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나는 어느덧 친구가 되었다. 어린 시절 원했던 흥미진진한 우정이 아니라, 매일 칼로라마 로드에 있는 내 아파트로 돌아가는 쾌감, 온화한 휴전 상태랄까. 오렌지 껍질을 벗겨 부엌 작업대에서 식탁으로 가져간다든지 할 때처럼, 나는 이따금 그 오렌지 빛처럼 환하고 짜릿한 만족감을 느낄 때가 있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이것을 이루어냈다. 아이들은 보통 작은 것들을 즐긴다고들 하지만, 어린 시절에 나는 큰 것만을 꿈꾸다가 한 가지 관심사에서 다른 관심사로 그 꿈이 좁아졌고, 어느덧 모든 꿈이 생물학과 화학, 의대에 진학하겠다는 목표로 집약되더니 결국 생명의 극소분야, 신경과 나선형, 회전하는 원자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림을 잘 그리게 된 것도 산이나 사람, 과일그릇처럼 거시적인 대상이 아니라 생물학 실험시간에 아주 작은 형태와 음영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 본문 중에서
로버트 올리버는 무엇 때문에 이 장면에 뛰어들려고 칼을 뽑았을까? 성을 혐오하는 착란증이나 자기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부정하려는 광기를 앓고 있는 것일까? 즉각 붙잡히지 않았다면 이 회화 속의 인물들을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뜨릴 수 있었던 그의 행동은, 혹시 백조에게 밀려 무력하게 넘어진 이 여인을 보호하려는 것이었을까? 비틀린, 망상장애적인 의협심? 단순히 이 작품의 에로티시즘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이 작품을 에로틱한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작품 앞에 오래 서 있을수록, 점점 더 이것은 권력과 폭력에 관한 그림처럼 보였다. 레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녀를 만지거나 더럽히고 싶은 생각보다 다시 여인에게 날아들기 전에 깃털로 덮인 백조의 육중한 가슴을 밀어내고 싶다는 욕구가 일었다. 로버트 올리버가 주머니에서 칼을 꺼낼 때 느낀 것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여인을 화폭에서 해방시키고 싶었던 것일까? --- 본문 중에서
로버트와 나는 뉴욕에서 거의 5년 동안 살았다. 아직도 그 시간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발생했던 모든 일들은 우주 어딘가에 저장될 가능성이 높다는, 개인의 역사―모든 역사겠지―는 일종의 주머니에, 시공의 블랙홀에 접혀 보관된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 5년이라는 시간이 어딘가에 살아남아 있기를. 마지막이 너무나 끔찍했기 때문에 함께 지냈던 시간들 대부분을 모두 저장하고 싶은 건지는 나 자신도 알 수 없지만, 뉴욕에서의 그 시간들만은… 살아 있었으면. 돌이켜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간 시절이지만, 뉴욕에서 함께 지낼 때는 앞으로의 생활도 항상 이렇게 흘러가다가 어른의 인생과 비슷한 것으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갖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로버트가 안정된 직업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기 전이었다. 매일매일이 만족스럽고, 흥미진진하거나 흥미진진할 가능성이 있던 시절. --- 본문 중에서
편지는 그녀의 이름 대신 애칭을 부르고 있다. 상대는 자신의 하루에 대해서, 자신의 새 그림에 대해서, 벽난로 옆의 책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녀는 행간에서 그가 뭔가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녀는 장갑을 낀 젖은 손가락이 잉크에 닿지 않도록 조심한다. 이미 편지는 단어 하나까지 모조리 외웠지만, 그녀는 검은 곡선으로 적어 나간 편지의 증거를, 항상 태평한 필체, 간결한 선을 다시 확인하고 싶다. 그의 스케치에도 필체와 똑같은 무심한 직접성, 그녀의 강렬함과는 다른 자신감이 있었다―매혹적이었고, 수수께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의 언어 역시 자신감이 있었지만, 표면적인 뜻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펜 끝으로 어루만지듯 살짝 스친 악상 테귀(e), 한쪽으로 경고하듯 기울어진 악상 그라브(e). 그는 자신 있게, 하지만 사과하듯 자신에 대해 쓰고 있었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듯 소중한 문장을 시작하는 근육질의 대문자 J, 재빠르고 차분한 e. 그는 그녀에 대해, 그녀 덕분에 새로워진 생활에 대해―우연일까? 그는 자문했다―적었고, 지난 몇 통의 편지에서처럼 그녀의 허락하에 그녀를 ‘너’라고 불렀다. 문장을 시작하는 정중한 ‘tu', 작은 불꽃을 손으로 감싸듯 부드러운 u. --- 본문 중에서
그는 스케치북을 꺼내더니 인형의 형태를 부위별로 구성하는 법을 소리 없이 보여 주었다. 달걀형 머리, 드레스 밑의 관절이 달린 팔과 다리, 꼿꼿하게 세운 상체. 그는 우리가 인형을 정면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무릎을 잘 관찰해서 짧게 표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치마에 가려져 있지만 무릎은 그 자리에 있다. 드레스 밑의 무릎 앞쪽을 표현하는 법을 찾아야 한다. 이 문제는 옷자락 표현법으로 이어지는데, 이번 학기에 그것까지 배울 수는 없다, 아주 깊이 들어가야 하는 문제다. 그러나 이 연습을 해 보면 천 아래 가려진 팔다리를, 옷으로 감싼 단단한 몸의 존재감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화가가 조금쯤은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다, 로버트는 말했다. _본문 중에서
올가을에 여든아홉이면서도 아직 정정한 아버지가 내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아버지의 존재감과 다가올 상실감이 동시에 엄습했다. 아버지가 자동차 열쇠와 지갑으로 바지 주머니가 불룩한 단정한 옷을 입고 윤기 나는 구두를 신고 나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니, 늘 그렇듯 아버지의 실재와 언젠가 그 자리를 대신할 가벼운 공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묘한 생각이지만, 때로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는 내게 완전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종말에 다가가는 사람을 사랑하는 긴장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