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있는지도 모를 곳에 있는 부족의 언어 하나 손실된다고 무슨 상관이냐고?
내가 우리 부족어를 하는 마지막 사람이라고 한번 상상해보자. 조상의 지혜를 물려줄 방법도 없고 후손의 앞날을 낙관할 길도 보이지 않는다. 침묵에 둘러싸인 삶, 이보다 더 고독한 삶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이 비극적인 운명을 누군가는 지구 어딘가에서 보름에 한 번꼴로 겪고 있다. 보름에 한 번 어느 부족 어른이 숨을 거둘 때, 오랜 언어의 마지막 음절도 함께 무덤에 묻힌다. 이대로라면 한두 세대 안에 인류의 지적 유산을 절반 이상 잃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지금 시대가 감추고 있는 또 다른 현실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이렇게 묻는다.
“그럼, 전 세계인이 같은 언어를 쓰면 세상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그럼 하이다족이나 요루바족 혹은 이누이트족이나 산족의 언어를 세계 공통어로 삼아볼까요?”
1강 갈색 하이에나 계절을 견딘 부시먼, 산족 / 12쪽
폴리네시아 바다를 누비는 호쿨레아호에는 놀랍게도 긴급 비상시를 대비한 라디오를 제외하면 현대적인 항법 보조도구는 선내에 한 가지도 없다. 육분의나 심도계도, GPS나 전파중계기도 없다. 오로지 두 항해가의 다양한 감각과 선원의 경험, 긍지와 권위 그리고 새롭게 태어난 부족의 힘이 있을 뿐이다. 거센 빗줄기 속에 섬을 떠나는 호쿨레아호 갑판에서 나이누아 톰슨은 말했다. “고대 폴리네시아인의 천재성을 이해하려면 폴리네시아 세계의 기본요소인 바람, 파도, 구름, 별, 해, 달, 새, 물고기 그리고 바다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바닷길잡이에게 구름은 단서가 된다. 모양, 색깔, 특징, 하늘에 떠 있는 장소까지. 갈색 구름은 강한 바람을 불러오고 상층 구름은 바람 없이 많은 비를 동반한다. 구름의 움직임은 바람의 세기와 방향, 대기의 안정성, 폭풍전선의 변동성을 드러낸다. 섬 상공에 구름이 끼거나 먼바다를 휩쓸고 지나간 구름이 만드는 여러 가지 유형을 설명하는 명명법도 있다. 빛 한 줄기도 해독이 가능하다. 별 가장자리의 무지개 빛깔과 별의 반짝임은 물론 폭풍이 임박할 때 별빛이 어떻게 흐려지고 섬 상공의 하늘 색조가 먼바다의 하늘보다 어떻게 더 어두운지도 읽어낸다. 일출과 일몰의 붉은 하늘로 대기 습도를 알 수 있다. 달무리는 습한 구름의 얼음결정 사이로 빛이 반짝이며 생기므로 비가 올 징조다. 달무리 안에 보이는 별의 개수, 바다제비나 제비갈매기 같은 바닷새, 인광이나 물에 떠다니는 식물 파편, 바닷물 염도와 맛과 수온, 황새치가 헤엄치는 모습까지 바닷길잡이의 감각 안에서 모든 것은 계시인 셈이다
2강 바다를 읽는 웨이파인더, 폴리네시안 / 61쪽
아마존에서 페루로 돌아온 카르바할은 일지를 마무리해 《교류Relacion》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놀라운 발견을 기록한 이 모험담은 발표와 동시에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그의 동료 수도사는 심지어 푸로멘티라pura mentiras, 즉 새빨간 거짓말이라 폄하했다. 여전사에 관한 믿기 힘든 이야기가 문제였다. 아마존은 젖가슴이 없다는 뜻의 ‘아-마드존a-madzon’에서 파생된 단어로, 오래전부터 전투 중에 활을 쉽게 사용하기 위해 오른편 젖가슴을 잘라냈다고 전해지는 지중해 저편 미지의 전설적인 여전사 부족을 지칭했다. 헤라클레스의 아홉 번째 과업이 ‘아마존 여왕의 허리띠를 손에 넣기’였을 만큼 신화 속 전사로서 아마존 부족의 명성은 대단했다. 그런데 야만스런 신세계 한복판에서 신화 속 여전사를 찾아냈다니 스페인인들로서는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 사실 장소만 다를 뿐, 여전사를 발견했다고 주장한 사람은 카르바할이 처음은 아니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도, 마르코 폴로도, 아메리고 베스푸치도 여자들의 섬을 이야기했고 조사했다. 여전사의 나라는 실로 모든 탐험가의 여정에서 빠지지 않는 목적지였다. 때마침 아메리카 원주민의 풍부한 상상력까지 보태져 아마존 신화는 또다시 수정을 거쳤다. 원주민은 백인에게 무엇이 되었든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를 들려주어야 함을 이미 잔혹한 경험으로 터득한 터였다. 그리하여 여전사족 설화는 새로운 행태로 생생하게 구세계의 호기심을 충족시켰고, 신화는 역사로 탈바꿈하기에 이르렀다.
