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술의 기원에 관한 고전적 관점
조르주 바타유의 견해와 예술의 탄생에 관한 고전적 관점
조르주 바타유 외에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이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같은 현대 유럽 예술가와 작가들도 라스코동굴벽화에 감탄을 표했으며, 그 화려한 아름다움 너머에는 미지의 메시지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고까지 생각했다. 그 같은 그림만이 품을 수 있는 메시지, 선사학자들이 비장하기까지 한 자세로 파헤쳐온 메시지가 말이다. 라스코동굴벽화를 설명할 때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주술, 토테미즘, 성적 상징성, 샤머니즘 같은 요소들은 이 위대한 구석기시대 작품을 관조할 때 일어나는 감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라스코동굴의 그림들은 원래의 의미를 뛰어넘는 아름다움과 힘을 지녔다는 점에서, 1790년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가 가령 도구가 가진 아름다움 같은 ‘종속적인 아름다움’과 비교해 ‘자유로운 아름다움’이라고 명명한 것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라스코동굴벽화가 지닌 아름다움에는 예술이 전통적으로 전달해온 종교적 메시지로부터 벗어난 현대 예술의 자유로움에 비견될 만한 자유가 느껴진다. _21~22쪽
예술의 출현에 관한 전통적 관점은 현생인류 이전 인류에 대해 그 불완전성과 넓은 의미에서 지적·정신적 무능함을 철저하게 강조한다. 그리고 예술적 표현, 특히 먼 과거의 예술적 표현은 신앙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시각을 정설로 받아들인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에렉투스Homo erectus는 언어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데다 주술적·종교적 신앙을 갖출 만한 정신 단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예술적 생산을 할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후기 구석기시대 이전 창작물들을 앙드레 르루아구랑의 표현대로 인류의 먼 조상들의 ‘납작한 두개골의 좁은 테두리 안에 머무는’ 것으로 폄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예술적 창작물로 간주하지 않고, 신중히 말해서 ‘상징적 생산’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예술’이라는 단어를 확실히 붙일 수는 없는 뭔가 애매하고 다소 질이 낮은 범주에 속한다고 취급하는 것이다. _27쪽
‘예술의 탄생’의 전통적 이해에 대한 반론들
이렇듯 괄목할 만한 형태의 예술, 다시 말해 벽화예술의 출현이나 소멸, 부재는 지역적으로나 시대적으로나 다양한 현상으로 나타났으며, 현생인류의 출현이나 부재와 절대적으로 직접적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유럽 내에서의 벽화예술의 출현 및 소멸도 후기 구석기시대가 진행되는 동안 지역적 사건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벽화예술이 출현하거나 소멸한 이유 역시 사회적인 동시에 경제적·문화적·종교적인 다양한 성질을 띤다. _37쪽
암면미술은 일종의 의사소통체계로 간주된다. 이런 맥락에서 부족과 예술의 영향권은 생활환경이 매우 열악한 지역과 시기에 넓게 나타난다. 힘든 생활환경이 강한 사회적 결속과 화합의 메커니즘을 끌어내고 동일한 양식의 암면미술을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다. 반대로 살기 좋은 환경(해안에서 가까운 지역)에서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사회적 긴장이 생겨나고, 부족의 영향권이 좁아지며, 지역사회의 정체성이 명확해지고, 예술양식의 지방분권화가 나타나고 강화된다. _41쪽
2장 예술의 기원에 대한 또다른 접근 방식
예술의 정의
조르주 바타유는 동굴미술이 출현하기에 앞서 오랫동안 전개된 전기 및 중기 구석기시대를 ‘끝없이 제자리에서 헛도는 바퀴’ 같은 시대라고 봤다. 이 우아한 표현은 예술의 출현을 후기 구석기시대 현생인류의 출현에 연결 짓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마음에 들 것이다. 하지만 예술의 출현은 다른 관점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_45쪽
영장류의 예술?
원숭이가 만들어낸 회화적 흔적과 구석기시대 인류가 점토질의 동굴 벽에 남긴 비정형적인 손가락 자국이 서로 닮았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해부학적 조건에 따른 형식적 근사성이다. ...
원숭이에게 없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식이다. 원숭이의 회화적 행위는 외부 자극에 대한 단순히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인 것이다. 원숭이의 그림을 액션페인팅(action painting, 즉흥적인 몸짓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현대미술)과 비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원숭이의 그림은 소통 의도가 조금도 담기지 않은 순간적인 회화 행위의 결과물일 뿐이며 행위 순간을 넘어 진정한 예술품으로 연장되지는 않는다. _55~56쪽
자연의 예술품을 수집하다
아름다운 것을 모아오던 인간은 이내 자기 자신도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녔음을 자각하게 된다. “인간에게 아름답게 보이는 모든 것은 세계와 인간 자신을 동시에 지배하는 법칙들을 드러내는 것,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이면서 인간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것, 따라서 말 그대로 자연적으로 인간의 마음에 들고 인간을 만족시키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자기 자신도 씨실로 엮여 들어가 있는 그물에 포로가 되었다”(르네 카유아Rene Caillois). _59~60쪽
거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고 깎기도 힘든 암석을 수집하고 옮겨 와서 도구로 만들어 썼다는 것은 선사시대 내내 비실용적이고 비기능적인 요구, 즉 신앙과 관계된 순수한 미적 관심이 편리함과 효율성보다 종종 더 중요하게 여겨졌음을 말해준다.
