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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 유목제국사 744 ~ 840

: 막북 초원에 고립된 위구르의 발전 모색

고대 유목 제국사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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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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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년 09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416쪽 | 796g | 153*225*30mm
ISBN13 9791169813310
ISBN10 11698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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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에 구축된 ‘도시 네트워크’

위구르는 서방과 이어지는 교역망을 만들기 이전인 건국 초기부터 막북 초원에 성곽으로 둘러싸인 교역 거점인 이른바 ‘카라반사라이caravansarai’, 즉 ‘도시’를 건설했다. 이는 교역을 위해 활동하던 소그디아나Sogdiana 출신의 카라반, 즉 대상隊商인 국제 상인만이 아니라 당과의 혼인을 통해 공주와 함께 유입된 중국인 등 다양한 비유목민을 위한 시설이었다. 이러한 시설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이동하던 유목 군주의 영지營地 및 그 밖의 여러 곳으로 확대되었다. 이렇게 초원의 교역로를 따라 건설된, 다소 이질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도시들은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계절 이동하는 유목민과 다양한 외래 주민이 함께 어울리는 ‘공존’의 공간이 되었다. 위구르는 막북 초원과 이를 가로질러 이어진 ‘도시 네트워크’를 무대로 발전했고, 840년 붕괴 이후에는 초원을 떠나 주변 세계로 폭발적으로 확산하면서 그 활동 무대를 더욱 확장했다.
--- p.20~21

정치적 목적에 종속된 중국의 위구르 역사 연구

중국 내 연구는 민족 융합融合의 과정을 거쳐 위구르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편입된 과정, 위구르의 문화적 발전이 중국 문화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려는 ‘정치적’ 목적과 연결되었다. 처음에는 개별 소수민족의 역사를 정리하는 방향이었다가, 이후에는 ‘여러 중심에 기초한 하나의 중국을 형성하려는 입장(다원일체격국多元一體格局)’에 따라 새로운 정리가 이루어졌다. 2000년대 이후에는 중국의 내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개별 소수민족의 ‘민족사民族史’가 아닌 ‘변강사邊疆史’로서의 연구가 중심이 되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화민족공동체’의 형성을 강조하는 정책이 추진되고 그 범위 안에서만 위구르를 다루게 됨에 따라 민족사 연구는 더욱 위축되었다.
--- p.28~29

비문 자료에 남아 있는 위구르의 통치 이념 ‘퇴뤼’

‘일(국가)’의 건설 과정은 비문 자료에 남아 있는 국가 건설 구상의 준거였던 ‘퇴뤼(고제古制)’에 대한 카를륵 카간의 인식을 분석함으로써 접근할 수 있다. 국가 건설 구상과 정통성 확립의 근거인 퇴뤼의 회복 과정을 이해하면, 그가 원정을 통해 ‘보둔(백성)’과 자신의 ‘영역’을 어떻게 조직했는가도 알 수 있다.

카를륵 카간이 회복하려고 했던 퇴뤼는 나라를 건국하고 통치할 수 있는 근거였다. 좁은 의미로는 ‘조법祖法(전통적이고 관습적인 불문법)’이고, 넓은 의미로는 ‘텡그리teŋri(하늘[天] 또는 신神)와 아타ata(조상祖上) 등으로부터 물려받은 유무형의 전통傳統’이다. 중국 황제가 천하를 다스릴 때 반드시 존중하고 준수해야 할 ‘상제上帝’, ‘종묘사직宗廟社稷’과 비슷한 개념이다. 카를륵 카간은 유목 세계에서 자신의 권위를 확보하고 신생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이를 통치의 근거로 삼았다.
--- p.45~46

8세기 중반 위구르의 성장과 동아시아 세계의 재편

안녹산의 봉기 이후 10여 년에 걸친 당의 내전 과정에서 막남 초원에 대한 기미 지배는 완전히 무너졌다. 당뿐만 아니라 복고회은을 대표로 하는 막남 초원의 투르크 유목 세력 역시 약해졌다. 기미 지배를 받던 투르크계 유목민(돌궐 잡호)이 7세기 중반부터 약화되었고, 740년대 중반에 이르러 돌궐 붕괴 이후 남하한 막남의 돌궐 항호 또한 부흥 운동으로 당에 도전하다가 소멸했다. 당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질서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유목 세계의 질서’가 새롭게 재편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위구르는 막북 초원을 장악하고, 당과의 경제적 관계를 독점했다. 뵈귀 카간은 당 황제와 형제 관계를 맺고 경제적 교섭에서 자신을 단일 창구로 삼도록 했다. 그 결과 전리품만이 아니라 막대한 세폐를 얻는 등 이익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그동안 경쟁 관계였던 카를룩, 키르기스, 거란 등의 인정도 받아냈다. 이렇게 위구르는 안녹산의 봉기 이후 전개된 동아시아 세력 재편의 최대 수혜자로 200여 년간 초원을 지배했던 돌궐의 권위를 완전히 대체했다. 당을 대신해 막남 초원까지 지배할 만큼 성장한 것은 아니었으나 막북을 중심으로 한 유목 세계를 대표하는 ‘유일한 세력’이 되었다.
--- p.172~173

