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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케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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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berto Eco,움베르트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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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포도밭 사이에서만 잘 자라는 노란 복숭아 나무가 있다. 복숭아를 깨물면 껍질의 부드러운 감촉이 혀에서 사타구니로 전해지기도 한다. 한때는, 공룡이 놀던 곳이다. 그런데 다른 표면이 그 위를 덮은 것이다. 트럼펫을 불던 때의 벨보처럼, 나도 복숭아를 깨무는 순간에 <하느님의 왕국>을 이해하고 그것과 일체가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공룡과 복숭아사이의 간극을 설명하기 위해 무수한 사람들이 해온 짓이기도 하다. 나는 이해했다. 더이상 이해할 것이 없다는 확신이 섰으니 나는 평화로워야 마땅하다. 승리에 도취되어야 옳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있고 <그들>은, 내가 저희들이 목마르게 찾고 있는 어떤 열쇠를 가지고 잇는 줄 알고 나를 뒤쫓고 있다. 내가 만일 저들에게, <지도>같은 것은 없다고 하면 할수록, <지도>를 손에 넣고 싶다는 저들의 욕망은 그만큼 더 뜨거워진다. 벨보가 옳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어리석을 수 있는가. 나를 죽이고 싶어? 그럼, 죽여. 죽여도 <지도>같은 것은 없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네놈들 손으로는 못 찾아? 찾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지.
--- pp.1184-11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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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경을 쓴 청년과 유감스럽게도 안경을 쓰지 않은 처녀가 나누는 무신경한 이야기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푸코의 진자라고 하는 것이야. 첫 실험은 1851년 지하실에서 있었고, 그 다음에는 옵세르바뚜아에서 선보였다가 빵떼옹의 궁륭 천장 밑에서 다시 공개되었지. 당시 실험에는 길이 67미터자리 철선과 무게 28킬로그램짜리 구체가 쓰였대. 그러다 1855년부터는 축소형으로 제작해서 이렇게 늑재 한가운데 구멍을 뚫고 거기에 매달아 놓은 거라.」 청년의 말이었다. 「이게 어쨌다는 거야? 그저 매달아 둔 거야?」 「지구가 자전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거지. 지점은 움직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왜 안 움직여?」 「응, 저 점...... 중심점 말이야, 그러니까 저기 보이는 저 중심에 있는 점이 바로...... 기하학적인 점이라는 건데 보이지는 않을 거야. 기하학적인 점에는 용적이 없으니까. 용적이 없는 것은 좌우로든 상하로든 움직이지 못해. 따라서 지구와 함께 돌지 않는 것지. 알아듣겠어? 자체가 공전할 수도 없어. <자체>라는 게 아예 없으니까.」 「지구는 돌잖아?」 「지구는 돌지. 그러나 저 점은 안 돌아. 묘한 거지. 내 말 믿어도 돼.」 「그거야 진자의 사정일 테지.」 --- pp.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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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명의 기사들이 여섯 군데에 있으니까 도합 216이 되는 셈입니다. 이 수를 구성하는 숫자의 합은 <9>가 되는군요. 성당 기사단이래 6세기가 흘렀지요? 216 곱하기 6...1296이 됩니다. 1296이라는 수를 구성하는 숫자의 합은 18, 혹은 3 곱하기 6, 혹은 666이 되는군요.' 벨보가, 장난이 심한 아들을 흘기는 듯한 어머니의 눈을 하지 않았더라면 디오탈레비는 전세계를 숫자 놀이로 재구(再構)했을 터였다. 그러나 대령은 그 말을 듣고는 디오탈레비야 말로 머리가 깬 사람으로 본 모양이었다.
--- p.266-2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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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던 움베르토 에코의 두 번째 소설 『푸코의 추』가 『푸코의 진자』로 이름을 바꾸며 새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은 초판본의 오류와 잘못된 번역을 바로잡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4백여 개의 각주를 새로이 첨부하였다.
이번 개역판은 몇몇 오자나 오역을 수정한 것이 아니다. 지난 1992년 개역 출간된 『장미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푸코의 진자』라는 소설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첫번째 번역이라는 생각으로 역자 이윤기 씨가 심혈을 기울인 또 다른 <작품>이다. 새 번역판에서는 확실하지 않았던 인명이나 지명, 저서들, 사건, 인용된 신화들에 대해 철저히 고증했다. 특히 4백여 개에 달하는 역자의 각주를 첨부함으로 에코답다는 탄식 아닌 탄식을 불러일으킨 『푸코의 진자』를 좀 더 편안하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초판에서 <추>라고 번역했던 Pendulum을 단순히 고정점에 매달려 흔들리는 <추>가 아니라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운동하는 <진자>라고 옮김으로써 지구의 자전을 비롯한 지구의 모든 신비를 상징하려던 에코의 의도를 더 강조하였다. 이 소설의 작가 에코는 현재 볼로냐 대학의 교수이며 세계적인 기호학자, 역사학자, 철학자, 미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푸코의 진자』는 『장미의 이름』에 이은 에코의 두 번째 소설로 작자의 해박한 지식과 서양의 각종 비교(秘敎) 집단의 생생한 묘사가 돋보이는 지적 소설이다. 이탈리아에서 1988년 첫 출간된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독자들의 뜨거운 찬사와, 신성 모독이며 냉소적이라는 교황청의 비난을 한몸에 받은 현대의 고전이다. 또한 미국에서도 발간 6주 만에 30여만 부가 팔렸으며 권위 있는 서평지인 뉴욕 타임즈 북리뷰가 80년대를 마감하는 특집호에서 이 작품을 <89년 최고의 책>가운데 하나로 선정한 사실은 이 소설의 뛰어난 작품성을 대변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푸코의 진자>란 19세기 과학자 장 베르나르 레옹 푸코가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기 위해 고안해 낸 장치로, 현재 파리의 한 과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에코는 <우리 시대의 문명이 갖고 있는 본질을 캐려는 진지한 관심이 『푸코의 진자』를 쓰게 된 동기였다>고 밝히고 있다. 때로 그의 작품의 난해성이 독자들로부터 불평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독특한 <에코적> 서술은 독자들에게 다채롭고 흥미진진한 지적 체험을 가능케 한다. 또한 중세 이래 번성해 온 유럽의 비교(秘敎)에 관한 완벽한 안내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작가로서 에코의 집념은 영원히 살아남을 또하나의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