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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영원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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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8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44쪽 | 133*200*20mm
ISBN13 9788954636254
ISBN10 895463625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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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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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의자에 걸어두었던 후드 집업을 걸치고 일어나서 창 너머의 하늘과 길게 이어지는 철교, 그 위로 지나가는 전철을 보았다. 멀리 보이는 전철의 움직임은 다른 시공간의 일처럼 낯설고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며 그는 늦가을의 풍경이, 풍부한 색채로 잎을 떨구는 늦가을의 나무가 앙상한 겨울나무보다 더 쓸쓸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토요일 아침의 로건」중에서

언제나 젤다가 먼저 나갔고 그는 이렇게 테이블에 잠시 앉아 있었다. 젤다와의 수업이 끝날 때마다 반복된 일이었다. 그는 프린트를 여러 번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창 너머 보이는 철교 위로 전철이 천천히 지나갔다.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들면 언제나 그 철교를 볼 수 있었다. 그동안 그가 겪어온 장면들은 전철이 지나가듯 늘 다음 토요일로 나아갔지만 이제 그는 토요일에 로건으로 지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토요일 오전을 어떻게 보내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토요일 아침의 로건」중에서

놀이터 옆의 등나무 벤치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벤치 주변에 키가 훤칠하고 가지가 무성하게 뻗어나간 나무들이 서 있어서 뒤편의 가로등 불빛이 등나무 그늘 아래까지 쏟아지지 않았다. 네 개의 벤치가 모두 비어 있는 걸 확인한 뒤 경진은 제일 안쪽에 들어가서 앉았다. 정우는 밤에 혼자 산책하는 걸 걱정했지만 경진에게는 북적거림과 환함보다 등나무 벤치의 고요함과 어둑함이 더 필요했다.
---「밤의 벤치」중에서

불 꺼진 창문과 불을 밝힌 창문들이 기하학적인 무늬를 만들었다. 한 시간 전까지 경진도 저 위의 손바닥만하게 보이는 창문 안에 있었다. 경진은 아파트 단지를 가볍게 돈 뒤 벤치에 앉아 한숨 돌리는 밤을 하루종일 기다려왔다. 밤의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하루의 피로가 발밑으로 천천히 빠져나갔다.
---「밤의 벤치」중에서

자정이 십 분 지나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유선은 같이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다가 울게 된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거리에 남아 있을 깨진 유리, 소동의 흔적 같은 건 연휴가 끝나면 환경미화원이 흔적도 없이 치워버릴 것이다. 주택가의 큰길과 빌라들이 모여 있는 단지의 규모에 비하면 깨진 맥주병이나 유리창은 작은 것들에 불과했다. 유선의 마음에는 남자의 울음소리가 남았다. 남자가 울면서 ‘정말 모르겠다’고 말했던 것. 유선은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것으로 충분한 밤」중에서

오전부터 소파에 앉아 밖을 내다보았으나 재경은 지나가지 않았다. 이제 산책을 안 하는 건지, 코스를 바꾼 건지 알 수 없었다.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돌아오고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야 이 미친 새끼야, 소리를 지르며 뛰어가는 동안에도 재경은 보이지 않았다. 재경을 만나 점심을 먹은 뒤로 석주는 속이 허하고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나의 계절이 지났을 뿐인데 재경은 예전의 모습을 외투처럼 벗어버렸다. 노인같이 마른 몸으로 앉아 있던 모습을 떠올리면 재경이 외투를 벗은 게 아니라 재경을 이루던 것들이 다 빠져나가고 외투만 남은 것 같기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중에서

석주는 소파에 앉아 재경이 있는 어둑한 방을 생각했다. 흔들의자에 앉아 재경은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연락처에 저장되어 있던 수많은 사람들과 갖고 있던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는데 무슨 생각과 함께 겨울을 보냈을까. 석주는 1인용 소파에 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벚꽃이 피어서 나무들은 저마다 불을 밝힌 것처럼 빛났고 거리는 일 년 중 가장 환하고 활기찼다. (……) 작년까지만 해도 1인용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갇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좁은 사무실 안을 왔다갔다하거나 다른 가게를 돌아다니며 불필요하고 안 하는 편이 좋은 말들을 듣고 곱씹고 옮겼다. 그런데 이제는 무료함이나 갑갑함과 상관없이, 마음의 상태나 희망의 유무와 무관하게 잠잠히 기다려야 하는 날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나가는 사람」중에서

좋아, 오케이, 주문 완료, 를 외치던 사위가 으아, 수저 요청하는 거 깜박했다, 하면서 머리를 긁적거렸고 희영과 손녀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어넘겼다. 진은 이 즉흥적이고 낙천적인 가족이 실수를 저지르고 이해하는 방식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사위가 편의점에 간 사이에 손녀는 바닥에 앉아 젖은 모래를 가지고 놀았고 희영은 휴대폰을 내려놓더니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언제 선캡을 잡으러 뛰어다니고 큰 소리로 웃었던가 싶을 정도로 고요한 얼굴이었다.
---「다른 미래」중에서

인희는 소파에 조금 더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컵 안에 있던 티백을 탁자 위의 다른 티백들 옆에 꺼내놓고, 컵에 물을 가득 담아 스킨답서스 화분의 흙 위에 고르게 부었다. 화분 받침에 물이 조금 고였다. 밤이 깊었고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인희는 코트 주머니 안에 든 하프 천사를 만지작거렸다. 차가웠던 조각상이 조금 따뜻해졌다.
---「기다리는 동안」중에서

레이저 치료를 할 때도 마지막 코스인 극초단파 치료를 할 때도 물리치료사는 그렇게 말했다. 아무 느낌 없습니다. 동희는 그 말이 묘하다고 생각했다. 아무 느낌 없는데 치료가 된다.
---「밤이 영원할 것처럼」중에서

눈이 내리면 동희는 어디든 들어가서 그칠 때까지 기다릴 것이고, 눈이 쌓인 길을 걸어야 할 때는 한 발짝씩 천천히 움직일 것이다. 저녁에는 모션 베드가 도착할 것이고, 배송 기사들이 오래된 침대를 철거한 뒤 새 침대를 설치해주고 떠나면 동희는 혼자서 침대의 기능을 익힐 것이다. 그리고 밤이 되면 거기 누워 발을 올려놓고 있을 것이다. 심장보다 높이.
---「밤이 영원할 것처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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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밤이 영원할 것처럼』은 달빛이 내려앉은 밤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은은하고 쓸쓸한, 하지만 아름다운 빛의 풍경. 달빛이 비치는 곳에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른다. 타인의 내면으로 깊이 내려갈 수 있는 기회가 살면서 우리에게 몇 번이나 주어질까. 훌륭한 소설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고 지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깊은 곳으로 우리를 이끈다. 각각의 단편을 읽고 멈추어 숨을 고를 때마다 나는 무언가를 소비하고 소모되는 내가 아니라, 인간다움을 느끼고 생각하는 내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시간이 내게는 특별하고 귀했다. 좋은 소설이 주는 내적 충만함을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최은영 (작가)
서유미는 ‘다른 미래’를 눈앞에 보여주는 법이 없다. 다만, 스스로 다른 미래를 마주할 수 있도록 온몸을 이완시키고 새로운 자신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것이 서유미가 보여주는 희망이며 낙관이다.
- 소유정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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