물론 도구 제작에서 기본적인 재료가 된 것은 규석(硅石, silica)과 기타 쉽게 구할 수 있는 평범한 암석들이다. 하지만 선사시대 인류는 화석과 광물의 형태 및 색의 다양성에 관심을 가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암석의 광물학적 다양성과 그 모양, 색깔, 질감, 단단함의 차이에도 아주 일찍부터 관심을 기울였다. _76~77쪽
최초의 형태, 최초의 도구: 다면석기, 구형석기, 주먹도끼
머릿속에 떠올린 구의 형태를 따라 다면체를 다듬다 보면 무게중심이 점차 이동하게 되며, 이로써 그 무게중심은 완벽하게 둥근 형태가 된 돌멩이의 기하학적 중심에 자리하게 된다. 중심을 기준으로 어떤 식으로든 대칭을 이루는 물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각면원구는 인간이 그 역사에서 처음으로 ‘대칭’이라는 개념을 실현한 작품이다. _95쪽
흔적과 줄무늬
… 1977년에 미국의 유명 고고학자 알렉산더 마샥Alexander Marshack은 페슈 드 라제 제2동굴의 뼈 조각품에 대해 특히 심도 깊은 연구와 해석을 발표했다. 그 조각품에서 물의 상징성과 관계된 폭넓고 오랜 ‘물결무늬 전통’의 기원이 보인다는 설명이었다. 게다가 일부 흔적은 ‘비현실적인 하천’ ‘샤머니즘적 기행을 연상케 하는 여정’을 나타낸다고까지 봤다.
그런데 1997년, 선사학자 프란시스코 데리코Francisco d’Errico와 파올라 빌라Paola Villa에 의해 ‘아슐리안 조각품의 샤머니즘적 기행’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매우 철저한 현미경적·해부학적 비교분석을 실시한 결과, 문제의 흔적이 사실은 소과 동물의 갈비뼈 표면에 생기는 혈관 자국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들도 실수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그 같은 해석을 내릴 때 얼마나 신중을 기해야 하는지를 잘 알려준다. 오늘날에는 유골에 남은 흔적을 연구할 때 무척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다양한 학문과 종종 매우 복잡한 관찰 방법들을 동원하는 엄격한 과정을 적용하고 있다. _118~119쪽
최초의 암면미술: 바위구멍
발굴팀은 묘지를 덮고 있던 암석덩어리를 ‘뒤집으면서’ 들어 올렸고, 그렇게 해서 드러난 암석 안쪽 면에서 ‘인간의 작업에 의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약 스무 개의 바위구멍을 발견하게 된다. … 이 중대한 발견은 상징적 표현이 후기 구석기시대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매우 확실한 증거다. 이에 따르면 유럽 암면미술의 기원은 약 4만 년 전 중기 구석기시대 말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
문제의 암석은 특별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풍긴다. 특히 바위구멍들은 묘지에 속한 요소일 뿐 아니라 구덩이와 시체를 향해 있었다는 점에서 물질적인 관심사에서 만들어진 것으로는 볼 수가 없다. 본질적으로 상징 및 의식과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_125~127쪽
장신구
인위적으로 제작한 장신구가 출현했다는 것은 인류 진화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장신구는 상징적·사회적 기능을 하며, 어느 한 집단이나 개인을 다른 집단이나 개인과 구별해주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장신구는 누구나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물건으로서, 체계화된 사회를 전제로 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게다가 기술적 능력의 표현이기도 하며, 동물의 세계가 원료(뼈, 조개껍데기, 사슴 뿔)의 공급원으로서 기호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역할도 한다. … 남아프리카공화국 블롬보스동굴에서의 발견은 미적·상징적·사회적 행동이 좁은 의미의 크로마뇽인이 출현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음을 확인시켜주는 증거다. _135~137쪽
나가며: 급변이 아닌 질적 성장
후기 구석기시대 예술활동의 증거는 풍부한 데 비해 전기 및 중기 구석기시대의 경우는 그 증거가 드물다는 점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인류의 기원에서부터 확인되는 의도적이고 자각적인 예술활동은 시간과 함께 점차 발전해왔지만, 이 같은 활동의 증거에 대한 연구 자체는 최근에 강화되었다. 이제 선사학자들은 미학적·상징적 행동의 기원이 매우 오래된 것임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그래서 그 증거에 대한 발견도 많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눈에 띠지 않고 넘어갔던 많은 증거가 이제야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그 옛날의 유적 속에서 발견을 기다리고 있는 증거는 아직 많을 것이며, 발견되고 나면 현대적이고 엄격한 방법으로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_142쪽
암면미술 혹은 동굴미술은 인류가 200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신적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구체화한 과정 끝에 출현했다. 문화적 급변 내지는 ‘빅뱅’에 의해 나타난 게 아니라 단지 질적인 성장의 결과물이었다는 얘기다. 그렇게 암면미술은 시간과 공간적으로 ‘조각조각’ 생겨나면서 미학적인 면에서 큰 다양성을 보여줬다. ‘예술의 요람’ 같은 게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예술양식의 발전이나 진보가 꼭 시간 순서에 따라 진행된 것도 아니다. _146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