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초가 더 지난 뒤에야 그는 방금 전에 벌어진 일들을 차례차례 재구성할 수 있고, 마침내 보도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에는 자기가 죽은 목숨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 돌은 그를 죽이려고 한 것이었다. 그날 밤 그는 다른 이유라고는 없이 그 돌에 맞으려고 아파트를 나섰던 것인데, 만일 용케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그에게 새로운 삶이 주어졌다는, 이제 예전의 삶은 끝났고 과거의 모든 순간순간은 다른 누군가에게 속해 있다는 뜻일 수밖에 없었다.
택시 한 대가 모퉁이를 돌아서 그가 서 있는 쪽으로 오고 있다. 닉이 손을 치켜든다. 택시가 멈춰 서고 그가 차에 올라탄다. '어디로 모실까요?' 운전사가 묻는다. 닉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서 머릿속으로 맨 처음 떠오르는 단어를 입 밖에 낸다. '공항으로요.' 그가 대답한다. '어느 공항으로요?' 운전사가 다시 묻는다. '케네디인가요, 라과르디아인가요, 아니면 뉴어크인가요?' 닉이 라과르디아라고 대답하자 택시가 그곳으로 향한다. 공항에 이르자 닉은 매표구로 가서 다음 비행기가 언제 이륙하는지 물어본다. '어디로 가는 비행기죠?' 매표원이 묻는다. '아무 데로나요.' 닉이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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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는 슬라이드를 하나씩 다 보고 나서 모두를 다시 보았는데, 두 번째로 볼 때쯤에는 그 사진에 찍힌 사람들 거의 모두가 이제는 죽었다는 생각이 서서히 떠올랐다더군. 아버지는 1969년에 심장 마비로 사망했고, 어머니는 1972년에 신장 질환으로 세상을 떴고, 티나는 1974년에 암으로 눈을 감았지. 또 그날 파티에 참석했던 여섯 명의 삼촌들과 숙모들 중에서도 넷이 죽어서 땅에 묻혔다는 거였어. 한 사진에는 그 친구가 앞뜰 잔디밭에서 그의 부모, 그리고 티나와 함께 서 있었다고 해. 그렇게 네 사람만 서로 팔짱을 끼고 몸을 기댄 채 웃는 얼굴들이 일렬로 카메라를 향해 우스꽝스러울 만큼 과장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리처드는 그 슬라이드를 두번째로 투사기에 넣었다가 그만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대. 그 친구 말로는 그게 자기를 무너뜨렸다고, 그건 자기로서는 감당하기에 너무 벅찬 거였다고 하더군. 자기가 세 유령과 함께 그 잔디밭에 서 있다는 것, 30년 전 그 오후로부터 살아남은 사람은 자기 혼자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지. 일단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무슨 수로도 그걸 막을 도리라고는 없었지. 그 친구는 뷰어를 내려놓고 양손에 얼굴을 묻은 채 흐느끼기 시작했대. 흐느꼈다는 게 그 친구가 나한테 그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쓴 바로 그 말이야. '저는 애간장이 끊어지도록 흐느꼈어요. 정신 못 차리게요.'라는 게 그 친구 말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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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옷을 벗고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구르기 시작했어요. 땀에 흠뻑 젖어 서로를 갈망하면서요. 정말 멋진 일이었죠. 우리는 같이 절정에 이르렀고 그 다음에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시작했어요. 두 마리 짐승처럼 서로에게 달려들면서.'
'꼭 포르노 영화처럼 들리는군.'
'정말 열광적이었어요. 우리가 얼마나 오래 계속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대목에선가 아버지가 차를 몰고 떠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하지만 우리는 상관하지 않았어요. <나중에라도 따라잡으면 되지 뭐>라고 말하고 다시 그 일을 시작했어요. 일이 끝나자 우리 둘 모두 무너져 내렸고요. 그러고 나서 나는 잠시 깜빡 졸았는데 잠에서 깨고 보니 당신이 벌거벗은 채로 문 옆에 서 있더군요. 좀 절망적인 표정으로 손잡이를 잡아당기면서요. 그래서 내가 <뭐가 잘못됐어요?> 하고 물었더니 당신이 <우리가 갇힌 것 같아> 하더군요.'
'이제껏 들어본 중에서 제일 이상한 얘기로군'
'이건 그냥 꿈일 뿐이에요, 시드. 꿈이란 건 모두 이상하고요.'
'나는 잠꼬대는 하지 않는데, 맞지?'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난 당신이 내 작업실로 들어온 적이 없다는 걸 알아. 하지만 만일 들어왔었다면, 그리고 어쩌다 내가 토요일에 산 파란 공책을 펼쳐 보았다면, 내가 쓰고 있던 이야기가 당신 꿈과 흡사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거야. 지하실 방으로 내려가는 사다리, 도서관에서 쓰는 책꽂이, 위쪽에 있는 조그만 침실, 내 주인공은 지금 그 방에 갇혀 있는데 나는 그 친구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
'이상하네요.'
'이상한 정도가 아니야. 섬뜩할 지경이지.'
'재미있는 건 거기에서 꿈이 끝났다는 거예요. 당신은 그렇게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내가 어떤 식으로든 당신을 도와줄 수 있기도 전에 잠이 깨고 말았어요. 그런데 당신이 꿈에서 그랬던 거와 똑같이 침대에서 양팔로 나를 꼭 끌어안고 있더군요. 마치 꿈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잠에서 깬 뒤에까지도.'
'그렇다면 당신은 우리가 그 방에 갇힌 뒤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르겠군.'
'거기까지는 몰라요. 하지만 우리는 빠져나갈 길을 찾아내곤 했잖아요. 당신도 알 테지만 사람들이 꿈을 꾸다 죽을리는 없잖아요. 설령 문이 잠겨 있더라도 어떤 일이 일어나 우리를 빠져나가게 해주겠죠. 일은 그런 식으로 풀리는 거예요.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한 언제나 빠져나갈 길은 있어요.'
--- pp.175~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