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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양장 ] 위픽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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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9월 11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00쪽 | 182g | 100*180*10mm
ISBN13 9791171717125
ISBN10 117171712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그 집에 입주한 2020년 봄에는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번듯하게 꾸며놓은 공간에서 푸석한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하지 않은 채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음악을 듣다가 낙양이 선사하는 그림자가 발밑으로 밀려들면 자리를 옮겨 글을 쓰는 일상 따위를 상상했다. 작가의 삶이라는 것에 대한 환상이 남아 있지 않다고 믿어왔음에도, 그때는 내게 펼쳐질 미래를 다소 감상적으로 그려보기도 했다.
--- pp.8~9

쓴다는 것은 어떠한가. 무한한 입체성의 현재로부터 존재를 인식의 대상으로 전환시키고, 대상을 표현하기 위한 문장을 구성하는 사이에 현재는 떠밀려간다. 현재는 영원히 기술될 수 없는 상태로 남는다.
--- p.10

집으로 돌아가자. 새로운 집에서의 생활에 특별한 기대를 품었던 것은 당시 도무지 글을 쓸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는 소설을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예감은 2019년 12월 《자동 피아노》를 출간한 이후 불현듯 밀려왔다. 소설은 깊은 우울과 반복적인 자살 충동에 사로잡힌 인물의 분열적인 의식을 받아쓰듯 써 내려간 작품이었고, 지난 십수 년간 내 내면에서 쉬지 않고 펼쳐진 사건 그 자체였다.
--- p.14

새로운 집은 반드시 글쓰기의 의욕을 회복할 수단이거나 글을 쓰지 않고도 스스로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 삶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여야만 했다. 집은 보란 듯이 곧바로 기대를 배반했다. 그해 장마가 본격적으로 찾아오기도 전에 집은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 p.18

미친 사람은 미친 사람에 대해 쓸 수 없다. 글쓰기의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은 글쓰기의 고통에 대해 쓰기는커녕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고통받느라 당최 글이라는 걸 쓸 수 없어서 고통받을 뿐이다. 앞의 문장은 이상하지만, 이 문장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쓸 수는 없을 것이다.
--- p.25

한 인간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정합성을 갖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진다. 나는 나의 실패를 용납할 수 없으면서도, 다른 모두의 실패를 간절히 원했다.
--- pp.36~37

터무니없이 긴 ‘작가의 말’이 자주 떠오르며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도 그쯤이었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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