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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관찰

: 곤충학자이길 거부했던 자연주의자 장 앙리 파브르의 말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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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년 09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496g | 140*210*18mm
ISBN13 979117087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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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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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눈부신 성공을 거둔 후, 파브르는 왜 나중에 경력을 쌓아가며 마주한 수많은 실망을 피할 수 있는 교수 자격시험 과정에 들어가지 않았던 걸까? 파브르의 이상적인 미래는 다른 길에 놓여 있고,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막연히 느꼈으리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파브르에게 전달된 모든 요청에도 파브르는 “자연사 부문에서 자신이 사랑했던 연구”만 생각했다. 파브르는 선발시험을 준비하느라 이미 시작한 연구와 코르시카에서 진행한 탐구와 “무의미하다고 느꼈을 이런 노동을 절충”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무서워했다. 파브르는 자연과학 박사학위를 위해 준비하던 첫 번째 독창적인 연구로 바빴다.
--- 「아비뇽에서」 중에서

동물만큼이나 사람을 잘 관찰하는 파브르는 조용히 황제를 바라보았다. 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꽤 단순한” 황제는 파브르와 몇 마디를 나눴는데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파브르는 “짧은 바지를 입고 은색 버클이 달린 신발을 신고 의례를 갖춘 걸음걸이로 움직이는 카페오레 색 겉날개를 걸친 커다란 풍뎅이 같은 시종들”이 오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파브르는 벌써 후회의 한숨을 쉬었다. 지루했다. 몹시 괴로웠으며,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두 번 다시 그 경험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 「아비뇽에서」 중에서

파브르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스스로에게 속했기 때문이다. 파브르 같은 학자, 탐구자, 야외 관찰자에게 자유와 여가 생활은 필수적인 것 이상의 의미였으므로 그것들이 없다면 자신의 과업을 절대 완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충분한 여가 생활을 누리지 못해서 삶을 헛되이 보내고 그토록 많은 정신이 홀연히 사라졌는지! 토양에 뿌리 내린 학자, 한시가 급한 치료에 녹아든 의사가 얼마나 많은지! 어쩌면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이들은 계획을 세우고 늘 사라지는 기적적인 내일로 원하는 바를 미루는 것만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 「은신처」 중에서

파브르는 스스로 자신의 발견이 절대적으로 확실하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었다. 신물이 날 정도로 대상을 관찰하고 또 관찰한 후에야 그 실체를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바로 파브르가 자신의 연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에 거의 관여하지 않은 이유다. 파브르는 논쟁을 신경 쓰지 않았고, 비판과 논쟁을 피했으며, 자신을 둘러싼 공격에 절대 답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연구가 충분히 무르익고 발표될 준비가 됐다고 느낄 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 「진화 또는 “생물변이설”」 중에서

이것이 바로 파브르가 늘 자신은 곤충학자가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이유다. 그리고 실제로 곤충학자라는 단어는 종종 파브르를 잘못 설명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파브르는 자신을 박물학자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생물학자 말이다. 생물학은 사전적 정의상 살아 있는 생명체를 모든 관점에서 전체적으로 고려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생명체에서 고립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서로 연결돼 있고, 모든 관계 속에서 각 부분은 관찰자의 시선에 무수히 많은 측면으로 비치기에 철학자가 되지 않고는 진정한 박물학자가 될 수 없다.
--- 「자연의 해석」 중에서

파브르의 초상화나 그를 묘사한 글에서 파브르는 단순하고 정확하며 타고난 다정함으로 가득했다. 파브르는 자신이 관찰한 작은 생명체를 살아 움직이는 그림으로 재현할 수 있을 만큼 적절하게 말을 다뤘다. 작은 생명체들의 사랑과 싸움, 교활한 책략, 먹이를 쫓는 행동 등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감정을, 모든 곳에서 창조의 고통을 동반하는 그 어마어마한 드라마를 해석할 방법을 찾을 때 파브르의 표현법은 더 높은 수준에 닿아 색채를 띠고 상상력은 풍부해졌다. 특히 파브르는 과학이 시에 제공할 수 있는 심오하고 무궁무진한 자원이 무엇인지, 아직 탐험이 이루어지지 않은 심오한 지평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알이나 번데기가 깨지는 일은 그 자체로도 감동적이다. 어떤 생명체든 “빛으로 다가가는 것은 정말 엄청난 수고”이기 때문이다.
--- 「동물 삶의 서사시」 중에서

