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권리론이 적극적 의무와 소극적 의무를 모두 포함할 때, 어떻게 인간─동물 상호 작용이 서로 존중하고 더욱 풍요로우며 비착취적인 조건을 설정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과제다(34).
모든 동물에게 주어진 보편적인 소극적 권리와 인간─동물 관계의 성격에 따라 차별적인 적극적 권리를 통합하고 확장한 동물 권리론이 이 분야가 발전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있는 방법을 제공할 것이다.
--- 「1장」 중에서
불가침성 문제는 누군가의 기본적 이익이 다른 이들의 더 큰 선을 위해 희생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인권 혁명은 인간에게 이러한 불가침성이 있다고 한다. 강력한 동물권 입장은 쾌고감수능력이 있는 동물도 이러한 불가침성이 있다고 한다. 일부 독자는 동물에게 불가침성을 확장하면 권리 혁명으로 힘들게 성취한 불가침권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라고 걱정할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불가침성을 인간으로 한정한다면 인권 보장 체계는 근본적으로 약해져 불안정해질 뿐이고, 동물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까지 효과적인 보호 범위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것은 동물을 단지 취약하고 고통받는 개체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자 친구, 동료 시민, 그리고 인간 공동체와 동물 공동체 모두의 구성원으로 볼 수 있도록 도덕적 상상력을 확장하는 훈련이다.
동물의 기본권을 인정한다면 그러한 권리를 존중하는 동물─인간 상호 작용의 적절한 형태가 무엇인지 질문해야 한다. 인간의 동물 착취를 끝내는 것은 필요한 출발점이지만 우리는 착취적이지 않은 관계가 어떤 모습일지 알아야 한다.
--- 「2장」 중에서
시민, 주민, 외국인, 주권자와 같은 시민권 이론의 익숙한 범주에 비추어 인간─동물 관계를 생각하는 것은 특정 동물마다 우리에게 요구하는 고유한 권리와 우리가 동물에게 행하는 특정한 부정의의 유형을 모두 밝히는 데 도움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정치 공동체에서 어떤 성원권을 가져야 하는가? 구별되고 경계가 있는 정치 공동체 사이의 경계는 어떻게 결정하는가? 그러한 공동체 사이의 이동성은 어떻게 규제해야 하고, 다양한 자치 공동체 사이의 상호 작용 규칙은 어떻게 결정하는가? 지난 30년간 자유주의 정치 이론에서 매우 흥미로운 작업 중 일부는 ‘시민권 이론’이 직면하는 바로 이런 질문들을 다룬다.
우리 주장의 핵심은 동물의 경우에도 이와 비슷한 종류의 시민권 이론이 적절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인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어떤 동물은 인간 정치 공동체의 이익을 결정할 때 이익을 고려해야 하는 동료 시민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어떤 동물은 그들의 이익이 인간이 공동체 이익을 추 구하는 방식에 부수적인 제약을 가하는 일시적인 방문객 또는 비시민 주민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며, 또 다른 동물은 그들만의 정치 공동체의 거주민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주권과 영토를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야생 동물과 사육 동물이라는 단순한 이분법과 여기에 따라오는 그저 ‘내버려두라’라는 주장은 더 촘촘한 관계망과 더 정교한 도덕적 처방으로 대체될 필요가 있다.
--- 「3장」 중에서
사육 동물이 이미 존재하고, 인간과 함께 살고 있으며, 오랜 상호 작용과 상호 의존의 역사가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사실은 사육 동물의 권리에 관한 모든 합리적인 설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 「4장」 중에서
사육 동물을 시민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행위자성을 행사할 능력이 개체마다 때에 따라 다양하다는 점과 우리의 행동으로 종종 의도치 않거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둔화되거나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인식하며, 동물의 행위자성을 향상시킬 의무가 있다는 의미다.
--- 「5장」 중에서
야생 동물은 인간을 피하고 일상의 필요를 인간에게 의지하지 않지만, 여전히 인간 활동에 취약하다. 이 취약성은 인간 활동과의 지리적 근접성, 생태계 변화에 대한 종의 적응력, 생태계 변화의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
야생 동물의 주권을 인정하면 야생 동물의 영역을 침범하는 인간의 행동을 제한하고, 의도치 않게 야생 동물에게 입히는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합리적인 예방 조치를 취할 의무가 생긴다. 이를테면 선박의 항로를 재배치하고, 도로를 건설할 때 동물의 우회로를 건설하는 것과 같은 의무다. 동시에 야생 동물을 적극적으로 도울 의무는 제한한다. 우리가 야생 동물의 주권 영토를 방문하는 조건이나 주권이 겹치는 영토를 공유하는 조건을 제한하면서 동시에 야생 동물이 인간 주권 사회에 들어오는 조건도 설정한다.
--- 「6장」 중에서
사육 동물/야생 동물이라는 이분법은 우리 주변에 사는, 심지어 도시 한가운데 사는 다람쥐, 너구리, 쥐, 찌르레기, 참새, 갈매기, 매, 생쥐 등 엄청난 수의 야생 동물을 간과한다. (?) 이러한 동물 집단을 야생 동물도 사육 동물도 아닌 경계에 놓인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경계 동물이라고 부를 것이다.
경계 동물의 비가시성invisibility은 단지 무관심이나 방치에 그치지 않는다. 훨씬 더 심각하게도, 종종 경계 동물의 존재 자체가 불법이 된다.
따라서 경계 동물의 상황은 매우 역설적이다. 넓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이들은 가장 성공한 동물 종으로, 인간이 지배하는 세상 에서 생존하고 번성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법적, 도덕적 관점에서는 가장 인정받지 못하거나 보호받지 못하는 동물이다. 사육 동물과 야생 동물은 학대를 받더라도, 적어도 자기가 있는 곳에 있을 권리가 있다는 점을 마지못해 인정받는다. 하지만 경계 동물, 즉 인간 주변에 사는 야생 동물이라는 개념 자체가 많은 사람에게 불법이자 인간의 공간 개념에 위배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 「7장」 중에서
대부분의 인간은 동물과 관계를 맺으면서 동물을 이해하고 돌보게 된다. 동물을 관찰하고, 함께 어울리고, 돌보고, 사랑을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서 말이다. 동물의 운명을 가장 걱정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동물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로, 반려인이나 동료, 야생 동물 보호자, 환경 보호론자, 생태 복원가 등이 있다. 정치적 난관을 극복하려면 이러한 에너지와 동기를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이 책이 동물을 ‘그저 동물’이나 멸종 위기종의 대체 가능한 구성원, 수동적으로 고통받는 희생자 이상의 존재로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길 바란다.
--- 「8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