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진이 자기 자신에게 반한 나이는 기억도 못할 어린 시절부터였지만, 이렇게 성적인 욕망까지 갖게 된 건 이차성징이 시작될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열네댓 살 때부터 거울을 보며 자위를 해 왔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자와 사랑을 직접 나눌 수 없음에 절망하며 여러 개의 거울을 지금처럼 깨부쉈다. 거울을 부숴도 새로운 거울 앞에 서면,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그 존재는 다시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를 정열적이고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봐주곤 했다. 열다섯 살, 그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 자신의 사랑을 이룰 방법이 생각난 것이었다.
‘나 자신과 사랑에 빠졌다면, 나 자신을 하나 더 만들면 되지 않는가?’
물론 유전자가 같다고 완전히 자신은 아니겠지만, 그는 자신 있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이 어찌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단 말인가?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가졌다면 틀림없이 나 이외에는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
마침 그럴 만한 배경이 그에게는 있었다. 제약회사의 전설, [영원 바이오]의 회장이자 천재 생명공학 학자인 최장수가 그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복제인간 기술은 이미 과학적으론 가능하다. 물론 그의 아버지가 직접 그의 복제인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막대한 돈과 재능을 쓰진 않을 것이다. 한데 최유진은 아버지의 머리를 물려받았다. 아니, 가능성 면에서 아버지보다도 더 우수하단 평가였다. 일찍 회사를 장악한다면 언젠가는 가능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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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누구지?”
갑자기 영화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이런 장면을 본 것도 같았다. 미래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나를 찾아온 것인가? 하지만 이과계열 공부를 해온 한준은 타임머신이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미래의 자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이론적으로 가능한, 다른 추론을 해냈다.
“혹시, 내 유전적인 형제인가?”
어머니는 수정란을 기증받아 자신을 낳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딘가에 유전적인 형제가 있을 가능성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 유전적인 형제가, 자신의 핏줄이 궁금해서 자신을 찾아왔을 가능성은 있었다. 최유진 생각에도, 한준의 추론은 틀리지 않았다. 한준이 최유진의 복제인간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쌍둥이 형제’와 같은 개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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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유진은 중대한 결심을 했다.
‘준이 여자가 된다면, 남자로서의 인생을 포기하고 더 이상 여자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어차피 유진은 딱히 동성애자인 것은 아니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뿐이었다. 여성화된 자기 자신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었다. 곧 막대한 돈을 들여 수술 가능한 의사를 섭외하여, 그 건물에서 수술이 진행되었다. 성전환수술 과정도, 준은 나른한 얼굴로 받아들였다. 어차피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든 관심이 없어 보였다. 혹시라도 발작할까봐, 준은 수술이 마무리되고 회복되는 내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유진이 개발한 약물에 거의 늘 취해있었다. 자신이 주변의 부축을 받으며 여자가 보는 방식으로 소변을 본다는 것을 인지는 했지만 처음엔 꿈인 줄만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준이 문득 정신이 들었을 때, 그는 여자로서 유진과 성관계를 하고 있었다. 정신이 있는 상태에서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던 유진이 약물을 약간 조절한 것이다.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실로 몇 달 만에 입 밖으로 나온 준의 말이었다.
“이제야 정신이 드나 보네.” 유진은 웃으며 말했다.
“넌 이제 여자야. 나만의 여자로서, 제2의 인생을 사는 거야.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줄 수 있어. 이제 나의 여자로서, 제2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나가자.”
준의 귀에 유진의 개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처음에는 이것이 꿈인가 했다. 하지만 몇 달 동안 희미하게 누적된 기억으로, 준은 자신이 여자로 수술 당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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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는 딱 봐도 트랜스젠더다. 그것은 아마 아무리 수술을 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골격도, 키도 컸다. 아마 남자였으면 매우 잘생기고 인기 많은 남자였을 것이다. 목소리는 남자치고는 상당히 미성이나 트랜스젠더라는 티가 분명하게 나는 남자 목소리였다. 하지만 일하는 업장이 어차피 트랜스젠더를 보러 오는 유흥업소이니, 꼭 트랜스젠더티가 안 날 필요는 없었다. 비록 확연히 원래는 남성의 신체로 태어났다는 것이 티가 나는 몸집과 목소리지만 남자로서는 미남이었을 것이 분명한 꽤 수려한 외모 덕에, 리사는 여장남자 티가 많이 나는 쉬메일 취향의 사람들에게 소요가 있었다. 사실 그런 취향의 손님들과, 나름 괜찮은 가창력과 무대 끼를 지닌 덕분에, 리사는 가게에서 어느 정도 상위권 지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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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도……괜찮을까?”
리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준에게 원래는 없었어야 했던 신체기관으로, 리사가 없길 간절히 바라는 신체기관이 들어왔다.그 과정은 육체의 성별을 따르는 과정도, 육체와는 다른 본인의 성적 정체성을 부정하는 과정도 아니었다. 없길 바라는 자신의 몸 일부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지금 이것은 잘못 달린 신체의 일부를 인정하고, 그로 인해 받은 상처를 보듬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부분을 평생 갖고 살아간다거나 그 부분에 맞는 정체성으로 살아갈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그것도 나의 일부이니 인정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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