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의 꿈과 우리의 꿈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이천육백여년 전 싯다르타의 바람과 오늘 우리의 바람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 싯다르타 그 친구도 사람이고 우리도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오늘을사는 우리 모두가 잠이 오면 잠자고 배고프면 밥을 먹듯이, 이천육백 년 전의 싯다르타 그 친구도 잠자고 밥 먹었을 것이다. 그 친구의 인생 고민과 우리의 인생 고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믿어도 좋을 듯하다. 싯다르타가 갈망하던 꿈과 우리가 갈망하는 꿈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일 터이다.
다만 한가지 확연하게 다른 점이 있다. 그 친구는 내려놓음으로써 꿈을 실현하려고 했고, 우리는 거머쥠으로써 꿈을 실현하려고 한다. 우리는 자신의 울타리를 쌓아올림으로써 바라는 바를 실현하려고 하는데, 그 친구는 자신의 울타리를 철저하게 해체시킴으로써 바라는 것을 실현하려고 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실상을 알고 실상의 질서에 따르는 것만이 참된 길이라고 믿었고, 우리는 자신 밖의 모든 것을 알고 그것을 좌지우지 하는 데에 길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꿈은 잡히지 않는 꿈일 뿐 역사가 되지 못했다. 우리의 바람은 공허한 바람일 뿐 삶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거머쥐는 길에선 기쁨과 자유의 삶이 가꾸어졌다. 싯다르타 그 친구는 완성자인 붓다로 태어나 역사의 중심에 우뚝 섰다.
--- 책 표지 중에서
부처님의 중도를 이야기했습니다. 중도는 팔정도로 표현됩니다. 그렇다면 팔정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팔정도의 첫번째가 "정견"입니다. 여기서 "正"이란 바로 "中道"입니다. 정견은 중도적 견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중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존재의 실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럼 존재의 실상은 무엇인가? 바로 연기법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법이 곧 연기법인 것입니다. (...)
연기법이란 것은 관계성의 진리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관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관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관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신도 그렇고, 물질도 그렇고, 부처도 그렇고 중생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육체도 그렇고, 태어남고 그렇고 죽음도 그렇고 공간도 그렇고 시간도 그렇고, 큰 것도 그렇고 작은 것도 그렇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형 무형의 모든 것은 관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잇습니다. 관계가 곧 존재이며, 존재가 곧 관계라는 것이 불교의 기본 관점입니다.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부처님마저도 이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목숨입니다. 그러면 그 목숨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 목숨이 소중하다면서 목숨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갖고 있는 이 몸뚱어리를 목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몸뚱어리를 지키려고 애면글면합니다. 누가 건드리면 시비하고, 밥을 주지 않으면 화내고 하면서 우리는 이 몸뚱어리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것이 자신의 목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인생살이이고 인간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의 목숨이 존재할까요? 정확하게 따져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몸뚱어리는 地, 水, 火, 風의 4대 요소가 서로 어울려 이루어져 있는 상태일 뿐입니다. 이 목숨을 유지해 가려면 공기를 호흡해야 하며, 물을 마셔야 하고,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이런 논리로 부면 물은 과연 우리의 목숨인가, 아닌가? 산소가 우리의 목숨인가, 아닌가? 음식이 우리의 목숨인가, 아닌가? 이 말은 산소와 우리가 정상적을 소통될 수 있는 관계에 의해 우리의 목숨은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목숨이란 관계의 존재일 뿐입니다. 관계를 떠난 목숨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내 목숨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없는 곳이 없습니다. 내 목숨 없는 곳이 없고, 내 목숨 아닌 것이 없습니다.
--- pp 152~154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이렇게 선언하였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천상 천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 삼계가 다 고통이니 내가 마땅히 그들을 편안하게 하리라"고 선언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부처님이 이 세상에 탄생한 가치이며 목적입니다.
그런데 흔히들 "천상천하 유아독존"만 이야기하곤 하는데, 사실은 "삼계개고 아당안지"라는 말이 중요한 핵심입니다. (...)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구세 대비 救世大悲"입니다. 곧, 세상을 구제하려는 큰 자비심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이기도 하고 불교가 역사에 존재해야 할 가치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아니면 불교는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출가하여 수행의 길을 걷는 것도 다름이 아니라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 pp 4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