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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천국

영원한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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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천국』+ 정유정 작가 북토크 with 오은 시인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8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524쪽 | 140*210*35mm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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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 남자의 집에 초대되었다.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머뭇대지 않고 출발했다. 부르면 찾아가는 게 내 일이었다. 지금 내가 이 어둡고 낯선 거리에 서 있는 건 바로 그 때문이고. 이정표가 알려주기로, 이 거리의 이름은 만경로란다.
    --- p.9

    “네 말이 다 사실이라 치자. 그래도 난 이해를 못하겠네. 과학이 왜 인간한테 그런 짓을 해?”
    “과학은 후진이 불가능해. 그저 도착하기로 예정된 곳에 도착한 것뿐이야.”
    --- p.322

    “나는 영원히 살고 싶어서 롤라에 온 게 아닙니다. 그저 도망친 겁니다. 그것도 아주 성급하게. 이곳에 와서야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때 도망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내 삶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적어도 이해할 만한 실마리라도 찾지 않았을까.”
    그 이해가 왜 그리 중요한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생명체는 우연에 의해 태어난다. 우연하게 관계를 맺고 우연 속에서 살다가 죽는다.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정의되는 삶은 롤라 극장에나 존재할 것이다.
    “내겐 운명의 설계 없이 살아볼 기회가 필요해요. 도망치지 않는다면, 견뎌낼 수 있다면, 내가 그 세상에 존재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아서.”
    --- p.392

    “백지의 의미를 잘 생각해봐요. 무작위와 무한정의 시공간에 스스로 죽는다는 표지를 명확히 세울 수 있겠는지. 로또에 맞으면 나는 부자가 될 거야,라는 가정법과 비슷해요. 로또가 나를 피해 딴 사람에게만 간다는 점에서.”
    “방법이 없습니까?”
    나를 보는 그의 눈에 이해와 답답함과 간절함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나는 머뭇대지 않고 대답했다.
    “없어요.”
    “절대로?”
    대답 대신,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도 일어났다. 우리는 말없이 상대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침묵이 끝도 없이 흘러갔다.
    “그렇다면 나는…….”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 p.395

    나는 경주를 오독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의식이라는 외피에 가려진 ‘무엇’이었다. 동생의 죽음으로 벼랑 끝에 몰렸을 때 그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구원하려 했는지 기억했다면, 가슴에 칼이 박히는 찰나에 기어코 상대의 눈에 젓가락을 찔러넣은 걸 기억했다면 나는 사전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의 본성에 웅크리고 있는 ‘무엇’이 무엇인지.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려는 욕망이었다. 나는 이 욕망에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어쩌면 신이 인간본성에 부여한 특별한 성질일지도 몰랐다. 스스로 봉인을 풀고 깨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어떠한 운명의 설계로도 변질시킬 수 없는 항구적 기질이라는 점에서.
    --- p.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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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정 작가는 마에스트로다. 독자의 피를 끓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가슴을 아리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깊은 철학적 고민에 빠뜨리고 싶으면 그렇게 하는. 자신이 원하는 소설을 쓰기 위해 SF든 미스터리 스릴러든 러브 스토리든, 원하는 장르를 모두 가져와서 각각의 문법을 그대로 지키면서 잘라 붙이고 이어서 ‘정유정’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내는.
    가상현실에 대한 픽션은 수없이 많다. 그런데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유가 ‘무언가를 붙잡을 수 있다’는 희망과는 다르다는 사실, 가상세계는 슬프고 막막한 곳임을 일깨우는 작품이 전에 있었나 싶다. 이 정도 두께의 책을 한 자리에서 이 정도 속도로 읽은 게 얼마 만인지도 모르겠다. 정유정 작가는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려는 야성’이 삶을 설계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래서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말한다. 나에게는 정유정이라는 이름이 바로 ‘문학적 야성’과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 장강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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