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충 바오로 복자를 그리며
2014년 8월, 우리 한국 교회는 기쁜 선물을 받았습니다.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 복자품에 오르시는 것입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한국을 방문하셔서 직접 시복식을 집전하십니다. 이번에 복자가 되시는 124위 순교자들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는 그 믿음을 목숨으로 고백하신 분들입니다. 처음에 이분들 중 몇 분이 중국에까지 가서 복음을 듣고 교리책을 구해 와 함께 연구하였고, 꿈에 그리던 세상을 ‘하느님의 말씀’에서 발견하는 기쁨에 넘쳤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가족, 친척, 친구들에게 그 복음을 전하고, 로마 교황청에 편지를 보내 신부님들을 보내 주도록 요청하였습니다.
이렇게 그분들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며 외국까지 가서 스스로 복음을 들여오고, 그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첫 선교 신부님이 도착하였을 때에는 우리나라에 이미 4천 명이 넘는 신자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세계 선교의 역사에서 거의 유일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크게 놀라곤 하지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된 존재로서, 똑같은 존엄성을 지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 사이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천주교회의 가르침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급속히 불어났습니다. 그런데 당시엔 양반과 상민 등 신분 질서가 분명했기 때문에 정치·사회 지도층에게는 교회가 가르치는 평등사상이 대단히 위험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한국 천주교회는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해지던 시기부터 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찾고 있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을 알게 된 신자 중 많은 분은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믿음을 지키고자 기꺼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용감한 순교자 윤지충 복자》는 우리나라의 순교자 중에서도 제일 먼저 목숨을 바치신, 윤지충 복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가톨릭출판사에서는 시복식을 기해, 124위 순교 복자들의 정신과 삶을 우리 어린이들에게 알려 주려고 이 책을 펴냈습니다. 지금까지 이분들을 한꺼번에 묶어서 소개한 책은 있었지만, 한 분만을 따로 자세히 알려 주는 책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더욱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그동안 여러 성인들의 삶을 만화로 소개해 왔던 이현주 선생님이 특별히 심혈을 기울여 윤지충 복자를 만화로 그려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윤지충 복자의 아름다운 삶이 우리 앞에 생생하게 되살아났습니다. 이 책 속에는 그분이 어떻게 복음을 듣게 되었고 어떤 태도로 믿음을 실천했는지, 또 그분의 삶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을 주었는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나라 첫 순교자 윤지충 복자를 잘 알게 될 뿐 아니라, 그 당시 한국 천주교 신자들의 일상까지도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윤지충 바오로 복자는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살아서건 죽어서건 가장 높으신 아버지를 배반하면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 이런 말을 들으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마태 23,9) 예수님의 이 말씀이 윤지충 복자의 뼛속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죽음을 앞두고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여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요한 16,28)
우리가 죽음을 기억하고 산다면, 그리고 죽음 앞에서 이렇게 당당할 수 있으면, 우리는 누구나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스마트폰을 발명한 스티브 잡스는 철이 든 이후, 단 하루도 죽음을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할 때면, 자신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만약 오늘 내가 죽는다면, 내가 오늘 하려고 계획했던 일을 그대로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일을 할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한 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게 되었답니다. 이처럼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믿음을 위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삶은 하느님께서 주신 가장 큰 은총일 것입니다.
이병호 (천주교 전주교구 교구장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