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아름다운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꽃이 피어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유지할 수 없듯이 하나의 감정에, 하나의 시간에 머무를 수는 없는 법, 하지만 예술은 가장 찬란했던 혹은 가장 치열했던 그 순간을 담아두고 영원토록 추억하며 살 수 있게 해준다. 그 추억 속에서 행복을 무한 재생할 수 있는 꿈을 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이 가진 진정한 힘이 아닐까?
--- 01. 괜찮아, 슬픔은 곧 지나갈 거야_ ‘감정의 조각들은 사랑이 되고(모네&드뷔시)’ 중에서
폴록은 자신의 그림은 절대 우연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림을 그리기 전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그림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을 끄집어내기 위해 그림과 자신의 내면을 연결시킨다고 한다. 따라서 그 연결이 조화롭게 이루어졌을 때 하나의 온전한 작품이 완성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 그 그림은 실패로 끝나는 것이다. 케이지가 아무 의미 없는 소리들을 의미 있는 음악으로 끌어내듯 폴록은 우연적으로 떨어지는 물감들을 자신의 무의식의 세계와 조화시킴으로써 하나의 생명력을 지닌 예술작품으로 새롭게 탄생시킨다.
우연.
우리가 우연이라고 믿고 있는 많은 것들은
우연이 아닌 평소 우리의 생각으로 인하여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일 수도 있다.
진정으로 원하고 그리면 이루어진다.
무의식의 세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무의식 속에서 우연을 끌어내고,
우연은 필연이 되고, 필연은 운명이 된다.
--- 04. 우연의 이끌림_’우연의 이끌림(폴록&케이지)’ 중에서
슈투크의 살로메는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만큼이나 음산하면서도 화려하고 매혹적이다.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레이션과 살로메의 목소리가 겹치며 음악이 극에 달하듯, 그림 속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별빛 아래 환하게 드러난 그녀의 속살이 강렬한 대비를 보여 준다. 일곱 베일의 춤을 춘 직후인 듯한 그녀. 어둠 속에서 빛나는 금색 장신구들, 푸른빛이 감도는 요한의 머리가 한데 어우러져 현란하고 음침하며 자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_p.24 슈투크 & 슈트라우스 | 굿바이, 내 사랑 중에서
라흐마니노프와 고흐의 지독한 우울과 고독, 그리고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려는 몸짓. 서정적이면서도 격정적으로 움직이는 음표와 색채, 그 안에서 삶을 이겨 내고자 하는 열정적인 몸부림.
모든 감정을 가감 없이 표출하고 온전히 드러내는 그들의 작품은 우리에게 말한다. 고흐가 남긴 말처럼, 슬픔은 영원한 것이라고, 삶은 아픈 것이라고. 그리고 그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고.
_p.100 고흐 & 라흐마니노프 | 슬픔이 나를 압도할 때 중에서
허스트가 종종 제목을 통해 자기 작품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처럼 크럼 역시 꿈의 이미지(사랑-죽음의 음악): 쌍둥이자리라는 제목을 통해 곡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사랑과 죽음은 ‘같은 모습’이라는 이 제목.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소유하려 해도 절대 온전히 가질 수 없는, 영원히 염원하고 갈망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불가능에 의해 소중해지기 때문일까. 사랑은 어쩌면 죽음의 모습을 쌍둥이처럼 빼닮았는지도 모르겠다.
_p.106 허스트 & 크럼 | 죽음을 기억하라 중에서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내 악기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하지만 내 악기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에 내가 왜 감정사의 말에 따라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나는 악기의 가치가 만들어지는 기준에 동의할 수가 없는데 말이다.
새로운 시각과 도전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피카소와 스트라빈스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펼치면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했던 두 사람. 그들이 발견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림과 음악에 대한 ‘본질’이었다.
_p.162 피카소 & 스트라빈스키 | 상식에 대한 도전 중에서
어떠한 감정이나 상태를 설명할 때, 때로는 말보다 색채 혹은 소리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 그것은 말이나 구상으로 형용할 수 없는 또 다른 어떤 세계다. 나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려 하면 할수록 그 의미가 왜곡되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생각과 감정이 언어라는 그 수단을 통해 한 번 걸러져 나오기에, 표현에 있어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 내는 수만 가지 말보다 한 번의 진실한 눈빛이 더 강렬할 때가 있다. 로스코와 리게티가 그림과 음악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처럼.
---p.246 로스코 & 리게티 |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모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