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리엔탈리즘의 해체를 위하여
비서구 사회의 문화 연구자들은 ‘3중의 짐’을 지고 있다. 이 짐들은, (1) 현대 자본주의라는 보편적인 현상에서 오는 문제에, (2) 서구 사회와는 다른 비서구 사회의 역사적, 문화적 상황에서 비롯된 문제들이 겹쳐진 것이다.
첫째, 서구의 문화 연구자와 마찬가지로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보편적 현상으로서 문화 방면의 인간 소외 문제, 이데올로기, 권력 작용을 분석하고 비판하여야 한다.
둘째, 이런 보편적인 문화 현상과 더불어 서구 문화에 의한 문화 종속의 문제를 동시에 문제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곧,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구호 아래 새로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로 치닫고 있는 세계 문화의 동질화 현상과 문화 제국주의를 비판, 폭로, 해체하는 작업이다. 대부분의 서구 문화 이론들처럼 첫 번째 문제에만 집중할 때, 우리나라를 포함한 제3세계의 문화적 종속 상황을 외면하고 숨겨버리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Unintended Consequence’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구의 문화 연구자들은 비서구 사회의 문화 종속 문제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관심이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한다.
셋째, 근대화=서구화 과정을 통해 서구적 시각에서 비하되고 폄하되어 온 자신의 전통 문화를 재평가하고, 21세기 인류의 미래에 의미 있게 되살릴 만한 것들을 되살려 문화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서구적 시각으로 바라본 왜곡된 동양관’이라고 할 수 있는 오리엔탈리즘을 넘어 서구의 시각이 아닌 자신의 시각으로 다시 읽어내는 작업이 선결 조건이다.
이런 세 가지의 짐을 혼자서 지고가기에 버거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을 각기 분리해서 연구한다면 서구와는 다른 한국 사회의 문화적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힘들 것이라고 본다. 저자는 나름대로 이 세 가지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기 위해서 노력해 왔고, 가끔은 이런 ‘삽겹살의 공포’(?)에 기가 죽기도 했었다. 그러나 힘들더라도 이것은 우리 시대가 안고 갈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짐’인 것이다.
지난해 타계한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 19352003)의 『오리엔탈리즘』(1978)은 제3세계 문화를 보는 서구 중심적 사고 방식을 제고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고, 우리 사회에서도 인문?사회 과학 분야에 많은 영향력을 미친 책이다. 저자도 『오리엔탈리즘의 해체와 우리 문화 바로 읽기』(서울:소나무, 1997)라는 저서를 통해서,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광고를 통해서 오리엔탈리즘이 재생산되는 구조적 메커니즘을 분석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는 오리엔탈리즘의 재생산 메커니즘을 ‘폭로’하는 것에 머물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의 문제와 관련해서 정작 중요한 점은 오리엔탈리즘에 입각한 사고 방식을 ‘폭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해체’하는 것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오리엔탈리즘을 ‘해체’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저자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지나치게 미화되어 있는 ‘서양에 대한 바로 알기’이고,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폄하되고 왜곡되어 온 ‘동양에 대한 바로 알기’다.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왜곡된 동양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풀어서 보면 ‘서구의 문화적 문법’을 통해서 전혀 다른 문화적 문법에 의해 형성된 ‘동양의 문화적 산물’들을 해독하는 무모한 편견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모든 문화권에는 그 문화를 형성?변형?지속시켜온 ‘문화적 문법’이 있다고 보고 있다. 서구인들은 자신의 문화적 문법을 통해서 제3세계의 각종 문화적 산물들을 바라보면서―그들의 문화적 문법으로 해독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비합리적’‘비과학적’‘비이성적’이라고 재단해 왔다. 이러한 ‘문화적 마녀 사냥’이 이제까지 세계 문화사의 비극이었다. 이제는 우리들 스스로가 오리엔탈리즘에 젖어서 스스로의 문화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고 비하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문화사의 비극을 더 이상 이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문화적 문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저자는 서양에 의해서 왜곡된 동양에 대한 ‘바로 알기’의 인식론적 전제를 ‘동도동기론東道東器論’으로 제시한 바 있다. 동도동기론이란 동양의 ‘문화적 문법’으로 동양의 ‘문화적 산물’들을 읽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오리엔탈리즘적인 사고는 음악 문화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서구 음악 일색의 교과과정을 통해서 길러진 우리들은 동양 음악이나 전통 음악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밝히고자 하는 것은 동양 전통 음악을 형성하는 ‘문화적 문법’ 곧 ‘동양 음악의 문화적 문법’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동양 음악의 문화적 문법’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이것이 동양 음악에 대한 기존의 왜곡된 인식을 해체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