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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하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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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8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128*188*20mm
ISBN13 9791141601201
ISBN10 114160120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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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군중 속에 있는 그를 알아보고, 그가 속해 있는 집단에서 그를 고유하게 떼어놓는 것. 아무리 단단한 집단이더라도. 그의 가족이든 다른 무엇이든. 그러고는 그가 자신 안에 가두고 있는, 어쩌면 전혀 다른 본성을 지녔을 그의 고유한 무리와 다양체를 찾아가는 것
--- p.9

“난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던 방식이 그리워. 사람들은 용기를 주는 데 너무 인색해. 그냥 상대방이 자신들보다 용기가 훨씬 부족하다고 단정지으려고만 하지.”
--- p.34

그들은 ‘편안한 아내’인 외국인 여자를 만나 결혼할 것이고, 대부분 밝은 피부색의 북유럽 태생인 그녀들과 외교관처럼 프랑스어든 영어든 매개언어로 소통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내게는 내가 발음하는 문장의 아주 작은 뉘앙스도, 내가 함구하려는 말의 아주 사소한 함축적 의미도 이해하는 노라가 있었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바랄 수 있을까?
--- p.66

노라는 아무런 예고 없이 내게 키스했다. 우리는 가발을 쓰고 있었고 나는 러시아인의 어설픈 영어를 흉내내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이기도 하고 우리가 아니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입술에 다시 키스하는 순간은 늘 그런 기분일지도 모른다.
--- p.86

나는 그녀의 생명력이 무궁무진하다고 확신한다. 그 어떤 것도, 아무리 결정적인 고통도, 아무리 무거운 슬픔도 그것을 가로막을 수 없을 것이다. (....) 그녀가 그토록 강하다는 사실을 안다는 위안과 내가 그녀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아닐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의존의 무수히 많은 방식 중에서 다른 생명을 빨아들이는 거머리나 거대한 기생충처럼 내가 그녀에게 달라붙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뒤섞인다
--- pp.119~120

노라의 활기와 나의 우울, A 부인의 점성적 안정감과 내 아내의 별난 어수선함, 내가 여러 해 동안 전념해온 명쾌한 수학적 논리와 바베트의 투박하면서도 직관적인 사고방식, 그 모든 요소는 우리의 부지런한 노력과 애정에도 불구하고 서로 분리되어 있었다. 눈에 모든 것이 확연히 보일 때까지 끊임없이 증식했던 A 부인의 암은 다루기 어려운 미세한 세포 덩어리에 불과했지만, 우리가 서로 분리된 개별적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우리는 우리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녹아들 수 없었다.
--- p.183

넘치는 삶의 열정을 지닌 사람에게는 죽음을 생각할 여지가 없다. 나는 그 열정을 그녀에게서 보았고, 매일 노라에게서도 보고 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손에 쥔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 적어도 한 번은 그렇게 해본 사람만을 위한 것이다. 죽음은 생각이라기보다는 기억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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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문득 어떤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 있다. 친했던 사람. 미워했던 사람. 멀어진 사람. 죽은 사람. 그리고 그때마다 따라오는 질문도 있다. 나는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여기, 정의할 수 없는 어떤 관계로 한 가족 안에 속해 있던 사람이 있다. 그는 보모이자 부모였고, 친구이자 동반자였다. 그가 존재했던 시간과 사라진 시간을 섞고 펼치고 추적하며 작가는 묻는다. 가족이란 무엇이냐고. 관계란 어떤 것이냐고. 우리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냐고.
마침내 그가 사라졌을 때, 타인이 남긴 구멍 속에서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서로의 얼굴과 서로의 존재를. 그리고 비로소 말하게 되는 것이다. 한번 시도해보자고. 해볼 수 있다고.”
- 문지혁 (소설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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