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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아베를 쏘다

안중근, 아베를 쏘다

: 김정현 장편소설

리뷰 총점8.9 리뷰 2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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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8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504g | 140*210*26mm
ISBN13 9788970638225
ISBN10 897063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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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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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기함을 해 돌아보니 흰색 한복에 흰색 솜두루마기를 덧입은, 카이젤 수염이 눈에 띄는 사내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누, 누구야!”
일부러 더욱 고함소리를 높인 것은 문밖의 경호원에게 들리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사내는 태연히 웃으며 양손을 펴 보였다. 무기를 들지 않았으니 위해를 가하려는 뜻은 아닌 듯싶었다.
“당신, 누구요?”
“난 대한국인 안중근이다.”
“안중근?”
분명 많이, 귀가 닳도록 들은 이름인 것 같은데 선뜻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10월 26일 오전 9시 정각, 특별열차 허시에 731호가 하얼빈 역 1번 플랫폼에 멈춰 섰다.
객차 문이 열리자 비서관으로 보이는 사람을 선두로 10여 명의 경호관이 먼저 내려 객차 출구를 에워쌌다. 뒤이어 175센티미터의 신장에 원래 머리가 그런 것인지 헤어스타일 탓인지 좌우 이마 폭이 좁고, 양 볼과 눈두덩이 살이 두툼해 늘어질 것 같은 안배가 조금 피로한 얼굴로 열차에서 내렸다. 그는 곧바로 경호원을 따라 승용차로 걸음을 옮겼고, 그 뒤 역시 열차에서 내린 경호원들이 질서정연하게 그를 둘러싸 안배를 향한 틈은 보이지 않았다.
안중근이 ‘거사는 글렀구나.’ 하고 낙담하는 찰나 힐끔 고개를 돌린 안배와 눈길이 마주쳤다.
안배는 순간, 안중근이라는 이름 세 글자와 1909년 오늘 이 시간 하얼빈 역에서 벌어졌던 사건이 한꺼번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또한 지난밤의 대화도 초고속 필름처럼 돌아갔는데, 죽는 순간이 되면 일말의 반성은 하게 될 것이라던 안중근의 마지막 말이 다시금 섬뜩하고 생생했다. 그 모든 것은 멈칫하는 순간의 일이었고, 반성이 아니라 비웃음을 지은 것도 그 순간이었다.

권총을 뽑아드는 순간과 틈을 비집고 나와 달음박질치려는 순간의 기막힌 접점. 안중근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천지를 가르는 듯한 총성과 함께 안배는 아랫배를 움켜쥔 그대로 플랫폼 바닥에 꼬꾸라졌다. 하얗게 질린 얼굴의 경호원들은 뒤늦게 쓰러진 안배의 몸뚱이 위로 몸을 던져 후속 사격에 대비한 육탄 경호에 들어갔지만, 이미 안중근은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빼고 번쩍 두 손을 치켜들어 만세 삼창을 외치고 있었다.
“대한민국 만세! 동양 평화 만세! 세계 평화 만세!”

도열해 있던 일본인 군중은 저마다 손에 든 일장기를 흔들며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이등은 그들을 향해 모자를 벗어 가볍게 흔들며 답례를 표했다. 얼굴 가득한 그의 미소에는 의도된 위엄과 거만한 기색이 뒤섞여 있었다. 안중근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어찌 세상 일이 이같이 공평하지 못한가! 슬프다! 이웃 나라를 강제로 빼앗고 사람의 목숨을 참혹하게 해치는 자는 이같이 날뛰고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데, 어질고 약한 이는 죄 없이 그처럼 곤경에 빠져야 하다니!’
안중근은 더는 망설일 것도 없이 의자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뚜벅, 뚜벅……. (중략)
일본인 환영 군중 무리의 왼쪽 끝 부분, 러시아 의장대 뒤편에서 기다리고 있던 안중근은 이등과의 거리가 10여 보쯤 되자 품 안에서 브라우닝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탕!
차가운 공기, 달아오르는 환영의 열기를 깨트리며 울려 퍼진 네 발의 총성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폭죽 소리로 들었다. 그러나 이내 이등이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의지할 것을 찾아 두 손을 허우적거렸다.
탕! 탕! 탕! 다시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등의 뒤를 따르던 천 상, 전중, 삼태의 몸뚱이가 휘청거리며 앞으로 숙여졌다.
비명과 아우성에 놀란 러시아 의장병들은 일제히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대열이 사라진 그곳에 오직 한 사람만이 상체를 약간 앞으로 굽혀 사격 자세를 취한 그대로 우뚝 서 있었다. 내뻗은 오른 손에 들린 브라우닝 총구에서는 아직도 하얀 화약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일말의 두려움도, 물러서려는 기미도 보이지 않는 당당 한 그의 모습은 한순간 엄청난 거인처럼 보였다.

“그대가 발사한 결과 이토 공작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는가.”
“전혀 모른다. 또 그 결과는 아무에게서도 듣지 못하였다.”
“그대가 이토 공의 목숨을 잃게 한다면 그대 자신은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가.”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한 적이 없다. 이등의 목숨을 빼앗으면 법정에 끌려 나갈 테니, 그때 이등의 죄악을 하나하나 진술하고 나 자신은 관헌에게 일임할 생각이었다.”
일단 신문을 마치며 구연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피의자 신문의 가장 큰 목적은 자백으로 범죄 사실을 소명하는 것이고, 대부분의 피의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감추려 하는 것이 상례인데, 안중근은 범죄 사실에 대해 감춤도 망설임도 없이 담담히 답변할 뿐이었다.

“그대의 진술하는 바를 들으니 참으로 동양의 의사(義士)라 하겠다. 그대는 의사이니 결코 사형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조심스러운 그의 말에 안중근은 의연히 대답했다.
“내가 죽고 사는 것은 논할 것이 없다. 다만 내 뜻을 속히 일본 왕에게 아뢰어라. 그래서 이등의 옳지 못한 정략을 속히 고쳐, 동양의 위급한 대세를 바로잡기를 간절히 바란다.”
구연은 또 가슴이 서늘해져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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