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달리가 꾸준히 써온 일기가 출간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처음부터 달리는 이 일기를 『내 인생의 비밀』의 후속 작품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제목을 『내 인생의 또 다른 비밀』로 하려고 했지만 조금 더 정확한 제목을 찾다가 결국 『어느 천재의 일기』로 결정을 내렸다. 사실 『어느 천재의 일기』는 그가 학생용 노트에 써 내려간 새로운 고백-『내 인생의 비밀』에 이어지는-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표현이기도 하다. 달리는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로 호방하고 쾌활한 필체로 자신의 모든 생각과 사유를 이 일기에 쏟아 부었다. 완전성을 갈구하는 화가의 고뇌와 갈등, 갈라에 대한 사랑, 특별한 만남, 자신의 미학?도덕?철학?생물학적 사유, 그리고 초현실주의 운동에서 얻은 경험 등, 자신의 삶과 관련된 이 모든 것을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매우 침착하고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화가로서는 겸손했던 달리. 하지만 그보다 먼저 달리는 스페인 사람이자 까딸루냐 사람이었기에 자신의 생각과 신념에 대해서는 결코 겸손할 수 없었다. 앙드레 브르통의 도그마를 무조건적으로 따르기엔 너무나도 자유로웠고, 너무나도 자유를 사랑했던 달리.
어린 시절부터 달리는 자신의 천재성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다. 달리가 태어나자 아버지는 그에게 ‘살바도르 Salvador’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거만하게도 그는 자기 스스로를 ‘살바도르’, 즉 ‘구원자’라고 여겼다. 화가로서 달리는 당시의 추상 미술, 아카데미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주의들’ 때문에 죽어가고 있던 미술을 구해낼 수 있는 ‘구원자’가 되길 바랐다. 따라서 이 일기는 살바도르 달리가 자신의 모든 영광과 명예에 바치는 기념비인 것이다. 또한 이 일기를 통해서 달리는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 인사로서의 자기 모습 뒤에 숨겨져 있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 즉 뜨거운 열정으로 자유를 추구하는 한 천재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달리의 일기에는 겸손함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달리의 거만한 태도 속엔 늘 진지함이 짙게 배어 있다. 예를 들어, 그는 기상천외하게, 그리고 특유의 유머 감각과 재치로 자기의 비밀을 풀어 놓는다. 그뿐 아니라 근엄하기 이를 데 없던 당시의 철학 사상도 기상천외하고 유쾌한 달리의 상상력을 거치고 나면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몰골로 남기 마련이었다.
『내 인생의 비밀』처럼, 『어느 천재의 일기』 또한 고결한 전통적 가치, 가톨릭 사상, 군주제에 대한 찬사이다. 그러면 이 글은 무지한 대중들에 대한 멸시인가? 만일 그렇다면 이 글은 도대체 무슨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인가? 오만함 속에 배어 있는 진지함인가, 아니면 진지하지 못한 태도 속에 숨어 있는 거만함인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때, 달리는 평소 평론가들을 속일 때와 같은 방법을 이용해서 전기 작가들의 방해를 차단했다. 사실, 자신의 삶을 가장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자는 바로 그가 아닌가? 이는 그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그만의 권리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이 서문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탁월한 재능과 번득이는 재치, 그리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뿜어져 나오는 그의 글을 보고 있노라면 맥이 빠질 지경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가 쏟아 내는 센세이셔널한 주장과 기상천외한 행동-물론 이것도 전혀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을 보고 달리를 이해했다고 믿는다. 그뿐인가. 기자들은 달리가 자기들을 조롱하기 위해 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고 열심히 받아 적는다. 더욱이 이 일기를 보면서 놀라웠던 점은 달리의 풍부한 지혜와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이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달리에게서 제일 좋아하는 면은 그의 현명함, 다시 말해서 그의 ‘뿌리’와 ‘촉수觸手’이다. 피게라스에 사는 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동안을 까딸루냐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던 그가 그토록 강한 개성과 자기 세계를 지닐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현명함 덕분이었으리라. 달리의 ‘뿌리’는 지난 40세기 동안 인간이 성취해 온 모든 ‘풍부한’(달리가 자주 쓰는 표현) 예술적 성과를 찾아 땅 속 깊숙이 파내려 간다. 반면, 달리의 ‘촉수’는 언제나 미래를 향하고 있다. 언젠가 달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과감하게 자기 시대를 넘어서려는 야망이 없다면, 그리고 (기존의) 예술 위에 (새로운) 예술을 쌓아 올리려는 의지가 없다면,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다. 물론 (우리 인간들이 살아온) 과거가 없었다면 이토록 훌륭한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할 수도 없었으리라는 점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이처럼 과거의 예술적 전통을 중시하고, 특히 라파엘로와 벨라스케스를 존경해 마지않던 달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20세기 과학의 발견과 발명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가졌으며 이를 자신의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달리는 도래할 ‘새로운 과학’을 예견한 ‘예술가’였다. 다시 말해서 ‘비합리적’인 예술적 직관을 통해 과학의 ‘합리적’인 발전을 인지한‘예언자’였다.
마지막으로 『어느 천재의 일기』는 진정한 문학 작품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달리는 이미지를 포착하고 표현하는데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빠르고 시원시원하게 판단하는 뛰어난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달리의 글쓰기는 그의 그림에서 나타나고 있는 빛나는 색깔과 바로크주의, 그리고 르네상스적 특성들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달리의 『일기』는 혁명적인 화가에 관한, 그리고 경이로움과 깨달음으로 가득한 세계에 관한 중요한 기록이다. 진정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풍부한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그리고 정신과의사들- 누구나 ‘어느 천재 예술가의 일기’를 읽기 바란다. 단 뜨거운 열정을 품고 말이다. 이런 말을 남긴 그 사람의 삶과 정열을…: “광인狂人과 나의 유일한 차이점은 난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셀 데옹(Michel Deon)
프랑스 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