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포도밭 사이에서만 잘 자라는 노란 복숭아 나무가 있다. 복숭아를 깨물면 껍질의 부드러운 감촉이 혀에서 사타구니로 전해지기도 한다. 한때는, 공룡이 놀던 곳이다. 그런데 다른 표면이 그 위를 덮은 것이다. 트럼펫을 불던 때의 벨보처럼, 나도 복숭아를 깨무는 순간에 <하느님의 왕국>을 이해하고 그것과 일체가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공룡과 복숭아사이의 간극을 설명하기 위해 무수한 사람들이 해온 짓이기도 하다. 나는 이해했다. 더이상 이해할 것이 없다는 확신이 섰으니 나는 평화로워야 마땅하다. 승리에 도취되어야 옳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있고 <그들>은, 내가 저희들이 목마르게 찾고 있는 어떤 열쇠를 가지고 잇는 줄 알고 나를 뒤쫓고 있다. 내가 만일 저들에게, <지도>같은 것은 없다고 하면 할수록, <지도>를 손에 넣고 싶다는 저들의 욕망은 그만큼 더 뜨거워진다. 벨보가 옳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어리석을 수 있는가. 나를 죽이고 싶어? 그럼, 죽여. 죽여도 <지도>같은 것은 없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네놈들 손으로는 못 찾아? 찾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지.
--- pp.1184-1185
나는, 안경을 쓴 청년과 유감스럽게도 안경을 쓰지 않은 처녀가 나누는 무신경한 이야기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푸코의 진자라고 하는 것이야. 첫 실험은 1851년 지하실에서 있었고, 그 다음에는 옵세르바뚜아에서 선보였다가 빵떼옹의 궁륭 천장 밑에서 다시 공개되었지. 당시 실험에는 길이 67미터자리 철선과 무게 28킬로그램짜리 구체가 쓰였대. 그러다 1855년부터는 축소형으로 제작해서 이렇게 늑재 한가운데 구멍을 뚫고 거기에 매달아 놓은 거라.」
청년의 말이었다.
「이게 어쨌다는 거야? 그저 매달아 둔 거야?」
「지구가 자전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거지. 지점은 움직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왜 안 움직여?」
「응, 저 점...... 중심점 말이야, 그러니까 저기 보이는 저 중심에 있는 점이 바로...... 기하학적인 점이라는 건데 보이지는 않을 거야. 기하학적인 점에는 용적이 없으니까. 용적이 없는 것은 좌우로든 상하로든 움직이지 못해. 따라서 지구와 함께 돌지 않는 것지. 알아듣겠어? 자체가 공전할 수도 없어. <자체>라는 게 아예 없으니까.」
「지구는 돌잖아?」
「지구는 돌지. 그러나 저 점은 안 돌아. 묘한 거지. 내 말 믿어도 돼.」
「그거야 진자의 사정일 테지.」
--- pp.20-21
'36명의 기사들이 여섯 군데에 있으니까 도합 216이 되는 셈입니다. 이 수를 구성하는 숫자의 합은 <9>가 되는군요. 성당 기사단이래 6세기가 흘렀지요? 216 곱하기 6...1296이 됩니다. 1296이라는 수를 구성하는 숫자의 합은 18, 혹은 3 곱하기 6, 혹은 666이 되는군요.' 벨보가, 장난이 심한 아들을 흘기는 듯한 어머니의 눈을 하지 않았더라면 디오탈레비는 전세계를 숫자 놀이로 재구(再構)했을 터였다. 그러나 대령은 그 말을 듣고는 디오탈레비야 말로 머리가 깬 사람으로 본 모양이었다.
--- p.266-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