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남은 마을 사람들은 이제 임시 대피소에서 나와 정처 없이 마을의 거리를 방황했다. 사람들은 여기가 마을의 어디쯤인지를 어림 짐작해야 했고 어떤 사람들은 한때 교회가 서 있던 자리에서 기도를 올렸고, 어떤 사람들은 막대기를 가지고 한때 자신의 집이었던 곳의 폐허더미를 뒤적거렸다. 말, 소, 염소의 시체들이 장터에 널브러져 있었고 어떤 것들은 너무 불타서 형체를 알아보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사람의 시체와 조각난 신체의 부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1937년 4월 당시 벽돌공이었던 빌바오는 이렇게 회상했다. ‘정말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습니다. 시체들이 폭발의 충격 때문에 지붕의 기둥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두꺼운 가죽 옷을 입은 사람이 벽에 석고처럼 찰싹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정말 내장이 뒤집힐 정도로 역겨운 광경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해봐야 직접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그 광경을 직접 본다고 해도 믿지 못할 것입니다.’
- 1장 스페인 사람들의 죽음 中에서
작전 수행 방법이나 파괴의 규모 그리고 목표물의 선정 등에 있어서 게르니카 공습은 군사상軍史上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게르니카는 군사적 목적의 작전이 아니었다. 마을 외곽에 있는 군수 물자 생산 공장은 건드리지 않았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군 막사도 공격하지 않았다. 게르니카 마을은 최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공습의 목적은 민간인의 사기를 꺾어놓고 바스크 민족의 요람을 파괴하려는 것이었다.
- 2장 투우장의 추억 中에서
하지만 이 그림의 진실을 꿰뚫어 본 사람은 저명한 석판화가이며 초현실주의 시인인 미셸 레리스Michel Leiris였다. 그는 그림 속의 충격적이고 끔직한 이미지들이 과거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미래의 다큐멘트(기록문서)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저 오래된 비극을 묘사하는 흑백 캔버스 위에서 피카소는 인간의 암울한 운명을 알리는 편지를 쓴다. 그 운명은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곧 사라질 것이라고 예고한다. 우리는 그 운명에 맞서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여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모두 모아 영원의 아름다움을 창조해야 한다. 마치 숭고한 작별을 준비하는 심정으로……’ 이것은 정말 오싹한 예언이 아닐 수 없다. 레리스가 이 글을 쓴 것은 나치가 폴란드를 침공하고 베네룩스 국가들과 프랑스를 공격하여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이태 전의 시점이었는데, 정말 예리한 판단이라 할 수 있다.
- 4장 스페인을 구하라! 中에서
당신은 예술가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화가라면 눈만으로, 음악가라면 귀로, 시인이라면 마음의 모든 방의 운율로, 권투선수라면 근육으로만, 뭐 이런 것들을 가지고 벌어먹는 멍청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예술가라면 마땅히 정치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가 속한 세상에서 벌어지는 가슴 아픈 일, 정열적인 일, 기쁘고 즐거운 일을 늘 의식하면서 그런 일들의 이미지에 따라 자신을 형성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일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니 그게 될 법이나 한 말입니까?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가져다 준 저 풍성한 생활로부터 초연히 이탈하여 구름 위의 존재처럼 노닐 수 있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림은 그런 게 아닙니다. 아파트의 거실을 장식하기 위한 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 그림은 투쟁의 수단입니다.
- 6장 피난 中에서
<게르니카>가 현관 안으로 사라지자--탄생한지 44년 만에 처음으로 귀국한 것이었다--구경꾼들과 기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 그 다음 날 전국지인 「엘 파이스」는 ‘전쟁이 끝났다’라는 헤드라인을 뽑고 <게르니카>가 현대미술관에서 마드리드의 새로운 집으로 무사히 귀국한 것을 1면 기사로 소개했는데 그 문장은 아주 중요한 상징적 진실을 품고 있었다. 스페인 내전의 총성이 멎은 지 42년,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끔찍한 독재가 계속되던 동안 이 그림의 스페인 귀환처럼 완벽하게 내전의 종식을 알려주는 것은 없었다. 이 그림은 누구나 만족스럽게 이제야 내전이 진정으로 종식되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 그림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이미지들은 이제 완벽한 평화의 상징으로 바뀌었다.
- 8장 게르니카의 <게르니카> 中에서
게르니카가 잿더미가 된 지 60년이 돼가는 1997년 3월 27에, 독일 대통령 로만 헤어조크는 게르니카의 관리들에게 잘못을 인정하는 편지를 제출했다. ‘게르니카는 공중 폭격이라는 변명의 여지없는 행동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이 끔찍한 참사의 희생자는 인류를 대신하여 고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독일 비행사의 폭격과 그에 따른 참사를 비난합니다. 이제 우리는 화해를 청하며 두 국민들 사이에 평화가 깃들기를 희망합니다.’ 1년 뒤 독일 의회도 ‘마을의 파괴에 콘도르 여단 소속의 독일 조종사가 개입했다’고 시인했다. 그 직후 독일 정부와 게르니카 관리들은 게르니카에 대규모 호화 스포츠센터를 건립하기로 합의했고 그 비용은 ‘평화의 제스처’로써 독일 정부에서 내놓았다.
- 에필로그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