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물어봐도 돼?”라고 묻는 가와사키는 여유로웠고, “뭔데요?” 하고 대답하는 나는 눈치를 살폈다.
“서점을 털면 왜 안 돼?”
지금 농담하자는 건가 싶었지만 그의 표정을 보니 그런 말이 쏙 들어갔다. 진지했다.
“그, 그건 법률 위반이잖아요.” 이것은 법학부 학생이 될 몸으로서는 당연한 대답이고, 칭찬받을 만한 대답이라 생각했다.
“이런 말 알아?” 가와사키가 우쭐대며 말했다. “정치가가 잘못하고 있을 때는, 그 세계의 정의는 모두 잘못됐다.”
---현재ㆍ2, 52쪽
“(착한 일이든 악한 짓이든 자기가 한 건 모두 자신에게 돌아와. 당장은 아니더라도 다시 태어난 후에 대가가 돌아올 거야. 지금 내가 한 짓은 좋은 일이 아니잖아.)”
다분히 윤회를 믿는 불교 국가의 청년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아까 도르지가 한 건 좋은 일이야.)”
“(그런가……?)” 그는 얌전히 되물었다.
“(그 정도는 신도 못 본 척 눈감아 주었으면 좋겠어. 긴급 상황이었으니까. 신이 잠시 어딘가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멋대로 지껄였다.
“(신, 이라고……)” 그는 맥 빠지는 소리를 흘렸다. 그들에게 ‘신’이란 존재는 내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을까. 부처를 뜻하는지, 좀 더 막연한 무엇을 말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아무튼 귀찮으니 신을 어딘가에 가두고, 전부 없었던 일로 해 버리자고. 그럼 모르겠지.)”
---2년 전ㆍ2, 77~78쪽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시점에 이미 나는 서점을 털 작정을 하고 있었다.
그가 꾸역꾸역 설득한 기억도 없고, 나로서는 얼마든지 거절할 수단이 있었음에도 그의 부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니, 고백하자. 아마도 나는 흥분하고 있었다. 무의미하고 무식하며 법에 저촉되는 일,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일을 한다는 데 가슴이 뛰었던 것이다. 코흘리개들의 소매치기나 고등학생들의 흡연과 다르지 않다. 여행지에서 불법 성매매를 하는 것과도 비슷할지 모른다.
이 정도라면 크게 문제 될 것 없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생각도 있었고, 혹시 누가 알아? 한참 후 남들한테 무용담처럼 떠벌릴 수도 있을 거라는, 팔푼이 같은 기대도 있었다.
---현재ㆍ5, 154쪽
“(고토미는 무서운 선생님이야.)” 도르지는 삐치는 기미 없이 여전히 즐거워 보였다. 그럼, 아히루와 카모, 어떻게 다릅니까?”
나는 사전을 단 한 장 들추기도 전에 “(아히루, 그러니까 집오리는 외국에서 온 오리고 카모, 이건 들오리인데 원래 일본에 살던 오리야)” 하고 대답했다. 그렇게 들은 기억이 있다.
“정말, 입니까?”
“(아닐지도 몰라.)” 한 번 더 물으니 자신이 없어졌다. 그게 내 성격이기도 하다. 그나마 내 성격의 좋은 부분…… 사전을 넘기며 ‘집오리’를 찾고, 그다음 ‘들오리’를 찾았다.
기대했던 대답이 적혀 있지 않아 나는 실망했다. 사전에는 그냥 조류로서의 특징만 나와 있었다.
하지만 집오리는 중국 쪽에서 개량된 들오리다, 라고는 나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근거로 도르지에게 설명했다. “(아무튼 집오리는 외국 새고, 들오리는 일본 새라고 생각하면 틀리진 않을 거야.)”
“(좀 이상해.)” 도르지는 의심했다. “(만약 그렇다면 나와 고토미는 집오리와 들오리잖아.)”
집오리와 들오리…… 그다지 나쁘지 않은 표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비슷한 동물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르다.
---2년 전ㆍ6, 201~202쪽
애완동물 학대범. 꺼내고 싶지도 않은 단어다. 증오 때문이 아니다. 그 반대다. 그들의 잔혹성과 거만함이 ‘애완동물 학대범’이라 명명된 순간에 너무나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행위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상대의 자존심을 깎아내려 돈을 갈취하는 행위를 ‘공갈 협박’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면, 실제 그 행위의 심각성보다 가볍게 인식되는 것과 비슷하다.
---2년 전ㆍ11, 324쪽
카세트를 왼손으로 받치고 오른손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시디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 조금 있자 경쾌한 연주가 울려 퍼졌다. 음량은 시끄럽지도, 그렇다고 너무 작지도 않았다.
“밥 딜런.” 나는 금방 알았다.
카세트에서 흘러나온 것은 그의 대표곡 〈라이크 어 롤링 스톤〉이다.
“맞아.” 가와사키는 그러고 나서 곧 카세트를 코인로커 안으로 밀어 넣었다.
“뭐 한 거예요?”
“신을, 가두었어.” 가와사키가 대답했다.
“네에?”
나는 얼른 머리를 굴려 추측해 보았다. 그는 딜런의 목소리를 ‘신의 소리’라고 했다.
“신의 소리를 로커에 넣는 게 신을 가두는 거예요?”
“그래.” 가와사키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반복 설정을 해 두었으니 계속 소리가 날 거야.”
---현재ㆍ14, 381~3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