보잘것없는 메뚜기조차 자신의 행복을 표현하기 위해 옆구리를 문지르고 삐걱댈 때까지 날개를 정강이에 비볐고, “빛과 그늘의 움직임에 따라” 갑자기 시작하거나 끝내는 자신의 음악에 도취했다. 모든 곤충은 저마다의 리듬이 있다. 어떤 리듬은 강렬하고 어떤 리듬은 거의 알아차릴 수 없다. 그것은 태양이 어루만지는 덤불과 휴경지의 음악, 즐거운 삶의 물결 속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음악이다. 곤충들은 즐겁게 지낸다. 시끌벅적한 축제를 일으키고 끝도 없이 짝짓기한다. 심지어 서로 친분을 쌓기도 전에 “동물의 유일한 즐거움이 사랑”이며 “사랑하는 것이 곧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맹렬하게 삶을 살아간다.
--- 「동물 삶의 서사시」 중에서

뒤푸르의 호기심은 방대한 수집품을 모으게 했지만, 파브르가 생각한 것처럼 수집은 “눈으로만 말하고 생각이나 상상력으로는 침묵하는 거대한 유골 안치소의 황량한 묵상일 뿐”이며, 곤충의 진정한 역사는 이들의 습성, 노동, 전투, 사랑, 사생활과 사회생활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땅 위에서, 땅 아래에서, 물속에서, 대기 중에서, 나무껍질 아래에서, 깊은 숲속에서, 사막의 모래 속에서, 심지어 동물의 몸속까지 모든 곳을 샅샅이 뒤져야 한다.”
--- 「평행 우주」 중에서

인구 감소라는 고통스러운 문제로 신음하는 사람이라면 뿔소똥구리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자. “이들은 풍요로운 시기에 습관적으로 새끼를 많이 낳고, 궁핍한 시기에는 먹고 살 정도의 재력을 지닌 도시의 장인 또는 더 많은 욕구를 충족하는 데 점점 더 큰 비용이 들어서 자원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자손의 수를 제한하는 중산층을 흉내 내며 종종 새끼를 한 마리만 낳았다.”
--- 「세리냥에서 보내는 말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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랠프 에머슨의 말처럼 창조된 모든 것에 약속된 화가나 시인이 있다면, 생명체들의 비밀을 풀어 그 아름다움을 찬양해줄 화가와 시인은 생물학자일 것이다. 전 세계 여러 생물학자를 만나며 그들이 생명체를 바라보고 얘기할 때 반짝이던 눈을 기억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생명체에게 마음을 뺏겨 눈을 떼지 못한다. 자연을 마주할 때 섬세하고, 정확하고, 집요하며 아이처럼 순수하다. 사회 속에서 부조리와 괴롭힘에 분노하고 비참함과 구질구질함에 눈물을 흘리지만, 어느새 또 반짝이는 눈으로 자연을 관찰한다.

위대한 과학자 파브르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 애처로우면서도 위안을 준다. 전쟁, 사랑하는 이의 죽음, 사람들의 괴롭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한 인간이 지구에 사는 생명체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만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래도록 생명체를 마주하기만을 간절히 바란 노력과 투쟁. 그 단순한 소망이 사랑스럽다. 이 책을 통해 파브르의 삶 속에서 그를 위로한 사람들과 수많은 생명체를 만난다. 파브르도 결국 지구에 나타났다 사라진 한 생명체이며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내가 서 있는 이 지구, 머물다 갈 시간, 함께하는 아름다운 생명체들이 소중해진다.
- 신혜우 (미국 스미스소니언 환경연구센터)
식물세밀화가로 일을 하기 전까지는 새로운 종을 많이 발표하고, 유의미한 이론을 내놓는 학문적 성과만이 자연과학자의 자질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16년간 식물을 관찰하며 깨달았다. 자연과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세상과 나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고 자연을 마주하는 것이란걸. 익히 알려진 많은 자연과학자들의 업적 뒤에는 부유한 가정 환경, 계급적 뒷받침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파브르는 내내 가난했고 인정받지 못했기에 고군분투해야 했다. 그럼에도 파브르의 배움은 품위나 학위를 위한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의 관찰에 감히 ‘위대함’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자 하는 데엔 삶의 역경 속에서도 자연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으려 한 의지, 자연을 가까이하면서도 소유하지 않으려는 경계심, 세상에 나서지 않고 관찰에 몰두해온 인내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유연함 같은 것이 있다. 이것은 현대 자연 관찰자에게도 필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파브르의 관찰기가 시공간과 연령대를 초월해 많은 사람에게 공감받는 이유는 자연에 관한 이토록 투명하고 진실한 호기심 때문이 아닐까.

파브르의 책이 우리에게 자연을 바라볼 기회를 주었듯, 이 책은 파브르 본인이 관찰 대상이 되어 호모 사피엔스, 사람이라는 생물종을 이해하도록 만든다. 파브르의 책이 지닌 설득의 서사가 이 책에도 담겨 있다. 현실에 치여 꿈을 접어야 했던 누군가에게, 신념과 사회적 시선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자연의 언어를 해석하고자 하는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그 자체로 본보기가 된 파브르의 삶이 우리 스스로와 우리를 둘러싼 모든 존재를 소중히 여길 용기를 줄 거라 믿는다.
- 이소영 (식물세밀화가, 원예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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