3강 공존의 우주를 담은 말로카, 아나콘다 부족 / 94쪽
시에라 부족 코기족, 아르와코족, 위와족에게 사람은 문제가 아닌 해결책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형님’이라 칭하고, 그들의 산을 ‘세상의 심장’으로 여긴다. 그리고 신성한 계율에 대한 무지로 땅을 위협하는 외지인을 아우로 취급한다. 시에라네바다 데 산타마르타는 실제로 여러 가지 의미에서 세계의 축소판이라 세계의 심장으로 비유할 수 있다. 콜럼버스 이래 시에라 부족은 외지인이 위대한 어머니를 모독하고, 어머니의 살갗이자 덮개인 숲을 파괴해서 외래 작물로 대농장을 세우는 공포스런 과정을 지켜봤다. 군대의 추격을 피하고 코카 거래의 이득을 챙기려고 좌파 게릴라들과 우익 무장단체가 원주민 마을을 집어삼키는 것도 지켜봤다. 세계의 ‘형님’에게 아래로부터의 위험은 위로부터의 위협과 울림을 같이 한다. 만년설과 빙하가 무서운 속도로 줄어들면서 산의 생태가 달라지고 있다. 우리 눈에는 서로 무관한 현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세상의 ‘형님’에게 이것은 불가분의 관계이고, 세상의 종말에 앞장서는 ‘아우들’의 어리석음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다.
위와족 제사장 마모로 추앙받는 라몬 길을 이야기했다. “조상이 말씀하시길 언젠가 아우가 깨어나리라. 그러나 자연의 폭력이 그를 덮칠 때뿐이리니. 그때야 그는 깨어나리라.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싸우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사람들이 이해하기를 원한다. 우리가 여기서 잠잠히 하는 말을 부디 온 세상이 침착하게 듣기를 바란다.”
4강 땅의 신성함을 믿는 형님, 안데스 부족 / 160쪽
자연 생태계에 비유해보자. 생물종 한 가지가 멸종된다고 한들 무슨 상관이겠느냐고? 비행기를 탈 때 정비사가 비행기 날개의 리벳을 뽑아내는 장면을 봤다고 상상해보자. 당연히 정비사에게 질문을 던질 테고, 정비사는 이렇게 답한다. “상관없어요. 리벳 비용도 절약되고, 이제껏 아무 문제도 없었거든요.” 리벳 하나쯤 없어도 당장 큰 차이 없어 보이지만 결국에는 날개가 떨어질 게 뻔하다.
문화도 그렇다. 텐다이 수도승이 달리지 않는다고, 멘타와이족 아이의 미적 감각이 세속적이고 평범해진다고, 나시족 주술사가 현존하는 세계 마지막 상형문자이자 부족 고유인 둥바Dongba문자를 돌에 새기지 않고 외면한다고 하늘이 무너지기야 하겠는가? 문제는 어느 한 가지 생물종, 어느 한 가지 문화 유형이 아니다. 인류 역사상 전례 없이 밀려드는 대량 파괴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 세대가 사라지기 전에 인류의 다양한 목소리 가운데 절반이 침묵에 잠길 것이기 때문이다. 원인은 변화가 아니다. 뛰어난 과학기술을 개발하고 전파하는 동안 다른 민족은 지적으로 나태한 답보상태에 머물렀다는 생각은 서구인의 자만심이다.
5강 멸종으로 가는 마지막 전차, 21세기 /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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