대외 무역과 국가 경영에 참여한 소그드 상인

위구르에서도 소그드 상인들의 활동이 확인된다. 카틀륵 카간은 초기부터 정주민을 위한 도시를 건설했으며, 영국공주를 따라온 소그드 상인과 중국인을 위해 셀렝게강 부근에 바이 발릭을 만들었다. …… 소그드 상인의 역할은 769년 영휘공주가 위구르에 온 이후 견마무역을 한 것과 관계가 있다. 위구르가 당에 사신을 보낼 때 “구성호九姓胡(소그드 상인)와 동행한다”라고 했던 것은 소그드 상인이 위구르와 당 사이의 무역에 종사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 장안에는 위구르의 지원을 받는 소그드 상인이 1000여 명 정도 있었으며 이들이 엄청나게 축재를 했다는 기록도 있다. …… 소그드 상인은 대외 무역뿐만 아니라 국가 경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따라서 뵈귀 카간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소그드 상인의 욕구를 해결해주어야 했다. 카간과 카간을 뒷받침하는 중상주의적 입장의 상인 출신 관료의 결합은 ‘권위주의적 상인 관료 체제’를 낳았다. 이와 같이 ‘위구르 일’은 유목에 기초한 초원 경제와 ‘정주적’ 성격을 띤 외래 요소가 공존하는 ‘이종 결합異種結合적’ 국가 체제를 구축했다. 이런 흐름에서 초원에는 정주 지역 출신 주민의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 p.181~183

위구르의 마니교 수용

마니교도는 762년 낙양까지 온 위구르의 군주를 상대로 국가 운영과 당과의 교섭에 필요한 협조를 제공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확보했다. 뵈귀 카간은 중앙아시아의 다른 국가나 당처럼 마니교도에게 배타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 운영과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는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초원을 중심으로 동서 교역을 발전시키려 했던 위구르의 입장에서 오아시스 출신의 유능한 상인과 결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침 이 무렵 마니교 교의로 무장한 소그드 상인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칠부(산술算術)에 정통했다”라는 비문 기록은 마니교도가 상업적 능력도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국가 경영에 필요한 다양한 자문을 했다. 고대에 승려 집단이 최고의 지성을 갖춘 엘리트 집단으로서 국가 운영에 깊숙이 개입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 p.209~210

위구르의 서방 진출을 보여주는 《구성회골가한비문》

위구르는 820년대 후반 서방에 진출한 이래로 최대 영역을 확보했다. 이 무렵 위구르는 이와 같은 발전을 자랑하기 위해 《구성회골가한비문》을 제작했다. 이 비문은 크기가 약 3.38미터로 추정되는데, 네 면을 고대 투르크 문자와 소그드 문자, 한자 등 세 가지 문자로 기록했다. 각기 다른 세 문자가 하나의 비문에 따로 새겨진 것은 당시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문화 교류와 위구르 사회의 발전 정도를 보여준다. …… 마니교의 전파와 회신 카간의 795년 카간 계승, 800년대 서방 진출 관련 내용이 가장 자세하다. 다른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 카간의 공식 명칭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 현존하는 《구성회골가한비문》은 기공비로서의 성격과 함께 마니교의 발전을 칭송하는 측면을 모두 담고 있다. 유목국가에 수용된 고등 종교는 ‘통합의 이념’이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이것을 기초로 ‘성전聖戰’을 전개할 수 있는 종교적 명분까지 제공할 수 있었다.
--- p.273~283

위구르의 붕괴와 이주 원인으로서 ‘전염병(탄저병)’의 유행 가능성 탐색

탄저균은 토양과 접할 기회가 많은 초식동물이 쉽게 감염될 수 있다. 유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양이 탄저균에 대한 저항성이 가장 약하기 때문에 유목민에게 특히나 치명적이다. 양이 소나 말 등에 비해 병에 걸릴 확률이 더 높은 이유는 식물의 뿌리까지 먹는 습성으로 인해 토양과 접촉하는 빈도가 높기 때문이다. 양의 이런 습성은 유목민이 초지의 파괴를 막기 위해 이동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더욱이 이미 기근으로 영양 상태가 나빠진 터라 탄저병은 더 쉽게 확산되었고, 결국 가축의 대량 폐사로 이어졌다. 가축에 의존하는 유목 경제의 재생산 구조가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 전염병의 여파는 제국의 와해와 위구르인들의 이주에서 끝나지 않았다. 위구르를 무너뜨린 키르기스도 이곳에서 세력화를 시도하다가 머지않아 자신들의 고지인 예니세이강 유역으로 복귀했다. 그 결과 이곳 초원은 동부에 있던 몽골계 집단이 이주해 올 때까지 상당 기간 공동화空洞化된 채로 남겨졌다. 유목민들이 초원을 포기한 이유가 전적으로 재해와 전염병 때문만은 아니겠으나, 이런 측면도 비중 있게 고려해야 함은 분명하다.
--- p.300~302

외래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위구르의 탄력성

고창 위구르의 다양성 수용과 문화 변용 능력에 주목한다면, 유목제국 시기에 도시 네트워크와 고등 종교 같은 외래 요소가 깊숙이 침투했기 때문에 오아시스로 이주한 이후 완전히 정주할 수밖에 없었다는 결과론적 설명은 반성을 요한다. 이런 이해는 유목민은 초원에만 살아야 하고, 초원을 떠나면 정주할 수밖에 없다는 선입견에 따른 것이다. 또한 초원에서든 오아시스에서든 도시 네트워크나 고등 종교 같은 정주적 성격의 외래 요소는 위구르의 국가 운영과 권력 유지 수단으로서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결과였다. 몽골 초원의 위구르뿐만 아니라 그 후예인 고창 위구르 역시 외래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변용할 수 있는 ‘탄력성’을 가지고 있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 p.357~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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