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규칙이 아니라 원칙에 관한 것이다. 규칙은 ‘반드시 이런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원칙은 ‘이런 방법이 효과가 있으며…… 기억이 미치는 한 항상 그래 왔다.’고 말한다. 이 둘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당신의 작품은 잘 만들어진 작품을 본뜬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예술을 구현해 내는 원칙들 속에서 잘 만들어진 것이어야 한다. 경험이 많지 않고 초조해하는 작가들은 규칙에 복종한다. 반항적이고 학교라는 틀을 거치지 않은 작가들은 규칙을 쳐부순다. 예술가들은 형식을 장악한다.
--- p.9
이 책은 지름길이 아니라 철저함에 관한 것이다.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탈고에 이를 때까지 시나리오 한 편을 끝내는 데는 소설 한 편을 쓰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영상을 다루는 작가와 산문을 다루는 작가는 똑같은 밀도의 세계와 인물,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단지 종이에 쓰인 시나리오에 여백이 훨씬 많다는 이유로, 시나리오 쓰기는 소설 쓰기보다 쉽고 빨리 끝낼 수 있는 종류의 일이라는 오해를 종종 받는다. 그러나 삼류 소설가들이 손이 따라가 주는 최대한의 속도로 지면을 메워 가고 있을 때, 시나리오 작가들은 가장 적은 수의 낱말을 가지고 최대한의 것을 표현해 내기 위해 머릿속에서 무자비하게 편집에 편집을 거듭한다.
--- p.13
이 책은 관객을 경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존경하기 위한 것이다. 재능 있는 작가들이 나쁜 작품을 쓸 때는 보통 한두 가지 이유가 있다. 어떤 생각을 꼭 드러내야겠다고 강박 관념에 눈이 멀어 있든가, 그렇지 않으면 꼭 표현해 내고 싶은 어떤 감정 상태에 휘둘리고 있는 경우다. 재능 있는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써내게 될 때는 대개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관객을 감동시키겠다는 욕망이 작가를 움직이는 것이다.
--- p.16
나는 아직도 예술이 삶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내가 또한 알고 있는 것은, 만약 당신이 이야기라는 오케스트라에 사용되는 모든 악기를 제대로 연주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상상 속에 어떤 음악이 자리 잡고 있더라도, 당신은 오로지 그 오래된 똑같은 곡만을 중얼거리도록 운명 지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당신이 각종 기교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워 주고, 인생에 관한 당신만의 독특한 관점을 표현할 수 있도록 당신을 자유롭게 해 주며, 당신의 재능을 관습적인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려서 탁월한 내용과 구조, 그리고 스타일을 갖춘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하고자 함이다.
--- p.20~21
만약 교향곡을 작곡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당연히 음악 학교에 가서 교향곡이라는 장르에 집중해서 이론과 실기를 공부할 것이다. 몇 년간 열심히 공부한 후에야 지식과 창의력을 한데 모으고 용기를 내서 실제로 곡을 쓰는 모험을 감행할 것이다. 너무나도 많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이 좋은 시나리오 한 편을 써내는 것은 교향곡을 작곡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때로는 그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에 대해 그럴지도 모른다는 의심조차 해 보지 않는다. 좋은 시나리오를 쓰는 일이 어려운 까닭은, 작곡가들은 음표들의 수학적 순수성에 근거해 작곡을 하는 반면에 시나리오 작가들은 인간 본성이라고 이름 붙여진 혼돈 속으로 파고들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 p.30
이야기에 대한 사랑, 즉 작가의 전망은 이야기를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는 믿음, 등장인물들이 실제 사람보다 훨씬 더 사실적일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가공의 세계가 실제의 그것보다 훨씬 근원적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 p.39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주인공의 삶의 균형을 깨뜨린다. 이로 인해 주인공의 마음속에는 깨진 삶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의식적·무의식적 욕망이 일어나고 주인공은 자신을 방해하는 모든 적대적인 힘들(내적·개인적·초개인적)에 맞서 가면서 자신의 욕망의 대상을 추구해 나가게 된다. 주인공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이 과정을 간단히 일컬어 ‘이야기’라 한다.
--- p.298
한 줄 한 줄, 한 장 한 장, 한 시간 한 시간 날마다 글을 써라. 항상 이 책을 가까이에 둬라. 타고난 재능만큼이나 이 책의 원칙들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이 책에서 배운 것을 지침으로 삼아라. 겁이 나더라도 감행하라. 다른 무엇보다 상상력과 기술보다도 더 세상이 작가에게 요구하는 것은 용기다. 거부, 비웃음, 실패를 무릅쓸 수 있는 용기다. 의미 있고 아름답게 쓰인 이야기를 찾아 모험하면서 신중하게 탐구하되 대담하게 글을 써라. 그러면 저 우화의 주인공처럼 세상을 눈부시게 할 춤을 추게 될 것이다.
--- p.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