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경여당을 시작했을 무렵, 호설암에게는 이미 막강한 실력자 좌종당이라는 언덕이 있었고 청조의 각급 관리들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자금력이 수천만 냥에 달했던 그를 사람들은 ‘살아 있는 재신(財神)’이라 부르며 존경했다. 따라서 그가 약국을 시작한 것은 경제적 이익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으며, 자선사업을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선한 이름은 어느새 숫자로 가늠하기 어려운 실리로 변모했다. (중략) 호설암의 사업 가운데 전장과 전당포가 대표적이었고, 약업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파산하고 사망한 후, 그 가족들이 생계를 의지했던 것은 바로 호경여당이라는 간판이었다. 호경여당이 없었다면, 호설암의 명성도 오늘날까지 이렇게 전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또한 호설암이 약국을 열고 ‘인술(仁術)’을 행한 선한 보답이라 하겠다.
-- <15장 천하를 구제하라> 중에서
호설암은 장사를 하면서 다음 원칙을 반드시 지켰다.
첫째, 어떤 돈이라도 벌 수 있지만 결코 조정이 정한 길이 아닌 ‘검은 돈’을 벌지 않았다. 둘째, 다른 사람의 덕택으로 돈을 벌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을 불리하게 하거나 이익을 탐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사람의 밥그릇을 깨는 일은 하지 않았다. 셋째, 친구의 힘을 빌어 돈을 벌 수는 있지만, 친구에게 미안해 할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넷째, 기회를 이용하여 교묘하게 돈을 벌 수 있지만, 신의를 저버리고 양심을 속이는 돈은 벌지 않았다. 다섯째, 돈을 버는 행위가 어떤 것보다 우선순위이지만, 재물을 베풀어 선을 행하며, 결코 인색한 수전노가 되지 않았다.
-- <12장 일에는 순서가 있다> 중에서
장사는 혼자 먹는 밥상이 아니다. 혼자 먹으려는 사람은 안목이 바늘귀만큼도 안 되는 소인배로 결코 큰일을 할 수 없다. 호설암은 장사가 결코 한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작은 자본을 가지고도 거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을 쓰는 일에 능했기 때문이다. 호설암은 모든 일을 과감하게 추진하며, 다른 사람들은 감히 생각하지도 못하는 일에 도전했다. 또한 치밀한 계획을 통해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큰 이윤을 창출할 줄 알았다. 일단 상황판단이 끝나면, 과감하게 행동에 옮기는 것이 그의 비결이었다. 하지만 그는 혼자서 일을 처리하지 않았다. 반드시 능력 있는 사람들을 활용했다. 호설암이 사람을 쓸 때 변함없이 지켰던 한 가지 원칙은 일을 맡긴 이상 의심하지 않는 것이었다.
-- <10장 사람에게 공을 들여라> 중에서
호설암은 장사에서 힘에 기반을 둔 경영, 시대의 변화를 따르는 경영을 매우 중시했다. 그의 장사는 열에 아홉은 힘을 취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것과 함께 발전했다. 그는 기회를 결코 놓치는 법이 없었고 끊임없이 자신의 영역을 확대하고 세력을 넓혔다.
호설암은 자신만의 장사철학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권리’였다. “권리라 하는 것은 권세와 이득을 둘로 나눌 수 없음을 말한다. 세(勢)가 있으면 곧 이(利)가 있다. 따라서 지금은 이를 구할 것이 아니라 먼저 세를 얻어야 한다”고 했다.
호설암이 취한 ‘힘’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그는 “권세의 힘, 상계의 힘, 강호의 힘이 있는데, 나는 이 모두를 원한다. 그런데 이 셋을 얻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서양의 힘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 <3장 상세를 꿰뚫어라> 중에서
호설암은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일찌감치 자신의 상단(商團)을 세우겠다는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난세의 어려움 속에서 과감하게 왕유령(王有齡)을 도와줄 수 있었다.
호설암은 자신을 위험한 지경에 빠뜨리면서까지 왕유령에게 은자 500냥을 빌려주었는데, 이것은 결코 목적 없이 한 행동이 아니었다. 왕유령의 장래를 믿었고, 그에게 주는 금전적 도움을 투자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용기도 필요하지만, 먼 앞날을 내다보는 안목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보통 사람들은 현재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호설암은 미래의 이익을 추구했던 것이다.
-- <1장 상계를 장악하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