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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른

어떤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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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1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130*205*30mm
    ISBN13 9791169813419
    ISBN10 1169813410

    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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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이에게는 내가 일생의, 일상의 한 조각일 뿐이다. 퇴장한 건 찬이가 아니라 나였다. 내 아쉬움이나 애틋함과 상관없이 찬이는 독서교실이 끝나고 수학 학원에 가기 전에 잠깐이라도 놀아야 했던 것이다. 찬이의 극에서 나는 안경을 가져다주는 아주 작은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 언젠가 어린이 인생에서 나는 퇴장한 배우가 될 것이다. 언제 등장해서 무슨 역할을 했는지 기억하기 어려운 작은 역할을 받은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해 ‘독서교실 선생님’ 역할을 할 생각이다. 그 야심으로 오늘도 수업을 준비한다. 나는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쉰다.
    --- pp.34~35

    어린이에게 친구란 단순한 ‘놀이 대상’이 아니다. 경험과 지식수준이 비슷한 사람, 학교생활 같은 중대한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 사회적인 위치가 비슷한 사람이다. 친구들끼리는 비슷한 것을 알고 비슷한 것을 모른다. 자기들만 아는 순간과 농담도 있다. (…) 어떤 어린이는 친구 덕분에 가정 바깥에 숨 쉴 자리가 생기기도 한다. 어린이에게 가정은 거의 절대적인 조건이지만 모든 어린이에게 가정이 이상적인 환경일 리 없다. 어린이는 친구와 어울리면서 잠시 가족의 사정을 잊을 수도 있고 위로를 얻거나 희망을 가질 수도 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집 안의 무거운 공기를 감지하고 있는 어린이라면 친구가 얼마나 필요할 것인가. 어린이에게 친구는 삶을 구성하는 실질적인 요소다.
    --- pp.48~49

    서준이가 스케이트 대회에 나간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내심 걱정했다고 하셨다. 그 대회에 참가하는 아이들은 보통 예비 선수들이라, 취미 삼아 배우는 서준이와는 실력 차이가 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서준이는 자기도 안다면서 “그래도 괜찮아. 그 아이들은 얼마나 잘하는지, 지금 내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어”라고 했단다. 나는 그 작은 심장에 얼마나 큰 용기가 들어 있는 걸까 싶었다. 어린이도 어른처럼, 삶을 진지하게 여긴다.
    --- p.93

    세상의 어떤 부분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을 때, 변화를 위해 싸울수록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것만 같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종종 ‘미래에서 누군가가 와서 지금 잘하고 있는 거라고, 미래에는 나아진다고 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 미래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어린이다. 어린이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고, 어린이가 ‘나답게’ 살 수 있게 격려하고 보호해야 한다.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 의견을 가질 수 있게 가르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시민으로서 존중하면서 어린이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어린이는 우리 가까이에 있다. 미래가 바로 그러하듯이.
    --- p.123

    아이들에게 학교는 공평하게 배우고 이해받고 보호받는 곳이다. 입시나 진로 준비만 하는 곳이 아니라 하루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바깥의 집’이다. 누군가의 자녀, 어느 집의 몇째가 아니라 이름을 가지고 한 명의 시민으로 존재하는 곳이다. 그런 학교에서 아이들은 사적인 생활을 가꾸어나간다.
    --- pp.170~171

    언젠가 한 어린이가 책을 읽다가 장례식은 왜 3일이나 하는 거냐고 물었다. “시간을 두고 슬픔을 나누는 거야”라고 설명했더니 다시 물었다.
    “그런데 슬픔을 왜 나눠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상했어요. 슬픔을 나누면 슬픈 사람이 많아지잖아요.”
    (…) 다시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슬픔은 실제로 있어서 한번 생기면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슬픔을 둘이 나누면 두 조각이 되고, 또 나누어서 네 조각이 되고, 그렇게 작아지다가 어느 만큼이 되면 이제 가지고 있을 만해지는 것이라고.
    --- pp.217~218

    무력감이 거의 권태가 될 때, 변하지 않는 세상이 걱정스러울 때, 흔적 없이 사라진 거대한 동상과 사람들을 떠올린다.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되는 대로 살아보자. 인생은 소중하지만, 딱히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으니까. 어쩌면 없을지도 모르고. 혹시 내 삶에 의미라는 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하나로 살아가는 것 자체에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일단은 존재하는 게 내 의무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다.
    --- p.225

    왜 우셨을까? 남의 사연을 함부로 짐작하면 안 되겠지만, 오랫동안 그분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냥 시가 아름다워서 우셨을지 모른다. 최근에 개와 이별하셨거나, 다른 힘든 일을 겪고 계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눈밭에서 개와 뛰어노는 한 어린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분의 마음속에 동시 한 편으로 불러낼 수 있는 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시의 힘도 대단하지만, 동심이라는 것도 어지간히 끈질기다고 생각했다. ‘어린이의 마음’이라는 말뜻 그대로라면 동심은 결코 나약하지 않다.
    --- p.297

    이제 내 꿈은 수박 한 통을 해치우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저녁에 아파트 벤치에 앉아 산책 나온 동네 강아지들의 인사를 받는 할머니도 되고 싶다. 도서관에 ‘큰글자도서’를 제일 많이 신청하는 할머니가, 철마다 버스를 타고 패키지여행을 다니는 할머니가 되겠다. 병원에서 검사실을 잘못 찾고 의사에게 같은 질문을 세 번 하는 할머니도 되겠지. 그 걱정은 그때 가서 하자.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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