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에 지금 관념의 역사에 연관된 강한 회고적 성향을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하는 두 가지 상황이 있습니다. 하나는 인류가 대체로 지성적이고 감성적인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거의 모든 기초과학 분야가 엄청나게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초과학은 기초과학에서 파생하여 고도로 발달한 분야들, 예를 들면 공학, 응용화학(핵화학을 포함한), 의료 기법 및 외과 처치술에 전례 없이 완전히 포위된 상태입니다.
--- p.22
전체적으로 보아 근대 기초과학의 현재 위기는 가장 이른 시기의 지층으로 내려가 기초과학의 토대를 고칠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위기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 사상으로 돌아가 끈기 있게 탐구하도록 독려합니다. 이 장의 앞부분에서 짚은 바와 같이, 매몰된 지혜의 발굴뿐 아니라 지혜의 근원에 자리 잡은 뿌리 깊은 오류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근원에서는 이를 알아보기가 더 쉽기 때문입니다.
--- p.38
우리는 위대한 원자론자인 데모크리토스를 나중에 다시 다룰 것입니다. 지금은 데모크리토스가 물질적인 세계관에 이끌렸고 우리 시대의 여느 물리학자만큼이나 그것을 확고히 믿었다는 것만 이야기하겠습니다. 그 물질적 세계관에 따르면,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아주 작은 입자가 빈 공간 안에서 일직선으로 움직이다가 충돌하고 튕기는 등의 운동을 하면서 물질세계에서 관찰되는 무수한 다양성을 빚어냅니다. 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한 현상이 순수하게 기하학적인 상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의 믿음은 옳았습니다.
--- p.54
처음에 언급했던 보편 관념, 즉 모든 것 뒤에는 숫자가 있다는 관념으로 잠시 돌아가보겠습니다. 이 관념은 명백히, 진동하는 현의 길이에 대한 음향학적 발견에서 비롯했다고 나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공정을 기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논리적 전개이지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이 순간, 이 장소에서 수학과 기하학의 최초의 위대한 발견이 일어났으며, 그것은 실제의 혹은 상상의 물질적 대상들에 적용되었다는 것입니다.
--- p.62~63
아낙시메네스는 추상적인 환상에 빠져들지 않았고, 자신의 이론을 구체적인 사실들에 적용하려 했습니다. 이는 그가 몇몇 사례에서 획득한 놀랍도록 정확한 통찰로부터 알 수 있습니다. 요컨대 우박과 눈의 차이와 관련해(둘 다 고체 상태의 물, 즉 얼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는, 우박은 구름에서 떨어지는 물(즉 빗방울)이 얼어서 형성되는 반면 눈은 수분이 많은 구름 자체가 고체 상태가 되면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현대의 기상학 교과서에도 이와 거의 비슷하게 쓰여 있을 것입니다.
--- p.91
원자론은 긴 역사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는 이 임무, 즉 감각으로 지각할 수 있는 물체를 사고할 수 있게 하는 일을 수행해 왔습니다. 한 조각의 물질이 우리의 사고 속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그러나 유한한 수의 구성 성분으로 분해됩니다. 우리는 머릿속으로 해당 구성 성분들을 셀 수 있지만, 직선 1센티미터를 이루는 점들이 몇 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주고받는 상호작용이 몇 개인지 머릿속으로는 셀 수 있습니다. 수소와 염소가 결합해 염산을 만들 때, 우리는 두 종류의 원자들로 짝을 짓고 각 쌍이 새로운 작은 물체, 즉 분자 화합물을 구성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 p.124
과학적 세계상은 우리로 하여금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일종의 기계적인 시계 장치로 상상하게 만들죠. 이런 장치는 과학이 아는 모든 것에 대해 마찬가지 방식으로 계속 가동될 것이며, 이 장치와 연결되는 의식, 의지, 노력, 고통과 기쁨과, 책임 따위는 없습니다. 실제로는 이런 것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러한 당황스러운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외부 세계에 대한 상을 구성하려고 우리가 자신의 인격을 도려내고 제거하여 매우 단순화하는 장치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인격)은 사라져버렸고, 증발해버렸고, 불필요해 보이게 되었습니다.
--- p.136~137
나는 어떤 환경 속에서 태어납니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내가 누군지 나는 모릅니다. 이것이 여러분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상황과 동일한 나의 상황입니다. 누구나 항상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라는 사실이 내게 말해주는 것은 없습니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 는 우리의 강렬한 의문, 이 의문에 대해 우리 스스로 관찰 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환경이 전부입니다. 바로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있는 만큼 우리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아내고 싶어 합니다. 이런 목표를 이루는 수단 이 과학, 배움, 지식이고, 인간의 모든 정신적인 노력의 진정한 원천입니다.
--- p.149
연속적인 범위라는 개념은, 우리 시대의 수학자들에게 아주 익숙하지만, 아주 터무니없는 것이고 우리가 실제로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추정한 것입니다. 연속적인 범위, 예를 들어 0과 1 사이에 있는 모든 점에 대해 어떤 물리적인 양─온도, 밀도, 퍼텐셜, 장의 세기, 혹은 뭐든지 간에─의 정확한 값을 정말로 지정해야 한다는 생각은 과도한 추정일 뿐입니다.
--- p.179
고대 원자론자들은 어떻게 물질에 대한 원자론을 수립하게 됐을까요? 이는 이제 역사적인 관심 이상의 의미를 띤 질문이 되었고, 인식론과 연관되고 있습니다. 이 질문은 때로 다음과 같은 형태로─대단히 놀랍다는 느낌으로─제기됩니다. 이런 사상가들은 물리 법칙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고, 이와 관련한 실험적인 사실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는데, 어떻게 그들은 물체들의 조성에 대한 올바른 이론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요?
--- p.207~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