. 그는 자기가 설교한 그대로 고난 가득한 삶을 살다가 기쁨으로 이 세상을 떠나간 향기 나는 참 예수꾼이었다.
--- p.40
이세종의 길은 좁은 길이었다. 우리 생각에는 큰 문 열어놓고 대대적으로 전도하며 “아무나 와도 좋소!”하고 싶으나 진리는 언제나 좁은 길이다. 이 세상에서 진리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환영받는다. 세속적 기독교는 넒은 문이다. 참 신자가 찾아가야 하는 길은 좁은 문, 좁은 길이다. 좁은 문도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십자가를 지고 들어가는 좁은 문이다. 나사렛 예수의 길은 바로 이 길, 좁은 길이다.
--- p.48
유영모의 영성이 믿음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강조한 초월성이라면, 이현필의 사상은 이웃에 대한 비계산적 무차별적 구체적 사랑의 실천이었다. 두 영맥의 만남을 통해 자칫하면 은둔적이고 신비적인 영성으로 치닫거나 봉사적 구제사업의 정치적 사회사업으로 치달을 수 있었던 동광원이 균형 잡힌 영성을 갖추게 되었다. 유영모의 민족적이고 한국적인 여운이 뒷받침되어 한국의 토착적 주관을 가진 믿음을 이 땅에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 p.79
“사람이라는 것이 일평생 예수님을 믿고 선한 일도 한다고 하겠지만 제일 귀한 것은 순수한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선생님 말씀이 순수한 사랑을 하라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믿음도 순수한 믿음을 가지라는 그런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 무작정 무엇을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최후의 일각까지 진심을 다해서 생명을 바친 청년처럼, 일을 적게 해도 그 마음이 질적으로 순수하게 하라, 진실하게 하라, 생명을 바쳐서 사랑하라, 그렇게 교훈하셨습니다.”
--- p.86
‘아, 이래서 선생님은 내게 밥을 얻어먹으라 했구나. 배고프면 한술 얻어먹고 사는 길이 있구나.’ 그렇게 자원해서, 스스로 자기 마음에서 우러나서 밥을 얻어먹었을 때는 진실로 인생이 갖는 생존에 대한 공포심과 불안에서 해방된다는 그 희열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 p.93
그분 생애는 사랑이 꽃 피었어요. 아주 환하게 자주 웃음을 주시고 매우 기쁘게 살라고 기쁘게 살라 하시고 춤도 추라고 하셨어요. 명랑하게 기쁘게 살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p.107
밤새 주무시지 못하고 앉은 대로 지새우면서도 선생이 밤하늘을 쳐다보며 총총한 별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모습은 보기에도 엄숙했다. 만상이 깊이 잠들고 제자들도 자고 어두움의 장막이 완전히 땅을 덮은 속에서 혼자 깨어 이선생은 잘 부르시는 찬송을 고요히 읊조리고 있었다.
--- p.119
예수를 닮으려 했기에 아픔이 있었고 아픔을 환영하며 살아갔기에 기쁨이 넘쳤던 행복한 참 예수꾼 이현필이 오늘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작게, 낮게, 없는 듯이 살자.”는 것이었다. 오늘의 괴로움은 괴로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일 기쁨의 씨앗이 된다는 것이다.
--- p.162
이현필 선생과 숨어서 수도하는 동광원 지체들에 대해 생각할 때 흔히 기도 밖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들은 가난한 사람과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걱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 p.183
한 번도 육식 아니 커피 한잔 마시지 않던 그가 고깃국을 마신 것이다. 그때가 바로 1955년 가을이었다. 이것이 유명한 파계이다. 이현필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보혈을 의지하는 신앙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세상 사람 보기에 그는 금욕주의자 같았고 철저한 율법주의자처럼 보였다. 더욱이 곁에서 지켜본 제자들에게 비춰진 인상이 하나님의 은총이나 그리스도의 보혈보다 철저한 절제를 통해 자기완성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오해될 것을 염려하여 의도적으로 파계를 했던 것이다.
--- p.185
이현필의 평생 갈망과 목표는 순결과 자기완성 그리고 고난당하는 이웃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이었다. 그는 걱정하는 이웃이 있으면 자기도 밤새 잠 못 이루고 함께 걱정했고, 형제들이 기뻐할 때는 자기도 춤출 듯이 기뻐하였다. 우리도 이현필의 길을 가자. 이것이 바로 나사렛 예수의 길이리라.
--- p.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