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고: 어이구, 나리, 그건 이렇습니다. 저는 제 이득을 챙기려 그자를 따르고 있는 겁니다. (…) 나리께서도 무릎을 구부리고 충성을 다사는 많은 작자들이 노새처럼 먹을 것만 주면 그저 비굴한 의무를 다하면서 세월을 허비하다 늙어 해고당하는 꼴을 많이 보셨겠죠. 그렇게 충직한 놈들은 회초리질을 해야 합니다. 반면에 겉으로는 충성을 다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자신만 챙기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자들은 겉으로만 주인에게 봉사하는 척하면서 그 덕에 부자가 되어 외투 주머니가 두툼해지면 스스로를 섬깁니다. 이런 자들이야말로 정신이 제대로 박힌 자들인데 제가 바로 그런 작자란 말입니다.---pp.13~14
이아고: (…) 하지만 꼭 욕정 때문만은 아니야 --물론 나라고 그런 큰 죄를 품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 어느 정도는 무어 놈에게 복수를 해주고 싶어서이지. 아무래도 음탕한 무어 놈이 내 이부자리에 뛰어들었다는 의심이 들거든. 이 생각이 독약처럼 내 오장육부를 갉아먹는 듯한데 아내를 아내로 복수함으로써 피장파장이 되지 않고서는 내 마음이 절대 만족하지 못할 것 같단 말이야. 만약 그렇게 못 한다면 적어도 무어 놈에게 분별력으로는 막을 수 없는 강한 질투심을 심어 놓을 테다.---p.63
오셀로: 이제 내가 구원받는 길은 그녀를 미워하는 것뿐이다. 오, 결혼의 저주여, 우린 이 섬세한 여인네들을 우리 것이라 할 수는 있어도, 그들의 성욕은 우리 것이 아니구나! 사랑하는 것을 한 켠에 두고 타인들이 사용하게 할 바에야 차라리 두꺼비가 되어 동굴의 수증기를 먹고 살아가련다. 허나 이는 지체 높은 자들이 걸리는 역병. 이런 운명에는 그들이 천한 자들보다 더 노출되어 있다. 이것은 죽음처럼 피할 수 없는 운명. 이 갈라진 뿔을 이마에 지니는 운명을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지니게 된다.---p.102
오셀로: (…) 눈보다 희고 묘비의 대리석보다 부드러운 그녀의 피부에 상처도 내지 않겠다. 그래도 그녀는 죽어야 한다. 안 그러면 더 많은 남자들을 배반할 테니. 이 등불을 끄고, 그다음 그녀 생명의 등불을 끄자. 그대, 타는 등불아, 내 그대를 끈다 해도 먼저처럼 불을 되살릴 수 있다. 뉘우치기만 한다면. 그러나 그대의 불길 한번 끄면, 가장 오묘하게 만들어진 훌륭한 자연의 걸작품인 그대여, 그대 생명의 불길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어디에 있는지 난 모른다. 내가 그대의 장미꽃을 따면 그것에 다시 생기를 넣어 자라게 할 수 없어 그것은 시들 수밖에 없지.---pp.168~169
이상적인 남성상에 사로잡힌 오셀로와 이상적인 아내상에 사로잡힌 데스데모나가 간교한 이아고의 계략에 빠져 빚어낸 비극 「오셀로」. 셰익스피어는 이 극을 통해 그 어떤 인물보다도 남성의 가치를 「명예」에, 여성의 가치를 「순결」에 둔 가부장적 이념을 비난하고 있는 듯하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고 번역하면서 늘 느끼는 바이지만, 이 작품에서도 그가 그린 것은 인간의 악한 성정이 아니라 나약함이다. 자신의 본성을 지탱하고자 애쓰지만 결국 무너져 내리고 마는 오셀로의 나약함이 내내 가슴 아팠다. 그래서 이번 번역에서는 인물들의 성격을 살려내는 데 초점을 두었다. 갈등과 번뇌에 시달리는 오셀로의 언어, 로도비코의 묘사처럼 「독사」 같은 이아고의 언어를 오롯이 옮겨 그들이 마치 살아 있는 인물처럼 읽힐 수 있도록 표현해 내고자 하였다. 그런 노력이 독자들의 가슴에 전달되어 4백년 전에 쓰인 이 극이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우리 이웃집의 이야기처럼 읽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