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이 광합성을 하고 뿌리를 내딛고 싶은 만큼 내딛고, 수분과 양분을 원하는 대로 흡수해 꽃을 피우다 사람들 눈에 띈 틈새 식물들. 더 이상 도시살이를 피할 수 없는 식물들에겐 최선의 삶의 형태였을 것이다. 어쩌면 저 먼 열대우림에서 한국으로 옮겨져 건조한 실내에서 햇빛과 물을 충분히 받지 못하며 살아가는 우리 가까이의 실내 분화 식물들이 사실은 더 불행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내 영역 안에서 존재의 행복을 자신하고, 낯설고 먼 존재의 불행을 지레짐작하지만 말이다.
--- 「도시 틈새 식물의 선택」 중에서
내가 어떤 대상을 보고 평소와 다르다고 느끼더라도 우선 나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한다. 상식 밖의 자연현상을 마주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내 상식이 틀렸거나 대상 식물에 대한 나의 경험 데이터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춘추벚나무와 장미가 가을에 꽃을 피운 게 이상해 보인 것은 가을에 꽃 피우는 장미와 벚나무가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를 의심하기 이전에 우선 우리의 무심함부터 돌아볼 일이다.
--- 「가을에 핀 벚꽃, 기후 위기 때문일까」 중에서
호주 커틴 대학의 킹슬리 딕슨(Kingsley Dixon) 박사 연구팀은 식물 연구자들이 자기 분야에서 어떤 기준으로 연구할 식물을 선택하는지 조사했다. 1975년부터 2020년까지 발표된 알프스 자생식물 논문 280편을 대상으로, 연구 주제로 선택된 식물종의 색과 형태 그리고 눈에 잘 띄는 특성 간의 관계를 분석한 것이다. 분석 결과 연구자들은 작은 꽃보다 크기가 큰 꽃을, 초록색과 검은색처럼 눈에 띄지 않는 색보다 분홍색, 흰색 꽃과 같이 화려한 색의 꽃을 훨씬 더 많이 선택해 연구했다고 한다. 개체의 희귀성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무엇보다 자연에 많지 않은 파란색 꽃이 가장 많이 연구됐다. 딕슨 박사가 이 연구를 통해 전하고 싶은 바는 연구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생태계에 중요하거나 긴급한 보전이 필요한 식물을 놓치게 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식물의 외형은 식물의 가치 혹은 효용성과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 「모과가 쓸모없는 열매라는 편견」 중에서
무화과는 한자로 ‘꽃이 없는 과일’을 뜻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의 착각에서 빚어진 오류다. 무화과를 초기에 발견한 사람들은 아무리 오래 들여다봐도 꽃이 보이지 않으니 꽃이 피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나, 사실 무화과에도 꽃은 있다. 심지어 수도 없이 많은 꽃이 핀다. 이 꽃은 열매 이전의 꽃주머니 안에서 우리 눈에 띄지 않고 자잘하게 피어날 뿐이다. 무화과를 먹을 때 씹히는 수많은 씨앗이 꽃의 존재를 증명하니, 우리는 식감으로 꽃을 느끼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무화과 열매 끝에는 작은 구멍이 나 있다. 이것을 무화과 눈이라고도 부른다. 무화과나무의 수분을 돕는 무화과말벌은 이 구멍을 통해 꽃주머니 안팎을 드나들며 꽃가루를 옮긴다.
--- 「무화과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는 오해」 중에서
몇 년 전 당근을 재배하는 농장 연합회로부터 당근을 유통할 때 포장하는 박스 패키지 디자인에 사용할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당근을 그리려면 야생 당근 원종에 관해서 알 필요가 있기에 영국 큐왕립식물원의 디지털 데이터를 통해 당근 표본 정보를 찾았다. 그런데 원종으로 추정되는 종이 내가 생각했던 주황색이 아닌 보라색에 가까운 흰색이었다. 게다가 지난 역사 동안 그림과 표본, 사진으로 기록된 당근 뿌리 색은 천차만별이었다. 흰색, 보라색, 빨간색, 노란색 그리고 주황색. 이 데이터를 눈으로 확인한 후 나는 더 이상 당근을 홍당무라 부를 수 없었다. 당근이 시대에 따라 다채로운 색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 「당근은 원래 주황색이 아니었다」 중에서
식물을 관찰하다 보면 물감 팔레트에는 없는, 오차 범위가 촘촘한 다채로운 색들을 만나게 된다. 벌개미취와 층꽃나무, 솔체꽃 그리고 두메부추의 꽃 색을 우리는 결과적으로 보라색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이들을 마주하면 보라색도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식물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색의 다양성을 깨닫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 「식물로부터 시작된 색 이름」 중에서
우리 숲에는 요즘 꽃집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라넌큘러스 가족도 있다. 매화마름, 개구리갓, 개구리자리, 젓가락나물 등은 라넌큘러스와 한 가족이다. 이들은 모두 햇빛 아래에서 꽃잎이 반짝이며 광채가 난다. 이 광채는 매개 동물의 눈에 띄어 수분을 하려는 식물의 생존 전략이다. 요즘 꽃 시장에선 라넌큘러스 종류 중 꽃잎이 빛나는 버터플라이 계통이 인기가 많은데, 이들 꽃잎이 빛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식물의 족보를 알고 나면 꽃집과 화단의 식물이 숲의 식물과 별개가 아니라는 사실도 이해할 수 있다.
