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 작품을 뭐라 불러야 할까. 심리 드라마, 역사물, 살인극, 혹은 시대를 망라하는 정치극, 아니면 철학적 비극? 그렇다. 이 모두에 다 해당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한 사람이 써낸 바로 그 한 작품이 말이다. 어떤 세대든 『햄릿』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자신의 문제와 고초, 자신의 좌절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대개는 찾던 것을 발견해낸다. 바로 이 점이 대단하고 기막히고 놀랍다못해 가히 불가해하며, 바로 이런 까닭에 『햄릿』은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최고의 극작품으로 꼽힌다. --- pp.14~15
그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른, 천생 시인이었다. 그의 인생은 전부 실패였고, 시(詩)만이 예외였다. 자신의 열정과 두려움, 열등감에 스스로 부딪혀 속수무책인 채, 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부딪혀 어찌할 바 모른 채, 횔덜린은 피난처와 은신처를 찾아 헤맸다. 그는 오직 시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든든한 버팀목을 원했고, 결국 찾아냈으니, 견고한 시문학 형식은 고군분투하던 그에게 구원의 방주가 되었고, 그는 대개 장중한 고대문학의 모범들을 탁월하게 모방했다. 그의 운문의 힘은 무엇보다도 형식에서 비롯되며, 형식에 의해 규정된 리듬에서 나온다. 그의 서정시가 지닌 최대 미덕은 특유의 운율이다. 횔덜린은 시를 마술적 존재로 만들었다. 그는 사물들로부터 그들의 꿈과 노래, 그들의 시적 실체를 뽑아냈다. 그리하여 그는 지상의 세계가 노래하게 했고, 그 노래가 울려퍼지게 만들었다. --- p.44
고골이 사회 고발자였다면 톨스토이는 재판관이었고, 도스토옙스키가 스스로 피고인의 자리에 섰다면 체호프는 그저 증인의 역할을 맡았던 셈이다. 그는 결코 작중인물 위에 군림한 적이 없으며, 다만 항상 그들 곁에 서 있었다. 러시아의 다른 작가들이 목청 높여 신음하고 절규할 때, 그는 그저 나직나직 속삭였다. 하지만 지구의 절반이 곧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 p.118
슈니츨러는 사랑과 죽음의 시인이었다. 체념과 파멸, 한없는 무상함을 그린 작가였다. 그의 인물들이 타인을 갈망한다면, 이는 그들이 타인에게서 무슨 큰 행복을 얻을 줄로 기대해서가 아니다. 이들의 바람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이들은 다만 보호받기를 바라며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이요, 의지할 데 없어 망명을 꿈꾸는 이들이요, 고통을 잠재워줄 진통제를 찾는 이들이다. 꿈꾸던 피난처래야 그저 잠시 잠깐이요 임시방편일 뿐임을 그들도 잘 알지만, 단 한 시간만이라도 좋으니 이 외로움을 이겨내고 슬픔을 잊고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싶은 것이다. --- pp.130~131
토마스 만은 몇 번인가 사랑에 빠졌지만, 그가 여든 살까지 살았음을 감안한다면 별로 많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매번 그는 사랑을 심하게 앓았다. 일흔다섯 살의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또다시 이것이, 또다시 사랑이, 사람에게 온통 사로잡히는 일이, 그를 향한 깊은 열망이―아무 일 없이 25년이 지났는데, 이제 또다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랬다, 그는 행복했다. 그러나 사랑과 동경은 불완전한 인식에서 기인하리라는 생각만큼은 끝까지 변함이 없었다. 클라이스트의 『암피트리온』에 대한 에세이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우리가 어떤 가치 때문에 사랑한다고 믿는다면, 그건 착각이다.” 사랑은 모든 가치에 앞서는, “가치를 부여하는 힘”이라고. --- p.201
카프카의 작품들은 어디까지나 프라하라는 독특한 정황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이며, 우선적으로 이러한 정황 및 거기 사는 유대인들에만 연관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밀려난 존재들, 비난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향과 소외에 대한 탁월한 비유인 것이 입증되었다. 말하자면, 카프카가 묘사한 유대인의 비극은 후세의 전 세계 독자들에게 인간 실존의 극단적 예증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 p.219
그의 첫사랑은 옛 오스트리아였다. 합스부르크 제국이 붕괴하자, 로트는 20년대의 정처 없는 지식인의 길에 들어섰다. 그리하여 왼쪽으로, 베를린으로 향했다. 오스트리아에 대한 사랑을 잃고 사회주의와 바람이 났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이 낙담한 오스트리아인, 좌절한 사회주의자, 약속의 땅을 찾는 유대인에게 무엇이 남았겠는가? 어쩌면 독일? 로트는 몇 년쯤 줄곧 그렇게 믿었고, 그러길 희망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못해, 그는 자신의 나라는 “무국(無國)”이라고, 이제 자신에게 남은 고향은 독일어 하나뿐이라고 썼다. 로트, 이 절망에 빠진 인생의 향락자는 술을 위안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온갖 기행(奇行)과 우행(愚行)도 낙으로 삼아, 별별 배역과 가면을 다 뒤집어썼다. 그의 주변 사람 누구도 어디까지가 연극이고 어디부터가 진실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 pp.247~248
모든 작품에서 그는 우리, 곧 시민사회의 교양 있는 지식인들을 다루었다. 우리의 속내를 간파하고 통찰했다. 우리가 느끼고 예감하고 생각했으되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드러내 보여주었으니, 이 점에서 프리슈는 동시대 작가들을 압도했다.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모두가 문학에서 구하는 것을 찾았으니, 즉 우리의 고통이다.
젊은 독자들과 미래 세대들은 막스 프리슈의 소설과 일기를 통해 짐작할 수 있으리라. 20세기 후반을 살았던 지식인이란 남자들이, 어떻게 여자를 사랑했으며, 얼마나 죽음을 두려워했는지를. --- p.283
작가 베른하르트는 우리 존재의 가장 어두운 영역들에 매료되었는데, 바로 거기서―그리고 오직 거기서만―삶의 결정적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베른하르트는 자기 주변 세계에 항거했고, 그럼으로써 온 세상에 저항했다. 그는 인간의 삶에,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대해 분노했다. 그의 작품은 끊임없는 항명이며, 끝없는 반란이다. 그러나 우리 실존의 무의미성에 저항한 이 불같이 맹렬한 항거에는 어쩌자는 계획도, 아무 목적도 없었고, 그저 그 자체로 그는 족했다.
베른하르트는 어떤 환상도 품지 않았다. 문학으로 독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털끝만큼이라도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견해 따위를, 그는 어리석고 유치하게 여겼다. 과격한 사회비판가였으나, 다만 ‘반항을 위한 반항’에 몸을 바친 이였다. 그는 죽음의 작가로 시작해, 마지막 날까지 그렇게 살았다.
--- pp.333~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