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주제는 바로 부조리와 자살 사이의 이러한 관계, 즉 자살이 부조리에 정확히 어느 정도로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를 밝히는 데 있다. 속임수를 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가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는 바에 따라 행동한다는 원칙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삶이 부조리하다고 믿는 사람은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그렇다면 짐짓 비장하게 나올 필요 없이 자연스레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삶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을 경우 이 결론에 따라 얼마나 빨리 삶을 저버리려 하는가? 물론 나는 자기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부조리와 자살」중에서
우리는 사막을 그대로 남겨둬서는 안 된다. 적어도 그 경험이 어디에 이르렀는지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 지점에 노력이 이르면 인간은 비합리와 대면하게 된다. 내면에서 행복과 이성을 향한 갈망을 느낀다. 인간의 호소와 세상의 비합리적 침묵 사이의 대면에서 부조리가 태어난다.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 인생의 결론이 송두리째 이 사실에서 비롯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합리와 인간의 향수, 이 두 가지의 대면에서 태어나는 부조리. 이 세 가지가 삶이라는 연극의 세 등장인물이며, 이 연극은 필연적으로 한 실존이 감당할 수 있는 모든 논리와 함께 끝을 맺는다.
---「부조리의 벽」중에서
이 부조리의 논리를 극한까지 밀고 나가면서 나는 이 투쟁이 (절망과 아무 관련이 없는) 희망의 전적인 부재, (포기와 혼동해서는 안 되는) 지속적인 거부, (미성숙한 시기의 불안과 비교해서는 안 될) 의식적인 불만을 전제로 삼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요구를 파괴하거나, 없애거나, 교묘히 비켜 가는 모든 것(그중에서도 특히 단절을 파괴하는 동의)은 부조리를 완전히 파괴하고,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태도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부조리는 우리가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한에서만 의미가 있다.
---「철학적 자살」중에서
이리하여 나는 부조리에서 세 가지 결과를 이끌어낸다. 그것은 나의 반항, 나의 자유, 나의 열정이다. 오직 의식의 활동을 통해 나는 죽음으로의 초대였던 것을 삶의 규칙으로 바꾸어놓는다. 그래서 나는 자살을 거부한다.
---「부조리한 자유」중에서
지상에서의 삶은 그의 소원을 모조리 만족시킨다. 돈 후안에게 이 삶을 잃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 이 정신 나간 사람은 위대한 현자다. 그러나 희망에 기대어 사는 사람은 친절이 관대함으로, 애정이 남성적인 침묵으로, 일체감이 고독한 용기로 바뀌는 이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래서 모두 말한다. “그는 나약한 사람이거나 이상주의자 또는 성자였다.” 모욕감을 주는 위대함이니 깎아내려야 했다.
---「돈 후안주의」중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이다(또는 자신의 세계를 제한한다는 것인데, 결국 같은 뜻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을 자신의 경험에서 분리하는 근본적인 불화에서 시작하여 자신의 향수에 따르는 합의의 영역을, 이성으로 구속하거나 유사성으로 조명되는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는 어쨌든 견딜 수 없는 분리를 없앨 기회를 제공한다.
---「철학과 소설」중에서
나는 내가 사고에 요청했던 것, 즉 반항과 자유, 다양성을 부조리한 창조에 요구한다. 나중에 부조리한 창조는 그 자체의 철저한 무용함을 드러낼 것이다. 지성과 열정이 뒤섞이고 서로를 즐겁게 하는 매일의 노력 속에서 부조리한 인간은 자신의 가장 큰 강점이 될 규율을 발견할 것이다. 규율에 필요한 부지런함과 끈질김, 명철함은 정복자의 태도와 닮았다. 창조한다는 것은 정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운명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다.
---「내일 없는 창조」중에서
나는 시지프를 산기슭에 남겨둔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고 시지프의 무게와 다시 마주한다. 그럴 때 시지프는 우리에게 신을 부정하고 바위를 들어 올리는 성실함을 일깨운다. 그 역시 모든 것이 잘되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제 주인이 없는 이 우주는 그에게 불모이지도, 헛되어 보이지도 않는다. 저 돌의 입자 하나하나, 밤이 내려앉은 산의 광물 조각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높은 곳을 향한 투쟁 자체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시지프 신화」중에서
희망은 인간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 인간이 할 일은 속임수를 등지고 돌아서는 것뿐이다. 그러나 카프카가 온 세상을 상대로 제기한 격렬한 소송의 끝에서 내가 발견한 것이 바로 속임수다. 그의 믿을 수 없는 판결은 두더지들마저 감히 희망을 품으려 드는 이 추악하고 혼란스러운 세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
---「부록」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