--- 「튤립과 아네모네가 사는 숲」 중에서
그렇기에 하늘타리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늦은 오후에 집을 나서야 했다. 흑막 속에서 흰 꽃잎을 내뿜은 듯한 형태의 하늘타리 꽃은 이것이 식물인지 여느 작은 동물인지 착각할 만큼 기이했다. 다음 날 낮에 다시 하늘타리를 찾으니 전날 밤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꽃잎이 축 처져 있었다. 그렇다면 이 식물들은 왜 어두운 밤에 꽃을 피우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수분을 도울 곤충이 야행성이기 때문이다. 굳이 야행성 곤충의 도움을 받는 이유는 낮에 활동하는 곤충의 선택을 받는 경쟁에 참여하기보다 밤에 활동하는 곤충의 선택을 받는 편이 유리하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따뜻한 봄과 여름이 아닌, 추운 겨울 동안 꽃을 피우는 복수초와 설강화 같은 겨울 꽃의 선택도 같은 이유에서다.
--- 「아침에 피는 꽃, 밤에 피는 꽃」 중에서
현재까지 연구된 바로는 총 열네 개 과의 식물이 열을 발산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중에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식물도 있다. 셀로움필로덴드론의 꽃이라 불리는 기관은 흰 포엽(잎의 변태로, 꽃이나 꽃받침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잎)이 긴 꽃차례를 감싸는 형태인데, 바로 이 꽃차례가 열을 발산한다. 발산된 열은 꽃의 성숙을 도울 뿐 아니라 매개 동물인 딱정벌레를 유인한다. 딱정벌레는 따뜻한 온기를 찾아 필로덴드론의 꽃 속으로 기어들어가 수분을 돕는다. 열 발생 식물 중 많은 경우가 세포에 저장된 탄수화물과 당을 태워 열을 발산하지만, 필로덴드론은 특이하게 지방을 태워 열을 발산한다.
--- 「식물에도 온기가 있다」 중에서
식물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휘발성 유기화합물 때문이다. 휘발성 물질은 공기 중에 흩어지고 증발하면서 수분 매개자를 끌어들이고, 해가 되는 동물을 내쫓기도 한다. 식물은 동물과 냄새로 의사소통을 하는 셈이다. 인간에게 향기롭지 않은 냄새일지라도 어떤 동물에게는 흥미롭거나 유혹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잎에서 생선 비린내가 나는 약모밀과 쾨쾨한 냄새가 나는 누린내풀, 누리장나무의 향기 또한 각자의 수분 매개 동물에게만큼은 최적화됐다.
--- 「고약한 냄새에도 이유가 있다」 중에서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능소화 꽃가루에 관한 조언을 자주 들었다. 능소화 곁에서 손으로 눈을 비비면 그 꽃가루가 눈에 들어가 심하면 실명까지 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이야기였다. 능소화 꽃가루가 갈고리 형태라 피부나 옷에 한 번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고, 독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염증을 일으키며 눈을 실명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소문은 우리나라에서 수십 년간 지속됐고, 한쪽에서는 더 이상 능소화를 심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것은 과장된 이야기였다. 능소화의 이 억울한 누명을 풀어준 존재 역시 전자 현미경이다. 현미경으로 확대해 찍은 능소화 꽃가루는 갈고리와 비슷한 모양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그물망 형태의 꽃가루였다.
--- 「바람에 퍼지는 작디작은 꽃가루」 중에서
우리가 아는 카네이션의 색과 형태는 이들을 200년간 육성하고 재배하면서 진행된 산업화의 산물이다. 한순간 꽃이 피었다가 지는 숲의 패랭이꽃속 식물과 달리, 카네이션은 1년 내내 꽃이 핀다. 줄기는 길고 곧으며 꽃잎은 크고 화려하다. 카네이션 원종과 재배종을 비교해보면 줄기의 길이가 확연히 다르다. 패랭이꽃속 식물은 줄기가 짧고 가는 것이 특징인데, 카네이션은 줄기가 곧고 길다. 줄기가 짧으면 꽃병에 꽂아 절화로 활용할 수 없기에, 패랭이꽃속 중 가장 키가 큰 종을 선택한 후 줄기를 더욱 곧게 육성한 것이다. 최근에는 패랭이꽃속 특유의 꽃잎 가장자리 핑킹 거치를 지우고 가장자리를 매끄럽게 육성한 카네이션도 유통되고 있다.
--- 「편집당한 카네이션」 중에서
온실 재배에 성공하기까지 200년 이상 파인애플은 귀한 식물로서 호황기를 맞았다. 권력자들은 파인애플 하나를 사는 데에 현재 화폐 가치로 800만 원까지 지불했으며, 먹는 것조차 너무 아까운 나머지 식탁이나 테이블 위에 장식만 해두거나, 외출할 때 가방을 들듯이 파인애플을 팔에 얹고 다녔다. 관상용 식물을 넘어선 과시용 장식물이 돼버린 것이다. 심지어 현대의 명품 대여점처럼 파인애플 대여점이 성행했으며, 권력의 상징이 됐다. 왕관과 비슷한 파인애플의 형태가 이들을 소유한 사람을 왕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 「과일의 왕, 파인애플의 위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